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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회사에서 일어난 사건 정리 본문
여기에서는 한국처럼 공채같은게 없습니다. 빈자리가 나거나 새 프로젝트가 있어서 사람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채용을 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구인하는 회사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이력서를 넣는게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는 사람이 이력서를 전달하면서 지원자에 대한 보충설명을 해 주는 것, 이것을 '레퍼런스 reference' 라고 하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실제로 지원자를 아는 사람, 전에 같이 일 해본 사람이 직접 이 사람에 대해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지원서 종이 한장보다는 훨씬 신뢰성이 있고 따라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말이지요.
때문에 캐나다에서 직장 경력이 없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새 이민자들은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많은 캐나다 회사들이 캐나다 내의 회사경력을 요구하는 것도 신규 이민자들의 취업난에 큰 몫을 합니다. 이민을 장려하는 나라에서, 새로 이민 온 사람에게 취직하려면 캐나다 회사 경력을 내놓으라하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나처럼 경력자가 구직을 하는데도 마치 신규 이민자가 구직을 하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아예 구인광고가 씨가 말랐습니다.
요즘 회사 사정이 안좋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지요. 우리 회사만 그런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불황입니다. 불황은 전에도 있었지만 이렇게 피부에 와 닿기는 처음입니다.
지난번 집에서 휴가를 써가면서 한달 반을 놀았지요. 그게 휴가이긴 한데, 명칭이 '강제휴가' forced vacation 입니다. 일이 없어서 귀중한 내 휴가를 써가면서 집에서 놀자니 이게 노는게 아니지요. 다행히 나는 휴가가 이것저것 합쳐서 최대 두달 반까지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놀면서 회사에서 다시 나와달라고 연락이 올때까지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데, 휴가가 소진되면 이제 임시해고상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임시해고에 대해서는 전에 설명을 드렸지만, 회사에서는 치과, 보험같은 복리후생 혜택만 주고 월급은 실업급여에서 타먹는 반 해고 상태입니다. 임시해고도 무한정이 아니라 몇개월 지나면 진짜해고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회사 휴가기간에는 이메일이 살아있어서 집에서 이메일로 팀장하고 수시로 연락을 취해가면서 기다렸지만, 일이 없는걸 팀장인들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답답한 노릇이 없겠지요. 그 때 새 직장을 알아보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아주 아주 드물게 쓸만한 구인공고가 나오면, 그 자리는 이미 누군가 아는 사람을 통해서 독수리 병아리 채 가듯 획 하고 없어집니다.
처음에는 나도 그 자리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경력과 기술 100프로 나와 일치하고 누구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있는 일이라 내심 은근히 자신이 있었고, 이 직장으로 되면 다닐까 말까 하는 배부른 생각도 했는데,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었습니다.
그 자리는 벌써, 눈이 벌개진 다른 대기자들이 잔뜩 벼르며 줄을 서 있다가 확 채가는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아마 5-6년전만 해도 이런 자리에는 어느정도 경력자가 지원만 하면 서둘러 모셔갔을 겁니다.
집에서 가까운 큰 회사 중심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점점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게 파악이 되는겁니다. 찾다 찾다 나중에는 지방도시에 나온 자리에 (그나마 큰 회사) 지원해서 면접을 보기도 했습니다. 가깝고 좋은 다른 곳은 면접 기회도 가질 수 없었지요.
그 회사는 토론토에서 세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큰 회사의 지사였는데, 나는 하루 날잡아서 그곳에 가서 면접을 볼 줄 알았더니, 그 회사의 토론토 오피스에서 전화 스피커 폰을 켜 놓고 이쪽 담당자하고 같이 앉아서 하는 전화면접이었습니다.
엔지니어링 일자리를 놓고 오로지 말로만 면접을 하는 것은 채용하는 쪽이나 지원하는 쪽이나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라, 서로 힘들고 김이 새는 일입니다.
채용하는 쪽은 지원자가 그럴싸하게 말만 잘하는 사기꾼인지 아닌지 말로만 듣고 파악을 해야 하고, 지원자는 자기 기술과 경력을 말로만 설명해야 하니 힘들고 짜증나는 일입니다. 게다가 영어가 불편한 나같은 이민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면접 바로 전날,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이 생겼으니 한달간 한시적이긴 하지만 나와서 일을 해 달라고요.
보통 이런 류의 업무 스케줄은 백이면 백 늘어지게 마련이라, 이제 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한달 기한으로 일하다가, 기한이 늘어지고 늘어져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경기가 살아날 수도 있는 일이겠지요.
자 일이 이쯤 되었으니 저기 세시간이나 떨어진 지방도시의 회사의 면접에 욕심이 날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면접 바로 전날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면접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서 일단 면접을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면접장소는 그 회사의 토론토 오피스였습니다. 면접시간에 맞춰서 가니 그쪽 오피스에서 한 명, 그리고 전화상으로 두 명 이렇게 셋이 면접을 보더군요. 그런데 이쪽 오피스에서 나온 한 명이 전에 회사 같이 다니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바닥이 이렇게 좁습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다지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별 기대를 할 수는 없었겠지요.
보통 한국말을 할 때, 머리속에 있는 내용은 한번 걸러지고 다듬어져서 입 밖으로 나옵니다. 무슨 언어든 간에 모국어를 하는 사람들은 다 그럴겁니다. 그런데 외국어는, 즉 영어는, 말을 하긴 하는데 머리속이 너무 바빠서, 미처 걸러내지 못하거나 순화되지 못하고 그냥 말이 나와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직설법을 안좋아하는 이곳 분위기에서 그런 실수는 간혹 치명적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화로 그것도 앵앵거리는 스피커폰을 듣고 설명을 해 나가자니 참 힘들고 지루하고 짜증이 나더군요. 면접이 한시간이 넘어가자 이제 이만큼 했으면 성의는 보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말 나오는대로 말을 하게 되더군요. 그런 면접이 성공할 리가 없지요.
나는 이 회사에서 꼭, 반드시 일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냥저냥 데면데면, 그랬으니 채용을 하면 이상한 일이겠지요. 결정타는 원하는 연봉을 제시하라 할 때 그냥 솔직하게 말했더니 갑자기 말이 없어지더군요. 아마 이친구 요즘 분위기 파악 못하고 정신나간 소리하고 있군 했을겁니다.
보통은 연봉 협상할 때, 이쪽이 확연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회사의 사규를 따르겠다'고 합니다. I am ready to follow the company's guideline. 겸손하게 너네 회사에 꼭 들어가고 싶다는 소리입니다.
그래도 채용될까 말까한데 칼자루는 커녕 대기자가 잔뜩 벼르면서 밀려있는 상황에 분위기 파악 안되는 소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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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면접을 파장을 내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시적이긴 해도 며칠 후 회사 복귀가 예정되어 있으니 별로 섭섭한 점은 없었습니다. 다만 면접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갔던 것이었으니까요.
오랜만에 회사에 나와 일을 하니 좋더군요.
매일 개목걸이처럼 걸고 있는 신분증 겸용 전자식 카드키도 반가왔습니다. 보안인지 뭔지 출퇴근때는 물론이요 사무실 문 열때마다 이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문 옆에 달려있는 감지기에 스치기만 하면 되므로 그다지 귀찮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나 했더니 그건 아니고 기존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었지요.
그동안 휴가를 많이 까먹었기 때문에 열심히 초과근무를 해서 만회를 해 나갔습니다. 그만큼 일이 많기도 했습니다.
한 보름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속한 부문에서 갑자기 긴급히 전체 미팅 공지가 떴습니다. 나는 이곳에 파견나와있는 몸이라 미팅에 갈 수 없으니 궁금했지요. 불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팅 끝나고 좀 지날쯤 되어서 부서 동료에게 연락을 했지요. 답인즉슨 내가 소속된 부문이 공중분해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파견나와 있는 사이에 돌아갈 회사가 없어진 것입니다. 부문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여기저기로 팔려가고 나머지 인원은 집에 가게 생긴 것이이요. 나는 여기 파견나와 있는 중국사람과 함께 '나머지' 인원에 속했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몇시간 후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레이오프, 즉 정리해고 통지였습니다. 파견기간이 끝나면 돌아오지 말고 집에 가라는 겁니다.
큰 충격이었지요. 가슴이 뛰고 힘이 쭉 빠졌습니다. 살다보니 별 경험을 다 해봅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기분이 잡쳐버립니다.
한달 반을 놀다가 이제 마음잡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하지만 원래 북미의 고용시장이 이런걸 몰랐던 것도 아니요, 내가 일을 못하거나 사고를 쳐서 그런 것도 아니요 소속된 부문이 해체되어서 사람을 내보내는 판국이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바로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연락을 넣었지요. 그러나 당장 사람을 구한다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구인을 하는 회사도 신청자가 밀려서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어려운 와중에서도 고마웠던 일은, 무엇보다도 나와 같이 일하던 엔지니어가 적극적으로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여기저기 내 이력서를 보내주는 등 나를 도와주었던 일과,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전화로, 이메일로 걱정을 해 주고 도와준 일, 이곳에서도 짧은 기간이지만 같이 프로젝트를 했던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위로해주고 도와 준 일 등입니다.
금요일날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괴로운 주말을 보냈지요.
반전은 월요일에 일어났습니다.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정리해고라니 말도 안된다며 펄쩍 뛰는 것이었습니다. 부문이 해체되면서 살생부를 작성한 것은 맞는데, 나는 남아 있어야 할 사람 명단에 틀림없이 넣어서 승인을 받고 올렸다는 겁니다. 얼마나 고맙던지!
팀장이 금요일날 하루 회사를 쉬었는데, 팀장 부재중에 인사팀에서 부문 해체 작업을 끝내고 팀장에게 통보나 상의도 없이, 확인도 안하고 그렇게 전화를 쭉 돌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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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사회생을 했지요.
그런데 일단 한숨을 돌린것은 맞습니다만 그래봐야 없던 일이 생긴것도 아니니, 이번 파견이 끝나고 돌아가면 일 없이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도 결코 유쾌한 일이 될 수 없겠지요.
결정적인 희소식은 다음날 들려왔습니다. 파견을 끝내고 돌아가서 일이 없을경우 또 다시 파견을 갈 장소가 정해진 것입니다. 파견장소는 원 부문과 같은 건물을 쓰는 원자력 발전(뉴클리어) 부문입니다. 파견 기간은 최소 6개월. 그제서야 이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아직은 이곳의 파견기간이 끝나지 않아 계속 근무중입니다만, 이제 일주일, 길어야 이주일만 있으면 원래 부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가서도 일이 없으면 뉴클리어로 다시 파견을 가게 됩니다만, 아직까지도 새 프로젝트 소식이 없는걸로 봐서는 틀림없이 뉴클리어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뉴클리어는 같은 건물에 층만 다른 층이므로 크게 낯설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년전 뉴클리어에 파견을 갔던 경험이 있으므로 그 곳 사람들은 초면이 아닙니다. 그때도 사람들하고 잘 지냈으니까 이번에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정리해고 통지를 받고 또 번복하는 소동을 겪고나서는 뭐든지 문서로 확정되기까지는 안심이 안되는군요. 뉴클리어로 파견을 가서 내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같이 파견나와있는 중국 아저씨는 다시 파견 갈 곳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즉 이곳의 일이 끝나면 또 집에 가서 회사에서 불러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입니다. 내가 6주간 강제휴가로 집에 있을 때 이 아저씨는 휴가가 아닌 임시해고 상태였습니다. 나보다 경력이 짧고 아무래도 여러모로 일이 좀 시원시원하게 추진을 못하니 그런 것 같았습니다.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는데 이 회사에 오기 전에도 여러번 정리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더군요. 그러니 차마 나는 갈 곳이 마련되어있다고 말을 못 하겠어서, 아직도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빨리 회사가 정상화 되어야 할텐데 큰일입니다.
그런데 부문이 해체되고 나머지 사람들, 그러니까 원래 부서 사람들은 또 지금 내가 파견나와있는 회사건물로 이사를 온다네요. 그러니 내가 소속 부문으로 돌아갈즈음 소속 부문은 또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서로 엇갈리는 운명인가 봅니다.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큰 프로젝트가 터져서, 원래 우리 부서 식구끼리 모여 같이 일하게 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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