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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의 전화 본문
2007년에 쓴 글.
옛날 이민오기 전에 이민신청에 대한 정보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차에, 궁리끝에 컴퓨터 온라인 모임 (당시에는 PC 통신이라 부르는)을 하나 만들었지요. 회사에 몸담고 있는 처지라 가명으로 만들어서 이민준비 하는 사람을 수소문했더니 금방 몇명이 모였습니다.
이메일로 정보교환을 하고 실제로 종로에서 만나기도 했지요. 여기에 사는 이선생을 만난것도 그 당시입니다. 97년 겨울이었으니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이선생: 캐나다에 어릴때 이민을 온 사람. 같은 엔지니어여서 이민정착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때 컴퓨터 회사다니던 사람 셋/ 증권회사 과장이 하나/ 그리고 엔지니어인 나 이렇게 다섯이 모였습니다. 컴퓨터 하던 사람은 둘이 남자였고 하나가 미혼인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모임에 몇 번 나오다가 미국에 취업이 되어 먼저 떠났지요.
당시에 Y2K 라 해서 2000년 넘어가는 시점에 전산인력이 많이 필요하던 때라 컴퓨터가 특기인 사람은 이민이나 해외취업이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에도 수많은 분야가 있어서 인기가 있는 분야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엔지니어인 내가 종로의 컴퓨터 학원을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대개 그런 모임은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잊혀지게 마련일까요? 그 여자는 떠난 뒤 몇 번 남은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다가 연락이 끊기더군요. 하긴 이민와서 살아보니 이민 초창기의 그 바쁘고 얼떨떨한 상황에 계속 연락을 취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민 서류를 다 준비하고 접수 직전에 한명이 포기를 하더군요. 도저히 홀어머니에게 말을 꺼낼 수 없어 포기한다 했습니다. 이제 남은것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증권사 과장, 그리고 엔지니어인 나 이렇게 셋이 남았지요.
남은 셋이 이민 접수를 하고 길고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미국에 취업이 되어 떠나더군요. 캐나다 이민은 그냥 포기한다 했습니다. 미국에 취업이 되면 미국 영주권 받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구태여 캐나다 영주권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남은것은 증권사 과장하고 나 이렇게 둘이 남았습니다. 미국으로 떠난 사람도 현지 정착하기에 바빴는지 흐지부지 연락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민신청 과정에서 캐나다 대사관에서 우리집 주소를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접수증조차 못 받고 엄청 애를 태웠었지요. 당시에는 한국 주재 캐나다 대사관이 아닌 필리핀 대사관으로 서류를 보내야 했습니다.
폭풍같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민 면접도 면제되어 영주권을 받고 캐나다에 왔습니다.
한국에는 증권사 과장만 남았는데, 내가 이민을 온 당시부터 한국이 경제위기에 들어가고 또 수년 후 회복이 되면서 그 와중에 증권사가 재미를 보았는지 그 증권사 과장은 별로 이민을 올 마음이 없어진것 같았습니다.
4,5년 후에 들리는 소식으로는 그 증권사 과장은 밴쿠버로 이민을 와서 유학원을 차렸다 합니다. 나도 반가와서 이메일을 보냈는데 어쩐일인지 답장이 없었고 또 나도 흐지부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랜만에 미국으로 취업이민을 갔던 양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정착을 한 곳이 디트로이트 근교이고 캐나다하고는 별로 멀지 않은 곳이더군요. 토론토까지 자동차로 4,5 시간 정도니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양반은 취업이민 갔던 그 회사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오랜만에 통화여서 그런지 오히려 할 말이 별로 생각이 나지 않아 아쉽게도 피상적인 대화만을 힘겹게 이어가다가 다음에 한번 꼭 보자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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