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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기

민아네 2015. 10. 21. 06:23

이민 오기 전에 결심한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내 학력, 지위, 권위, 체면은 고스란히 한국에 반납하고 간다" 였습니다. 사실은 반납하고 자시고 할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만.

 

이곳에 오니 한국에서의 대학 졸업장, 회사 직위 같은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습니다. 한가지 통하는 것은 한국에서의 경력이었지만, 그것도 내가 오로지 실력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조건부였지요.

 

그나마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어느정도는 통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민 올 때 이민와서 정착에 성공할 수 있는(성공이라기 보다는 먹고 살 수 있는) 세가지 조건이 회자되었습니다. 돈이 엄청 많거나, 영어에 능통하거나, 현지에서 통하는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이 중 최소 두가지 이상의 조건을 갖고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건 중 두가지 이상을 갖춘 이민자는 그리 많지 않았어요. 아니 거의 없었어요.

 

이 조건을 갖춘 경우라 하더라도 이민을 오게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활동 범위는 한국에 비해 크게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한국 커뮤니티가 한사람 건너면 다 알 정도로 좁은데다가, 내가 이민올 때에는 한국사람들이 거의 비즈니스 가게를 했는데, 그 분들은 1년 내내 가게일 때문에 꼼짝도 못했지요.

 

저처럼 회사를 다니는 경우라 하더라도 한국처럼 회사 동료들끼리 회식문화도 없고 몰려다니며 같이 잡기에 동참하는 분위기도 아니라 그저 시계추처럼 회사와 집을 오갈 뿐 한국과 같은 인간관계를 기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아무 욕심없이 살겠다고 이민을 온 후 모든것이 좋아보이는 밀월 기간을 거쳐서, 마침내 꿈에서 깨어나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 뛰어들어 닥치는대로 헤쳐나가길 몇 년, 이제 밥은 먹고 살 정도가 되었고 주변 모든것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이제 슬슬 심심하고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밥만 먹고는 못 삽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집단 생활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단에서는 서열을 매기게 되어있습니다. 그건 본능이거든요. 밥먹고 똥사고 잠자는 그런 피할 수 없는 본능.

 

무리를 지어 살아가던 유인원 시절 유전자에 박힌 그 집단의 서열본능,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 집단에서 남들 머리를 밟고 위로 올라가려는, 남을 복종시키려는 그 포악한 본능은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보다 얼마나 우월한지를 보여주려고 늘 노력하지요.

 

나의 자랑을 남이 모르고 지나가면 서운하고 한 걸음 나아가 상대가 나의 가진 것 입은 것 배운 것 이룬 것을 알고도 부러워하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상대가 그런다고 나에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이지요.

 

그래서 이민자들이 교회를 비롯한 한인단체에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는 보여줄 수 있거든요. 내가 재산을 내 졸업장을, 내 화려했던 과거를.

 

그리고 그 집단에서 계급장이라도 하나 달면 옛날 옛적 한국에 두고 온 체면과 권위를 비슷하게나마 느낄 수 있거든요.

 

눈 앞에서 사람들이 아이쿠 협회장님 사장님 이사장님 의장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면서 명치가 짜르르 합니다. 바로 이거거든요.

 

일부 한인단체에서는 알량한 감투를 놓고 싸움질이 아주 가관입니다. 그 싸우는 분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러겠습니까? 다들 돈 많은 부자에다 한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학벌이 있고 다들 한자리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 남들이 우러러 보아주길 원하는, 다들 자기 발 앞에서 고개 숙이고 쩔쩔 매기를 바라는 원숭이의 본능이 아닐까요?

 

한국에서야 이런 저런 모임 단체 등등이 많으니 원하는 대로 나가서 자랑도 하고 위엄도 부리면 되는데 이민사회에서는 그게 힘들거든요.

 

옛말에도 이런말이 있지요.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아마 공자님 시절에도 사람들이 똑 같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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