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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유학과 가족 본문

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조기유학과 가족

민아네 2024. 2. 26. 15:20

2008년 3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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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들만 보내는 조기유학이란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사랑을 나누며 사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기본 공동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심지어 언제 어찌될 지 모르는 전쟁통에서조차 가족끼리는 헤어지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이겠지요.

 

코소보 내전때 어느 기자가 찍은 아주 가슴아픈 사진이 있습니다. 난민촌에서 안전한 제 3국으로 난민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이주 인원은 한정되어있는데, 가족이 함께 가지 못하니 엄마들이 철조망 너머로 애기들을 수송을 맡은 UN 병사들에게 건네면서 울부짖는 광경이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요. 사진을 보는 내 가슴이 다 아려옵니다. 가족끼리의 헤어짐은 그 어떤 고통보다도 아플 것 같습니다.

1999년 3월 알바니아의 난민캠프에서 한 코소보 난민이 자신의 아이를 철조망 너머로 보내고있다.

 

그런데, 이런 고통을 용감하게도 자진해서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기유학을 보내는 부모님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기유학을 보내는 부모님들을 몽땅 싸잡아서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 나이라 한들 부모 무릎을 떠나서 일년 정도야 뭐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여름방학쯤에 부모와 만나 한두달 같이 지낼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또 아빠는 한국에 있고 나머지 가족들이 외국에 나와있는 '기러기 가족'의 경우도 있겠지요. 이 경우에는 애들이 엄마와 함께 있으니 애들만 달랑 유학온 케이스와는 또 다를 것입니다. 애들 아빠는 방학때 휴가겸 잠시 해외여행 겸 들어와서 같이 지내면 되는 일이고.

 

자 이렇게 여러가지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서, 여기 표현으로는 "익스큐스"가 되는 이유를 만들어서 유학을 옵니다.

 

그러나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한 조기유학은 그 상황에 익숙해지게 되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런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일년만 떨어져 있자 에서 일년만 더, 초등학교 졸업할때 까지만, 아니 중고등학교(Secondary school)까지만,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대학공부도, 대학 학위가 있으면 기왕이면 영주권또 따야지, 이렇게 발전하게 되지요.

 

이 와중에 이산가족의 애틋한 그리움은 사라지고, 기러기 아빠는 학비 생활비 송금하는 사람으로, 애들 엄마는 애들 밥해주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애들만 와 있는 유학은 더 심각하지요. 엄마 아빠는 일년중에 방학때만 보는사람이고, 이것도 익숙해 지다 보면 어쩌다가 이번 여름은 써머캠프 때문에 가족 상봉은 겨울로 미루고, 겨울에는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내년으로 미루고.

2005년 1월 8일자 워싱턴포스트의 한국 기러기 가족 기사.

 

(헤드라인) 아픈 선택 :  많은 한국 가정이 '기러기 Kirogi'라고 불립니다. '기러기'는 야생 거위를 의미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기를 원하지만, 미국의 교육비용때문에 종종 가족 구성원들은 오랜 시간동안 바다건너 떨어져 지내야 합니다. 이것은 한 기러기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매일 전화다 이메일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인터넷 화상전화다 뭐다 매일같이 하면서 애틋한 정을 나누지만, 그것도 한두달 지나면 시들해지고, 헤어진 상황에 익숙해 지면 매일 전화가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어쩌다 한번, 나중에는 한국에서 전화가 오면 "왜? 무슨 일 있어?" 이렇게 변해갑니다.

 

이런식으로 애들과 아빠가 떨어져 있은지 거의 십년이 되는 가족을 압니다. 말이 십년이지 애들 아빠는 기러기 아빠로 십년을 지낸셈인데, 과연 애들 교육이란게 가족이라는 귀중한 가치를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더 나아가 과연 이게 애들에게 과연 교육인지조차 의문입니다.

 

얼마전에 인터넷에 올라온 한 한국엄마의 문의에 정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애가 초등학교 일학년인데요, 사정상 애만 유학을 보내야 하는데 어느 유학원이 좋을까요?"

 

속사정은 모르겠으나 애보다 더 중요한 사정이란게 어떤것일까 의문이 듭니다.

기러기아빠 분석자료. 출처 서울신문.

 

여기 이민온 한국사람 중에 "본토발음"에 해가 된다고 애들에게 한국말을 못하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옛날에 이민온 연세 많으신 분들중에만 이런 케이스가 있는 줄 알았더니, 놀랍게도 나하고 나이가 비슷한 사람도 그런 케이스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습니다. 좀 과장된 표현이겠으나 나와 상관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들으면 마치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바보짓을 보는것 같아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최고급, 소수정예, 0.1프로 상위그룹, 하이클라스, 이런 단어를 늘 입에 올리지만, 그런 사람은 부자이건 아니건 간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단어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애들을 키워서 발음이 중요시되는 직업, 즉 뉴스앵커 수상 대변인 신문기자 방송 아나운서를 시키려고 그런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그럴 작정이라 하더라도 한국말을 모르는 것은 애들에게 얼마나 큰 손실이 될지 너무나도 뻔한 일입니다.

 

한국말을 모르는것이 한국에 대한 자긍심과는 별개겠으나, 한국말을 모르면 한국이라는 자신의 뿌리를 잊어버릴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본토발음을 줄기차게 외치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 부모는 진흙탕에 굴러도 자식만큼은 출세시키겠다는 그런 애틋한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맹목과 무지를 보면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도데체 "본토발음"이란게 있기는 있는 것인지, 있다고 해도 그런 본토발음 여부를 따져서 사람을 차별하는 집단이라면 과연 본토발음만 갖춘다면 아시안의 외모는 용인되는 집단인지 조차 의심스럽습니다.

 

게다가 세계는 글로벌 시대, 무역장벽이 없어지고 국경조차 희미해지는 세상입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고 한국의 정서를 잘 안다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는데 대단히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는 행운을 제발로 차버린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