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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네 소식

길상사(吉祥寺) 답사

민아네 2023. 4. 16. 12:59

2023년 4월 15일 토요일. 길상사에 다녀오다.

캐나다에 가기 전에 서울 살면서 왜 길상사를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것일까.

길상사는 "무소유"의 저자로 유명한 법정(法頂)스님이 개원한 성북동에 있는 절이다.

 

길상사는 옛날에는 대원각(大苑閣)이라는 커다란 고급 요정이었는데, 1997년에 길상사라는 절로 바뀌었다고 했다. 과연 길상사는 곳곳에 요정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것도 큰 부자가 아니고선 엄두도 못 낼 아주 아주 고급의.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에서 내려 성북동 방향으로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열정거장이나 되어서 오래 걸릴 줄 알았으나, 말 그대로 마을버스인지라 정류장 간격이 짤막짤막했고, 거기에 버스 운전사의 꼬불꼬불 안보이는 좁은 동네길 코너를 과감하게 돌아나가는 신들린 운전 덕택에 금방 다다랐다.

 

길상사앞 버스정류장, 사진 : 뚜벅이 주주 블로그

 

언젠가 유튜브에서 보았던, 정원숲으로 둘러싸인 고즈녁한 분위기의 멋진 오솔길을 따라 군데군데 조그만 밀실같은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일본의 부호들이 드나든다는 일본 요정과 매우 닮아있다. 

 

길상사도 이와 비슷하게 되어있다. 물론 사찰이니까 참배를 하는 큰 도량도 꾸며져 있지만, 조그맣고 멋드러진, 그리고 비밀스러운 옛 건물들이 이와같이 고즈녁한 오솔길을 걷다보면 하나씩 눈앞에 나타난다. 그 절집들은 지금은 스님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이 절을 찾아보게 된 계기는 절밥을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였다. 공짜밥보다는 절에서 주는 절밥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라 하는게 맞을것이다.

 

공짜밥이라니, 요즘 경제난으로 무료급식이 줄어서 한 끼가 절실한 사람들이 밥을 못먹어 난리라는데, 혹시 우리가 가서 그걸 얻어먹으면 정말 식사가 필요한 두사람이 밥을 못먹게 되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 그리고 식당 줄이 길면 우리는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와서 다른데서 사먹지, 하는 쓸데없는 대화를 하면서 길상사 정문을 통과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밥먹는 눈치 하나는 빠르다. 길상사 정문으로 들어가 조금 올라가서 왼쪽으로 가다보면 "공양간"이라는 길표지가 있고 이 표지 너머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공양간이 보이니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공양간 가기 전에 조그만 가게같은 곳에서 천원짜리 식권을 사야했다. 그러니 완전히 공짜밥은 아닌것이다. 천원이면 요즘 세상에 공짜나 다름없겠지만, 아주 조금 마음의 부담은 가벼워졌다.

 

우리는 이천원을 주고 식권 두 장을 구입해서 야트막한 오솔길을 지나 공양간에 들어갔다. 예상외로 한산하여 우리는 기다리지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양간 가는길에 식권사는 곳.사진 : Photographer Edin의 감성여행 스케치

 

들어가자마자 물을 먹을 수 있는 컵과 급수대가 있었고 그 옆에 길다란 개수대, 그리고 옆에 불전함(기부함 - 식권함 겸용)이 있었다. 달랑 천원짜리 식권 두 장을 떨어뜨리기에는 염치가 없어 약간의 기부금을 더했다.

 

처음 왔으니 어디가 어딘지,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가 있나, 눈치로 때려맞출 수 밖에. 나무로 된 발우(鉢盂)라고 하는 큰 그릇에 무언가 담겨 금속으로 된 선반에 켜켜이 쌓여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다 먹고 난 퇴식대인줄 알았지만 곧 눈치를 채고 그것을 하나씩 집어들고 배식대 앞에 가서 섰다. 발우그릇에는 나물이 담겨있었고 그걸 가지고 배식대에 가면 밥과 별도의 작은 그릇에 미역국을 담아주는 것이었다. 거기에 조그만 떡과 감자튀김도 더해졌다. 한산한 만큼 자리도 많아서 우리는 바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절밥, 절밥, 하는구나 싶은 맛이었다. 소박하고 부드럽고 심심하지만 은근히 끌리는 다정한 맛이라고나 할까. 궂이 방송에 나오는 미식가의 흉내를 내고싶지는 않지만 그 표현이 맞을듯 하다. 배식대 앞에 써 있는 표지판에 음식을 남기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있었지만 나는 그 표지판을 그릇을 싹싹 비우고 난 다음에야 발견했다.

 

식사를 한 후에는 설겆이도 직접 해야한다. 설겆이래야 숟가락 하나에 발우그릇 하나 국그릇 하나이니 설겆이랄것도 없다.

 

길상사 공양간. 아래층이 식당, 위층이 찻집이다. 사진 : Photographer Edin의 감성여행 스케치

 

공양간 위층의 찻집과 그 위층의 지장전. 사진 : Photographer Edin의 감성여행 스케치

 

이제 절 안을 둘러볼 차례다. 절 안은 흡사 잘 꾸며진 정원과 같이 너무나도 예뻤다. 구석구석 돌 하나 담장하나에도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묻어났다. 오솔길을 걷다보면 아기자기한 집들이 보이고 역시 예쁜 글씨로 표지판들이 있다. 여기는 관광지가 아닌 엄연히 스님들의 도량이고 거처인만큼 조용히 다녀야 한다.

 

아까 보았던 친구사이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를 빼고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엄숙하고 조용하게 다니고있었다. 걷다가 사람들의 행렬이 있어서 보니 아마도 장례식인듯 극락전 앞으로 스님이 염불을 읊으며 앞장서서 걷고있었고 그 뒤로는 어느 할머니의 영정을 든 유족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합장을 하며 예의를 갖추었다.

 

사찰내 오솔길을 따라 군데군데 있는 도량과 스님의 거처.

이렇게 잘 정비된 오솔길을 걷다보면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이 고요하며 청명하여 마음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곳이 서울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을정도다.

 

진영각 담장너머로 본 오솔길.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걸었을 뿐인데 우연히 법정스님을 모신 진영각에 다다랐다. 그냥 조그만 나무문이 반쯤 열려있어 이곳은 어딜까, 하고 들어섰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두어명 툇마루에 앉아있었고 그냥 고요한 비오는 날의 시골집 처마밑, 딱 그 분위기였다. 우리는 저 툇마루에 앉아 돌담 담장밑에 비를 맞으며 흔들리는 풀과 꽃들을 보면서 말없이 한참을 앉아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말이 없었다.

 

진영각. 사진 : 뚜벅이 주주 블로그

워낙에 유명했던 분이라 기념관도 대단할 것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스님의 영정과 생전에 입던 옷, 생전에 쓰신 친필 글귀와 몇가지 자료들뿐이다. 안에도 들어가 볼 수 있지만, 그날 비가 왔었기에 행여나 바닥에 빗물을 튕길까싶어 들어가보지는 않고 그냥 기웃거리며 구경만 했다.

 

법정스님의 유골을 모신 곳. 사진 : 뚜벅이 주주 블로그

진영각 문을 들어서서 오른쪽 담장밑에 있던 법정스님의 유골을 모신 곳. 아주 작은 석등과 팻말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모르고 있다가 한참 앉아있다 나갈 때 비로소 보았다. 마음이 떠 있으면 바로 옆에 있는것도 보이지 않는것일까, 나는 이런 고요한 사찰에 와서도 무슨 대단한 것들을 보겠다고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며 다녔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못보고 지나쳤다고 뭐가 대수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은 내가 보나 안보나 계속 있을것을.

 

진영각 툇마루에서 보이는 담장

진영각 툇마루에 앉아 조용히 비를 맞으며 흔들리는 꽃과 풀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한참을 앉아있었다.

 

곳곳에 있는 쉬어가는 테이블과 의자.

오솔길을 걷다가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를 보았다. 저 돌탁자의 모서리는 필시 우연히 깨어졌을 터인데 거기에 물고기를 새겨넣었다. 나는 이런 세심한 소박함이 정말 좋다. 더군다나 물고기는 불교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있지 않은가.

 

곳곳에 있는 수행처와 스님의 거처.

이렇게 오솔길을 따라 절집이 곳곳에 있어서 사람들은 조용히 다니고 있었다.

 

밖에서 본 진영각.

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디자인을 품고 있는 사찰이었다. 맛있는 절밥에 먼저 감동하고 거기에 더해 길상사의 아름다움에 취한 하루였다. 시끄럽고 바쁜 도시속에 이런 곳이 있다는게 믿어지지않을 정도였다. 마치 동화속의 세계로 들어온 듯한 느낌, 맑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사족)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가르치셨다면 나같은 범인이 무소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이 길상사라고 생각한다.

길상사를 둘러싸고있는 성북동의 슈퍼리치 하우스들을 보면 나 자신은 무소유를 넘어 차라리 마이너스 소유라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천원 요금의 마을버스에 앉아 지나쳐가는 수억원씩 하는 슈퍼카들을 보는, 천원짜리 점심을 먹으러가는 기분도 한번쯤 느껴볼만한 경험이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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