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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네 소식

한국 도착. 거소증 신청.

민아네 2023. 1. 16. 19:58

처음으로 비즈니스석을 탔다.

지난번 15시간 비행에서 너무나도 혼이 났던 경험도 있었고, 그리고 "모처럼"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모처럼의 호사였다.

누워서 자다 깨다 편안하게 왔지만, 그러나 비행기 화물칸에 있을 루키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잠깐 서류절차를 위해 루키를 만났지만 루키는 항체검사를 위해 검역소에 며칠 억류되어야했기에 곧 다시 헤어져야했다. 루키는 또 공항 라운지가 떠나가도록 울부짖었다. 공항에서 임시로 사용할 쎌폰도 개통했고 모든것이 순조로왔다.

 

콜밴을 불러 5주간 지낼 임시 숙소에 안착했다.

숙소인 아파트는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다. 집주인이 호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쓸데없는 물건들, 유통기한이 몇년이나 지난 식재료들, 쓰지도 않을 조미료통 등등이 켜켜히 쌓이고 그 위에 또 쌓여있었다.

방 3개짜리 아파트인데 그 중 하나는 무슨 짐을 쌓아놓았는지 아예 별도의 잠금장치로 잠겨있었다.

 

냄새. 그리고 그 냄새. 하수구에서 나는듯 없는듯 나는 그 엷은 구린내같은 냄새.

그러나 참지못해 뛰쳐나갈 정도는 아니고 그저 참고 지낼수도 있을만한, 그런.

 

나같이 한국에 장기거주하러 온 해외동포들은 제일먼저 거소증을 신청해야한다.

거소증이 없으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그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본인명의의 쎌폰이 없으면 온라인 경제활동이나 온라인 관공서 민원도 처리를 할 수가 없다. 도무지 불편하기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한국생활로 들어가는 열쇠같은 쎌폰을 개통하기 위해서는 거소증이 있어야한다.

 

서류를 준비하여 김포 출입국관리소에 갔다. 예약제였고 예약이 꽉 차서 열흘을 기다려야했다. 열흘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고 서울쪽은 한달을 기다려야 했다.

 

김포 출입국관리소는 공장이 즐비한  어떤 거리에 있었다. 건물 현관에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있던 아줌마 하나가 아무런 말도, 미소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민원인 대기실이었다. 아마도 우리를 한국말이 능숙하지못한 중국사람쯤으로 인식한 듯 했다.

 

민원인 대기실은 허름한 행색의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어떤 이는 자기들 나라 말로 떠들고, 혹자는 어눌한 한국말로 직원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밀린 월급을 못 받아서, 못 돌아가요~ 어떡해요~"

 

우리같이 "팔자좋은" 방문자는 없는것 같았다.

우리차례가 되어 마주한 창구직원은 그러나 우리가 준비해간 서류로는 접수가 안된다고 했다. 구비서류 몇가지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준비해간 서류는 "정부 24" 라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통합민원시스템에 나온대로 준비해간 것이었다.

 

내가 가지고 간 랩탑을 꺼내어 "정부 24" 싸이트에 나온 거소증 신청 준비서류 목록을 보여주었으나 그 직원은 "그 사람들이 거기다가 이상하게 써놓은것" 이라며 "하이코리아"라는 곳에서 안내된대로 다시 준비해와야 한다고 했다. 그 직원은 스스로 지칭한 "그 사람들" 속에 자신도 포함된다는것을 잊었을까.

 

하지만 나중에 돌아와서 "하이코리아"를 들어가 검색해보니 정작 거소증 신청 준비서류 안내는 나와있지 않았다. (재발급이나 거주지를 옮겼을 때의 거소변경 준비서류는 안내되어 있었으나 나처럼 최초신고를 하는 사람을 위한 준비서류 안내는 없음) 과연 한국에서는 "알아서" "잘 해야"한다. 나 말고 남들은 "다 알아서" 잘 한다. 다시 방문예약을 해서 10일을 더 기다려야했다.

 

"알아서" 서류를 준비해서 다시 방문을 했다. 이번에는 "알아서" 민원인 대기실로 가서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우리차례가 되어 접수를 했다. 과연 이번에는 일사천리로 접수가 되었다. 지문도 찍었다. 수수료도 미리 "알아서" 딱 맞게 준비해간 현금으로 냈다. 거소증은 우편으로 원하는 주소로 보내주는 줄 알았는데 직접 와서 수령하라고 했다. 그것도 무려 4주 후에. 하지만 괜찮다. 캐나다에서도 무슨 예약이나 신청을 하고 오래 기다리는데는 이력이 난 터이다. 일단 접수가 완료되고 거소번호가 찍힌 접수확인증도 받았으니 개운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앉아있다가 불현듯 한가지 불안감이 뇌리를 스쳤다.

거소증에 한글이름도 들어가는거 맞나? KIM CHULSOO 나 김철수나 뭐가 다를까 싶지만 한국의 쎌폰을 이용한 온라인 본인인증에는 저렇게 긴 영문철자 이름이 안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법무부에서도 몇년전부터 한글이름이 살아있는 해외동포들은 거소증에 한글이름도 넣어준다. 그러면 그 한글이름 명의로 쎌폰도 개통하고 은행구좌도 오픈할 수 있는것이다.

 

거소신고서에 한글이름 넣는 항목도 있었으니 다 "알아서" 넣어주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그래서 직접 물어보려고 "알아서" 다시 갔다. 그냥 "거소증에 한글 이름도 들어가나요?" 이것 한마디만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기때문에 예약이고 뭐고 없이 그냥 갔다.  갔더니 마침 점심시간이라 아무도 없었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자 천만다행으로 우리 서류를 접수해준 여직원이 들어왔다.

 

역시나. 한글 이름을 넣고싶으면 "별도의 신청서 - 한글이름 병기 신청서"를 써서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알아서" 잘 해야하는것은 민원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담당직원은 왜 아까 서류를 접수할때 얘기를 안해주었을까. 나 혼자만의 예외적인 문제가 아닌 이미 수년전 크게 이슈가 되어 법무부에서 추가한 이 사항을, 왜?

 

1차 서류접수때 "정부24" 웹싸이트를 보여주며 따지고 든 데 대한 "엿먹어라" 였을까. 아닐것이다, 그러기에는 두번째 접수때 무척이나 친절하게 잘 해주었었는데. 겉으로 저렇게 친절과 미소를 보이면서 속으로 엿먹어라 했다면 그 직원은 싸이코겠지. 아마도 지금까지 외국인 공장 근로자들의 비자연장이나 임금체불같은 업무만 보다가 우리같은 "팔자좋은" 사람들의 민원을 받으니 익숙하지않아서일것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글이름 병기신청서를 급히 작성하여 제출했다. 내가 신청서 복사본을 갖고싶다 했더니 그 직원은 친절하게 직원용 복사기로 복사도 해 주었다. (원래는 유료) 원래대로였다면 우리는 다시 방문예약을 하고, 10일을 더 기다려서 한글이름을 넣어달라는 신청서를 내고, 다시 한달을 기다려서 새 거소증을 받아야 했을것이다.

 

그렇게 "알아서" "눈치껏" 한 덕에 성공적으로 거소증 접수완료를 했고 12월 27일에 신청했다는 증명서를 받았다. 그런데 거소증을 찾아가라는 날짜는 1월 31일이었다. 신청후 거소증 만드는데 한달이 걸린다는 뜻이었다. 그럴수도 있겠지, 나같은 해외동포들이 많이 한국에 들어와서 거소증 발급해달라고 줄을 길게 선 모양이지.

 

캐나다에서는 이를테면 운전면허 갱신을 하면, 갱신신청을 했다는 종이 증명서를 주고, 이 종이증명서는 운전면허증이 발급될때까지는 운전면허증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종이증명서에 운전면허증과 동일한 운전면허 번호와 인적사항이 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거소증 접수증이 거소증을 대신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내 인적사항과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효력을 가지는 거소번호가 나와있고 주소도 나와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동일한 정보가 담긴 플라스틱 거소"쯩" 이 아니면 쎌폰개통서부터 관공서 증빙발급등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쯩"은 다른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담고있는 정보보다는 "쯩"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듯 했다.

 

시간은 흘러서 1월 22일 설날이 지났다. 거소증 발급일이 다가오자 언듯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번에도 미련하게 발급일까지 손놓고 기다리지말고 "알아서"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했다. 중국악센트가 많이 섞인 어떤 여자가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외국인들이 전화를 많이하니 이렇게 이중언어를 하는 사람으로 전화응대를 하는것 같았다.

 

역시나, 우리의 "쯩"은 이미 발급이 되어있었다. 당장 출입국관리소로 갔다. 우리의 거소"쯩"은 다른 사람들의 쯩과함께 플라스틱 바구니에 얌전히 담겨있었다. 신분확인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그런데 오면서 거소증을 살펴보니 발급일이 3주 전인 1월 5일이었다. 우리는 이미 발급이되어 우리를 기다리고있던 "쯩"을 3주나 앉아서 기다렸던것이다.

 

이렇게 일주일만에 만들어지는 거소증을 왜 담당자는 4주 후에 찾으러 오라고 한 것일까. 아마도 개중에는 4주 걸리는 경우도 있기에 그렇게 충분하게 지정을 했겠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면 왜 우리보고 "발급에 최장 4주까지 걸리고 그 전에 발급이 될 수도 있으니 중간중간에 안내전화번호로 알아보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물론 창구의 담당자는 매우 친절하고 예의발랐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민원인이 신청한 일이 진행되게끔 하는것은 그이의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남들은 "알아서" 한국 랜딩후에 일주일이면 받는다는 거소증을 우리는 두달을 걸려서 겨우 받았다. 그것도 "알아서" "눈치껏"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걸렸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거소증을 만든 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제일먼저 쎌폰을 개통했다. 인터넷은 여러 업체들이 거소증 없이는 안된다는것을 "알아서" 동네 업자에게 부탁하여 미리 개통해 놓았었다. 다음에 은행 구좌 명의를 한글로 바꾸었고 카드도 발급받았다. 한국에는 아마존이 없고 쿠팡이 대세라하니 쿠팡에 가입도 해서 이것저것 당장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이제 최소한 돈쓰는데는 지장이 없다. 나날이 줄어드는 잔고만 신경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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