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날 글과 사진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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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에 썼던 글입니다. ------------------------------------------------------------------------------------------ 크리스마스 연휴에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짧은 여행을 했다. 누군가 짊어진 삶이 무거워 지치고 노곤해질 때면 새벽에 재래시장에 가보라 했던가. 뉴욕에서의 삶도 그 못지 않게 치열해 보였다. 서울의 명동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인파가 빽빽하게 흐른다. 그 틈을 비집고 다니는 연극공연, 고층빌딩 전망대 같은 명소의 티켓을 파는 삐끼들의 외침. 수블라키(훈제 꼬치)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뿜어대는 고기굽는 연기, 그 연기 뒤에서 연신 땀을 훔치며 고기를 뒤집는 상인. 비가 간간히 내리는 뉴욕의 뒷골목을 지나는데 길가에 ..
2014년 6월에 썼던 글입니다. ----------------------------------------------------------------------- 이발을 하고 왔다. 옆에 머리하던 늙수그레한 아줌마가, 캄보디아에서 왔다는 다른 아줌마가 너무나도 한국말을 잘 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칭찬을 듬뿍 해 주었더니, 칭찬 말미에 하는 말이 "저 한국사람이에요.." 하더란다. 간혹 한국에 갈 때 대한항공을 많이 타는데, 당연히 한국에 가는 한국 국적기니 비행기 안에는 한국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밥때가 되면 스튜어디스가 한국사람한테는 한국말로 소고기, 닭고기중 어느 메뉴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면 "손님 소고기와 닭고기가 있습... " 까지 하다가 말에 영 자신이 없..
2015년 6월에 썼던 글입니다. ----------------------------------------------------------------------------------------------- 옛날 삼성 다닐때 사원들에게 우리사주를 팔면서 저리융자도 지원해 주었었다. 물론 나도 융자도 받고 내 돈도 보태고 해서 회사 주식을 샀었다. 하지만 캐나다로 이사를 갈 즈음해서 주식값이 엄청나게 곤두박질 쳤고 팔아봐야 본전도 못 건져 오히려 돈을 토해내야 할 지경이라, 일단은 당분간 관망해 보자는 마음으로 그대로 둔 채 캐나다로 왔다. 융자금에 대한 이자는 한국에 남겨둔 계좌로 계속 납부하고 있었다. 이민 초기에 어리버리 정신없는 가운데 문득 주가를 체크해 보니 주식값이 약간 올라서, 본전치기 정도는 ..
2021년 3월에 썼던 글입니다. ------------------------------------------------------------------------------------------------------ 기억도 아련한 오래 오래 전 검정 교복입고 다니던 중학생 때, 지금도 그렇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열댓 과목이 바둑판처럼 촘촘히 새겨진 시간표에 따라 대개 쌀가마니처럼 빵빵하고 묵직한 무게의 가방을 들고 다녔다. 버스에 승객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그건 혼잡한 혹은 만원버스라는 표현으로는 한참 모자란, 이를테면 그 상태를 보여주는 계기판 같은 것이 있다면 바늘이 위험을 알리는 빨간 눈금을 한참 지나 압력을 못 견뎌 칙칙 소리를 내며 부들부들 떨다가 마침내 계기판의..
2017년 11월에 썼던 글입니다. ----------------------------------------------------------- Roncesvalles Carhouse 현장점검 방문. 이 carhouse 에서는 토론토 전차(streetcar)를 정비한다. 도면을 살펴보니 흥미로운 점이 보인다. 바로 건물 지하에 사격장이(shooting gallery) 있었다. 도면발행연도를 보니 1943년 4월. 2차대전이 한창일 때다. 세계대전중 토론토의 정비공장에서는 무기를 생산했다. 사진은 건물 옥상에서 보이는 온타리오 호수. 단풍이 들어 아름답다.
2009년 12월에 썼던 글입니다. ----------------------------------------------------------------------------------------- 아는 분이 다운타운에 자그마한 아파트를 가지고 세를 주는 랜드로드입니다. 캐나다에서는, 한국같이 콘크리트 빌딩으로 된 아파트도 있지만 가정집을 개조해 세를 주는 집도 아파트라고 부르고, 세를 주는 개인 가정집 지하도 아파트라고 부릅니다. 이 분은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다운타운에 하우스를 구입하여 월세 전용으로 만들어 임대를 하는 분입니다. 얼마전 모임이 있어 만난 자리에서 세들어 살던 아주머니 한 분의 스토리를 전해주었습니다. 마샤 아주머니는 60대 초중반정도로 보이는 백인 아주머니였습니다. 집 2층 방 하나에..
2008년 3월에 썼던 글입니다. ----------------------------------------------------------------------------------------------------------- 아는 사람중에 한국에서 온 조기유학생을 받은 집이 있습니다. 중학교 일이학년 정도 되었고 부모가 극성인지 하여간 애만 달랑 토론토로 유학을 보낸 것입니다. 속사정은 생략을 하고, 이녀석이 토론토에 와서 유학생활을 하는데, 처음에 학교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가 캐나다 학교는 도통 "때리지를 않는다"는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녀석 주장을 들어보면 한국의 학교에서는 숙제건 공부건 간에 선생이 매타작을 하니 어지간해서는 공부를 안하고 배겨날 수가 없는데 ..
2008년 3월에 썼던 글입니다. -------------------------------------------------------------------------------------------------------- 나는 애들만 보내는 조기유학이란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사랑을 나누며 사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기본 공동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심지어 언제 어찌될 지 모르는 전쟁통에서조차 가족끼리는 헤어지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이겠지요. 코소보 내전때 어느 기자가 찍은 아주 가슴아픈 사진이 있습니다. 난민촌에서 안전한 제 3국으로 난민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이주 인원은 한..
2011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 이전에 말을 섞지는 않았지만 안면이 있는 한국사람이 있다. 평소에 사람이 말도 없고 점잖아서, 늘 가족과 같이 다니는 그 사람을 보면 참 성실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지난 연말 즈음해서 교민사회에 토픽으로 회자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저 사람이라 상당히 놀란적이 있다. 이곳 TV 뉴스에까지 나온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여름날 새벽에 승용차 하나가 고속도로를 역주행하고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이 즉시 출동하여 중앙분리대를 사이에 두고 같이 달리며 계속 멈추라고 ..
2008년 2월에 썼던 글입니다. --------------------------------------------------------------------------------- 업무상이든 평상시든간에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사람마다 방어벽을 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드럽든지 날카롭든지 간에 말입니다. 일전에 자동차 스티커 때문에 찾아간 교통부(MTO)사무실에 여직원은 내가 그 앞에서 떼라도 쓸까봐 그랬는지 처음부터 차갑고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습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 여직원도 집에 가서는 착한 딸에 아니면 착한 아내 좋은 엄마일것임에 틀림 없겠지요. 옛날에 이민왔을 때, 동양사람중에 한국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을 우스개 소리로 들은 적이있습니다. 중국사람은 하도 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