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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폭탄같은 사람 깃털같은 사람

민아네 2024. 2. 25. 21:50

2008년 2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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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이든 평상시든간에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사람마다 방어벽을 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드럽든지 날카롭든지 간에 말입니다.

 

일전에 자동차 스티커 때문에 찾아간 교통부(MTO)사무실에 여직원은 내가 그 앞에서 떼라도 쓸까봐 그랬는지 처음부터 차갑고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습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 여직원도 집에 가서는 착한 딸에 아니면 착한 아내 좋은 엄마일것임에 틀림 없겠지요.

옛날에 이민왔을 때, 동양사람중에 한국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을 우스개 소리로 들은 적이있습니다. 중국사람은 하도 안감아서 떡진 머리칼에 아무 생각없는 해맑은 얼굴이고, 한국사람은 옷차림은 비교적 깔끔하지만 표정이 아주 찌뿌드드 해서, 마치 누구라도 어디 한번 걸리기만 해 봐라 하면서 벼르는 얼굴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일종의 처세술로, 남에게 모질게 해야 다음부터 남이 나를 우습게 보지 못한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습니다. 부드럽게, 친절하게 해도 될 일을 일부러 소리를 지르고 험하게 대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다음에 또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또 이렇게 다친다는 경고쯤 되겠지요.

가시복어와 장미. Image generated by Bing Chat AI.

 

여기에서도 예를들면 소소한 일상의 이해관계에서, 조그만 손해, 조그만 부당함에 거세게 항의해서 손해를 안보고 이를테면 잃어버릴 뻔한 권리를 찾았다는 무용담을 많이 듣게 됩니다. 

 

실제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소소한 충돌이 있는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것이 각자의 권리와 이익을 추구해 가며 돌아가게끔 되어 있게 마련이라, 사실 상호 존중이나, 사회정의 등등의 공공의 이익은, 어쩌면 서로의 권리를 다쳤다가는 나에게 피해가 돌아옴을 잘 알기에 지켜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영역이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가면서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 무수한 톱니바퀴들은 때로는, 이가 안 맞아 흔들 흔들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또 누군가 좋은 사람들에 의해 윤활유가 흘러 부드럽게 돌아가기도 합니다.

 

나와 맞물리는 상대편 톱니가 튀어나왔을 때, 나도 튀어나와서 와장창 삐그덕 소리를 내고 깎아 버리는지 깎이든지 아니면 둘다 멈추어 버리든지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부드러운 윤활유를 치며 나도 깎고 상대도 깎아 맞추며 고치는 방법도 있겠지요.

 

사람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윤활유가 되고 싶어하나 봅니다. 나이 사십이면  싸울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날 줄을 알게 된다 하지요. 누구든지 젊은 혈기에 부당하다 싶은 일을 당하면, 단지 내 권리를 찾는 일임데도 불구하고 이 일을 조용히 넘어가면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세계평화가 파괴된다는 사명감으로 죽기살기로 싸우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정작 진짜로 세계평화가 위협받는 일에는 무관심하면서 말이지요.

 

내가 뇌관이 장전된 폭탄처럼, 아니면 방아쇠만 당기면 발사되는 총알이 장전된 총처럼 보여 사람들이 내 앞에서 조심조심 설설 긴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언젠가 읽은 소설책에서 사람이 발 아래 사람을 무릎꿇리는 것은 사람의 포악한 본성 중 하나라는 문구를 읽었는데 정말 표현을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왕, 아니 황제가 되어서 그런다면 뭐 그나마 이해라도 가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대통령, 왕이라도 그러면 욕을 바가지로 먹겠지요) 평범한 사람들, 집, 동네, 회사, 마켓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는 사람과 사람들끼리 그런다면 얼마나 사회가 살벌하고 힘들겠습니까? 온 세상에 폭탄 천지라면 참 무섭고 위험해서 살아갈 맛이 안 나겠지요.

 

물론 나도 소시민의 한사람이라, 나와 가족의 행복과 이익을 꾸준히 추구해야겠지만, 앞으로 나의 너무 작은 이익을 찾는 일에는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10불을 써서 다른사람이 편하다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시간 더 해서 다른 사람들이 세시간을 편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냥 하렵니다. 비록 다른사람이 나의 지출과 수고를 알아차리지 못해도 말입니다.

 

하지만, 너무 큰 수고와 지출은 아직은 자신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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