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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매뉴얼대로" VS. "알아서"

민아네 2011. 3. 22. 08:31

[2008년 제작한 T-34/85 1/16 탱크 모델]

 

어제 NHK 출신 후지모토 도시카즈 경희대 초빙교수의 인터뷰를 읽었다.
이번 지진 대참사에 일본인이 대응하는 방식을, 한국인과 비교하여 쓴 글이다.

구호물품이 충분한데도 도로가 끊겨서 전달이 안되고 있다는 소식에는, 어느 한국사람이 쓴 댓글이 재미있다.

"한국사람같으면 벌써 알아서 다 이고지고 날랐을 것이다."

일본 당국이 헬기로 구호품을 투하하는 것은 매뉴얼에 없기 때문에 안된다는 판국에 재해 당사자가 구호품을 이고 지고 나른다는 것은 용납이 될 리가 없을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위기상황에는 확실히 한국식이 유리해 보이지만, 평시에는 내 생각으로는 일본식이 유리해 보인다.

한국식 회사생활과 일본식이 다른것처럼, 한국식 회사생활과 여기의 회사생활은 많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일에 대한 책임이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연대책임이었다. 회사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것에는 분명히 장점이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문제에 마주쳤을때,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나 정해진 경로로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것은 같지만, 그것조차 막혀 막다른 골목에 닿았을 때에는, 일본사람은 이미 본인의 책임 한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손을 놓아버리는 반면, 한국사람은 "알아서" 문제 해결방식을 찾는다.

왜냐하면 일이 진행이 안된다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집단의 일원인 나의 책임이기도 하며, 실제로 한국에서 회사생활 할 때 생각을 해 보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기막힌 경우가 많았다.

예를 하나 들어본다.

한국에 있을 때, 프로젝트에 쓸 특수한 컴퓨터 장비를 4대 들여오도록 신청을 했는데, 컴퓨터 부서 담당자가 협의없이 자기 마음대로 삭감하여 1대를 도입했다.

누구의 잘못일까?

신청을 한 사람은 나였는데, 도입 책임자가 도리어 나에게 화를 내며 나무라는 것이었다. 왜? 매일같이 전화해서 "이번 장비 도입건을 잘 부탁" 한다는 "확인절차"를 안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 미친놈의 말은, "장비도입이 신청서 한장 달랑 올리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느냐? 다른 부서는 매일 전화해서 어찌 되어가느냐고, 잘 부탁한다고 확인했다."

규정된 절차에 의해 신청서를 인가를 받아 규정대로 제출했는데도 이랬으니...

지금같으면 물론 이 장비도입 차질에 의한 프로젝트 손해를 보고하여 그 미친놈이 징계를 받도록 했겠지만, 그때는 내가 피래미였기도 하고, (지금도 약간 더 자란 피래미긴 하지만)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한국 회사생활 할 때에는, 규정에 의해 일을 하다가 진행이 막히는 일에는 "상대방을 찾아가서 바지가랑이 붙들고 늘어져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일하면 회사는 좋겠지만, 개인의 경우라면 심히 피곤해진다. 때문에 그 시절 회사 사무실에서는 심심찮게 활극이 벌어지곤 했다.

"너 몇살이야?" 부터 시작되는 난장 싸움은 저 사람들이 고등교육 받고 그래도 한국에서 엘리트 회사라고 다니는 사람들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노파심에서 한 줄 덧붙이자면, 지금은 단언코 이런일이 없을것이다. 일을 하면서 매뉴얼에 의하지 않고 주먹구구로 위기를 넘기면 그때는 당장 좋지만, 반드시 나중에 더 큰 트러블이 터지게 마련이다.

책임한계가 분명하고 철저하게 매뉴얼대로 돌아가는 여기 캐나다 회사는 그러면 아무 문제없이 쌩쌩 잘만 돌아가느냐? 물론 아니다.

여기 회사에도 참으로 성격 지랄같은 싸이코도 있고, 남 시선은 나몰라라 하고 큰소리로 떠드는 무식한 인간도 있고, 말도 안되는 책임을 남에게 덮어씌우는 인간들도 있다. 게다가 업무상 조그만 절차도 매뉴얼에 따라 처리해야 하니 일의 진행이 더디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여기 회사라고 땡치면 칼퇴근일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제정신인 사람치고 당장 내일 아침까지 끝내야 할 일을 책상위에 고스란히 두고 칼퇴근할 사람은 없다. 칼퇴근도 규정에 있지만 초과근무도 규정에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분위기가 규정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매뉴얼을 벗어난 빠른 일처리보다, 매뉴얼에 따른 일처리가 반드시 우위에 있으며 그 누구도 매뉴얼에 벗어난 업무를 강요하지 못한다. 그러면, 평시에 "매뉴얼대로"와 "알아서"가 부닥치면 어찌될까?

여기 실제 예가 있다.

여기 회사에서, 한국 엔지니어링 회사하고 하는, 중남미에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사업주는 그 나라 정부고, 캐나다 회사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하고, 한국회사는 설계와 시공을 한다.

한국회사에서 설계를 하면, 캐나다 회사는 리뷰를 한 후 승인을 하고 사업주에게 최종 승인을 받으면, 한국 회사는 자재 구매 및 공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즉 캐나다 회사가 승인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캐나다 회사가 설계도면을 리뷰하는데 완전 하세월이라, 게다가 뭐든지 규정대로 하는 바람에 이것도 수정해야 하고 저것도 고치라는 주문이 많았으니 한국 회사는 열이 받을대로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정도 시점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캐나다 회사에서 지적한 수정사항을 들고 사업주 (정부관리)에게 찾아가 설명을 하면 사업주측인 정부관리가 오히려 그 정도는 괜찮다며 한국회사에 공사승인을 해주라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황상 한국 회사에서 정부관리를 구워삶은게 확실하지만 사업주가 괜찮다고 도장 꽝꽝 찍어주는데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한국 회사가 공사를 완전 날림으로 하는것도 아니고, 나중에 시공해 놓은 것을 보면 다 "알아서" 붙이고 자르고 해서 안전에 문제없게 시공해 놓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게다가 그토록 짧은 기간안에 말이다.

그야말로 고객만족이 따로 없다. 중간에 캐나다 회사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비슷하게 되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알아서"의 승리라 하겠지만, 과연 거기 소속된 개인은 일을 진행하면서 어땠을까?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어떤 보상이 주어졌을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성취감? 매니지먼트 회사를 엿먹인 고소함? 프로젝트를 단기간에 초과달성한 뿌듯함?

이런 것 보다는 두둑한 보너스가 더욱 설득력이 있을것 같은데, 한국 회사에서 보너스 말 꺼냈다가 틀림없이 들을 말 : "남들도 다 너만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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