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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네 소식

조상님들 여기에 땅 좀 많이 사놓으시지.

민아네 2011. 5. 4. 09:47

요즘 좀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 봅니다.

시민권을 받았으니 당연히 여권을 만들어야 하는데, 좀 웃기고도 어이없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권 신청서에는 개런터(보증인)싸인이 들어갑니다.

보증인이라 해서 무슨 재산보증 신원보증 이런게 아니고, 지금 여권을 신청하는 사람을 캐나다에서 수년간 알고 지냈다는 사실 확인입니다.

개런터는 캐나다 시민권자여야 하고, 여권 신청인과 최소 2년간 알고지내는 사이여야 합니다. 여기서 "알고 지낸다"는 의미는, 신청서 설명서에 따르면 이름, 나이, 체형, 키, 머리색깔, 하는 일 등등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 가족과 이 동네에 이사올 때 부터 알고지낸 민아 친구 한국사람 가족에게 부탁해서 바깥양반을 개런터로 기입을 했습니다. 그 집 딸네미하고 민아하고는 한 반 친구고, 그 가족들하고 몇 번 캠핑여행도 갔고
가끔 서로 집에도 가는 그런 사이입니다.

그렇게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을 했지만, 늘 그렇듯이 그 수많은 여권 신청서에 나와있는 개런터 모두에게 연락을 해서 신청인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또 느리고 게을러터진 이곳 공무원들 속성상 연락은 절대 하지 않을것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패스포트 오피스에서 개런터에게 확인 연락이 간 것입니다.
결국 문제가 생겼네요.

서류에는 7년간 알고 지낸 사이라고 썼고 사실이 그렇습니다만, 공무원이 전화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신청인인 내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제대로 대답을 못했던 것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애들끼리 친구가 되어 서로 가족끼리 알게 된 사이는 서로 이름을 안 부르고 "누구 엄마", "누구 아빠" 이렇게 부르지요. 그양반도 내가 민아아빠라는것은 아는데, 이름을 대라 하니까 막상 잘 몰랐던 것입니다.

캐나다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요. 7년간 알고 지냈는데 이름도 모른다? 말이 안되지요.

물론 전화가 왔을 때, 한-캐나다간 전통문화관습에 의거한 자녀 친분 관계에 따른 가족 대 가족관계와 부모호칭에 관한 오해임을 유창하고도 장황하게 설명했으면 되었겠지요만, 나보고 그렇게 하라고 해도, 심지어 영어가 유창한 2세들에게 해보라고 해도 제대로 못할 설명을,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불시에 여권 오피스에서 온 확인전화를 받고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나는 나대로 제대로 이름같은 정보를 주지 않은 잘못이 있고, 그양반은 그 양반대로 개나 소나 다 통과한다는 개런터 확인을 못해주어서 우리가 신청서를 다시 꾸며서 제출하도록 일이 꼬여서, 서로 얼굴 보기가 민망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서류를 다시 꾸미고, - 컴퓨터에 정리되어 있어서 별로 번거롭지는 않았습니다 - 이번에는 우리 가족의 이름을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영어도 유창한 1.5세 세린아빠에게 개런터 싸인을 받고, 사진도 사진관에 가서 다시
프린트 하고, 스탬프 찍고 (사진 뒤에 언제 찍었다는 사진관 스탬프가 있어야 합니다) 해서, 하루 휴가를 내고 여권 오피스에 갔습니다.

그런데, 또 반려네요.

사진을 다시 촬영하지 않고 전에 제출했던 사진을 다시 프린트 한 것은 안된답니다. 사진 규정은 최근 12개월 이내 촬영한 것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다시 프린트 하면 안된다는 규정은 없지 않느냐 했더니, 이전에 제출했던 사진을 보여주면서, 같은 사진에 다른 날짜가 찍혀있어 안된다고 합니다.

아니 사진날짜가 다르다 한들 겨우 3주전에 찍은 사진을 다시 프린트 했을 뿐 12개월내 촬영이라는 조건은 만족하고도 남는데 안되는건 안된답니다.

완전 빼도 박도 못하네요.

이런 염병할.. 욕이 저절로 나오는데, 영어로 염병할은 모르겠고 캐나다 시민되기 드럽게 어렵네 하고 한마디 했더니 직원 인상이 확 찌그러지네요.

나같은 이노쓴트 피플이 (한국말로 선량한 시민 - 한국에서나 여기에서나 일반인들이 주로 관공서나 경찰 상대로 즐겨 쓰는 말) 뭘 속이고 자시고 한다고 규정 한글자 한글자 다 따져서... 참 나.

결국 사진 다시 찍고 또 가야 합니다. 세번째네요.

그래도 어쩝니까? 시민권자가 한국 여권 사용하다가 걸리면 한국에서 처벌이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비단 처벌때문이 아니라 불법으로 규정된 일을 할 만큼 간이 크지도 않고 그럴 맘도 없고. 그러니, 당장 어디 해외에 나갈 일은  없더라도, 여권이 없으면 캐나다 내에 묶인 몸이니 불안해서라도 반드시 만들긴 해야겠지요.

민아친구네 두 분과는 서로 해결이고 뭐고, 그냥 하나의 재미난 해프닝으로 삼고 앞으로도 잘 지내기로 했습니다. 미안해서 무슨 반찬거리를 싸들고 집에 왔더라구요. 우리도 미안하니 서로 전혀 미안해 하기 없기로 하자고 했습니다.

한가지 사족을 붙이자면, 한국사람 이름은 세글자로 되어있는데, 대개 영문 이름도 각 글자마다 공백을 두고 씁니다. 즉 홍길동이면 HONG, GIL DONG 이런 식이지요.

그러나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할때에는 이름사이에 공백이 있으면 매우 불편합니다. 홍길동의 경우 이름사이 공백이 있으면 다른 이들이 부를때 "길" 이라고만 부릅니다.

해서, 이미 다 아시겠지만, 여권이나 기타 문서에 영문이름을 쓸 때에는 HONG, GIL DONG 노노노 아니죠 HONG, GILDONG 이런 식으로 공백없이 쓰는게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인터넷에서 본 개그 흉내인데.. 좀 쌀쌀한가요? ㅎㅎ)

나는 이름사이에 공백이 있습니다. 한국 여권에 사용하던것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만, 이것 때문에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부를때에는 "챙" 이라고 하는데,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나쁜 속어같기도 해서 듣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 온전한 이름을 알려주면 발음이라도 제대로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더듬거리면서 챙기언 이러는데 이건 더욱 거북합니다.

온갖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영국을 기준으로 만든 씨스템을 적용하다 보니 이런 불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좋든 나쁘든 그들이 피땀흘려 세워놓은 나라인데 따라야지요.

에이구, 우리네 조상님들도 이런데 땅 좀 왕창 사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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