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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같은 거짓말 본문
20070919
2007년 9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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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각나는 국민학교 5학년때 학교에서의 기억이 있다.
당시 담임선생은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항상 다듬이 방망이 정도 크기의 검은 갈색의 굵은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며 애들을 수시로 두들겨 패곤 했었다. 수업시간은 항상 공포의 시간이었지만 또 아이들은 그런 체제에 순응 할 수 밖에 없었고 또 그런대로 견딜만 하게 느껴졌었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그는 선생"님" 이라는 존칭을 붙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국민학교 5학년 짜리 애들에게 꿈과 희망, 동심 등등의 단어는 낯간지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보다는 자고 일어나면 무섭게 변하는 세상,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면 영영 도태되어버리는 이 잔인한 현실세계에 애들이 빨리 눈을 뜨고 눈치빠르게 적응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기르던 강아지가 죽어서 울다가 숙제를 안해온 아이에게 그 선생은 어이없다는 듯이 픽픽 비웃음을 날리며 야, 그깟 개새끼 한마리 죽었다고 숙제를 안 해? 고따위 핑게가 통할 줄 알았지? 등등 아이들의 인격을 사정없이 뭉개버리며 가혹한 매타작을 날리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강아지가 죽었다는 변명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며 아이들은 언제나 착하고 순수하지만은 않은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적응에 매우 강하다. 이런 스타일의 선생에 적응해서 아이들은 더욱 얍삽하게 생존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강아지도 오래 키우면 눈치가 빤해 지는데 하물며 아이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 공포의 와중에서도 딴짓 할 놈들은 더욱 교묘하게 딴짓을 하고 노는 놈들 역시 더욱 고단수로 놀곤 했다.
어느날 국어시간이었다.
담임선생은 몽둥이를 들고 책상사이로 나 있는 통로를 왔다갔다 하며 국어책을 읽고 있었고 아이들은 책을 펴고 묵독을 하고 있었다. 만일 잡담을 하거나 딴짓을 하거나 꼼지락거리기라도 하면 가차없이 정수리에 몽둥이가 내리 꽂힐 것이었다.
선생이 왔다갔다 하는게 아니라 내 눈에는 그 매서운 몽둥이만 왔다갔다 하는것으로 보였다. 아마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국어책을 곧추 세워들고 열심히 읽는 척을 하고 있었고 교실은 개미 발자국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한 가운데 몽둥이만 왔다갔다 하면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지루해져 버렸고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마침 바로 앞 자리에는 평소에 만만하게 생각하던 병섭이가 있었다. 나는 책 밑으로 손바닥을 바짝 붙여 내밀어 책상위에 놓인 연필을 앞으로 쓰윽 밀었다. 연필의 뾰족한 끝이 병섭이의 등을 푸욱 눌렀다.
평소 같으면 누가 부르는 줄 알고 휙 뒤를 돌아보면 되었겠지만 만약 지금 그랬다가는 가차없이 몽둥이 세례를 받을 것이었기 때문에 병섭이는 근질거림과 따끔거림을 참으며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병섭이는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참는것 같았다. 나는 그게 재미있어서 두번 세번 계속 꾸욱 꾹 그의 등을 눌러댔다. 몇번 하다가 그것도 시들해져서 그만 해야겠다 생각을 한 순간, 엄청난 일이 터져 버렸다.
참다 참다 못한 병섭이가 우당탕 소리가 나도록 걸상을 뒤로 밀어 젖히는 동시에 휙 돌아서며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던 것이었다.
"야 이 새끼야! 왜 사람을 귀찮게 굴어!!"
그런데 거기에는 문제가 몇가지 있었는데, 첫째는 병섭이 자신이, 평소 착해빠진(!) 나를 비롯한 반에서 결코 힘깨나 쓴다는 그룹에 들지 못하는 애들까지 만만하게 볼 정도로 착하고 여린 성격의 소유자였던 터라, 본인이 공포의 수업시간에 저지른 엄청난 도발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본인부터 울기 시작했다는 것과,
두번째는 이 얼빵한 놈이 자기를 괴롭힌 놈에게 카운터 펀치를 먹이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뒤로 돌긴 했는데 나하고 내 짝중에 어떤놈이 자기를 괴롭혔는지 미처 파악을 못했다는 것.
세번째는 공포의 몽둥이를 도데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대책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공포의 몽둥이가 달려와 병섭이의 면상에 겨누어졌다.
"야, 너 미쳤어?"
이미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병섭이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징징대며 항변했다.
"가만- 있는- 데 잉~잉~ 뒤에서 흑~흑~ 자꾸 찔 - 르고 잉~잉~"
몽둥이가 병섭이의 얼굴을 떠나 내 얼굴 한복판에 정통으로 겨누어졌다.
"니가 그랬지?"
너무 무서웠다. 선생이 진짜로 내 얼굴을 몽둥이로 후려칠 것 같았다. 나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뇨?"
몽둥이가 내 짝 철호에게 겨누어졌다.
"그럼 니가 그랬냐?"
철호는 결백을 주장하면서 불쌍하게도 공포에 질려 파들파들 떨고 있었지만 사실 내 모습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 와중에 철호도 나의 범행 장면을 미처 목격하지 못한 것 같았다. 철호에게 미안했지만, 나도 살아야 했다.
"허! 이놈도 안했고 저놈도 안했다니 그럼 귀신이 했냐? 야! 너! 오케이?"
선생은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빙글 빙글 돌리며 미쳤다는 시늉을 하며 불쌍한 병섭이를 사정없이 빈정댔다.
그때 하늘이 도왔는지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렸다.
몽둥이는 이 소란이 피곤하고 귀찮아졌는지 너희들 나중에 따로 보자는 한마디를 남기고 교무실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그 일을 잊은 듯 했다. 천만 다행으로 그 일은 그렇게 잊혀져 갔다.
며칠 후,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와 찜뽕을 하며 놀고 있었는데, 잠시 땀을 식히고 있는 나에게 병섭이가 비실비실 다가와서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야! 그때 내 등 찔른거 누가 그랬는지 난 안다!"
뜨끔해서 굳어있는 나에게 병섭이는 말했다.
"철호 그새끼, 그새끼가 그랬다! 시미치 떼면 내가 모를 줄 알고?"
......................
P.S.1) 병섭이는 그 이후로도 내내 시치미를 시미치로 알고 있었다.
P.S.2) 철호야! 병섭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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