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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한국에서

봉사의 감성와 스킬

민아네 2024. 2. 11. 20:16

20090120

2009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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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을 하는데는 감성과 그에 맞는 스킬이 필요하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뜨거운 마음이 없는 봉사는 차갑고 기계적인 노력의 제공이 될 뿐이고 열정만 있는 봉사는 도움을 주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복합 장애라는 것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복합 장애라는것은 한가지 이상의 장애를 지칭하는데, 팔 다리가 불편한 정도는 아주 양호한 편이고, 예를들면 시각장애 + 뇌성마비 + 다운증후군, 청각장애 + 뇌성마비 + 시각장애 등등 옆에서 사람이 한시도 떠나지 못하는 그런 장애를 말한다.

종로구 인사동에서 종로경찰서 뒤편 골목으로 가면 "라파엘의 집" 이라는 복합 장애아 시설이 있다. 허름한 구옥을 개조하여 이런 복합장애아를 돌보는 시설을 만든 곳인데, 이 아이들은 고아가 아니라 다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고, 단지 먹고 살기가 고단해서, 항상 부모가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 이런 장애를 가진 자식을 돌볼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여기에 애들을 맡기는 것이었다.

라파엘의 집, 90년대 당시에는 가정집같은 대문 옆에 조그만 간판이 달려있을 뿐이었다.


이 시설의 입소자격은 시각을 포함한 복합장애였는데, 즉 기본적으로 눈이 안보이는데다가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어야 입소가 되는 곳이었다.

아침에 아이를 맡기고 일을 나갔다가 저녁에 데리고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고, 보통은 몇달씩 장기적으로 아이들을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문적인 caregiver들이 있었지만 그들만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고 사회 각지에서 그렇게 자원봉사자들이 스케줄을 만들어 와서 도와주는 것이었다.

처음 일을 하러 갔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내 딸네미가 서너살 되던 시절이었는데, 딸 같은 또래의 애들이 그 처절한 장애를 가지고 방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이 천사같은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오는 바람에 눈물을 참느라 벽에 걸린 애들 이름표를 보는척 하면서, 누군가 어깨를 툭툭 치며 빗자루를 건네줄 때 까지 한참동안 벽을 보고 서 있어야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나의 눈물이 아니라 빗자루였던 것이었다.

장판을 바른 방바닥에는 애들이 눕거나 앉아 있었는데 모두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 더해서 뇌성마비 소아마비 다운증후군 등등이 있어서 밥을 한번 먹이려고 해도 각자 장애에 맞도록 써빙을 해 주어야지 안그랬다가는 예를들면 기도에 밥이 들어가 큰일이 나는 수가 있었다. 많은 애들이 기도가 막혀도 제대로 기침도 못하는 상태였다. 입에 밥을 넣어도 삼키는 동작을 못해 죽을 흘려넣어 주어야 하는 아이도 있었으니까.

뇌성마비에 시각장애를 가진 애들은 정신은 멀쩡하니 일하기가 그나마 쉬운 케이스였는데 처음 일하러 가서 애들 밥을 먹일 때 밥숟가락을 떠서 애들 입에 넣어주다가 호되게 혼이 나고 말았다.

즉 애들 불쌍하다고 그렇게 무작정 입에 밥을 넣어주면 애들이 숟가락 조차 들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면서 대개 나처럼 처음오는 얼치기 초보 자원봉사자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해서 골치가 아프다 했다.

결국 나는 밥 먹이는 보직에서 짤려서 방바닥 쓸고 닦는 청소조로 배치되어 그날을 보냈고 몇 번 열심히 하고 나니까 애들 산책시키는 일, 용변시키는 일 등등으로 승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도 몇번 하다보니 나중에는 발칙하게도 아이들에 대한 연민은 어느새 약해지고 때때로 코를 막아야 하는 험한 일(?)을 맡으면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즉 스킬은 늘었는데 감성이 약해지는 것이었다.

정해진 스케줄이 끝나 다른 이들과 교대함으로써 봉사활동도 끝을 맺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같은 초보에게는 다소 벅찬 일이었음을 고백하며 지금도 그 일을 주면 감성과 스킬을 잘 조화시키며 성공적으로 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다른 여러가지 봉사활동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뜨거운 신앙적 결단, 열정과 연민 그리고 일에 대한 욕심으로 시작을 하지만 그 중에 정말 그 일에 꼭 맞는 실력과 스킬을 가진 사람을 적소에 임명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며 또한 일을 맡은 사람도 오랜 시간이 지나 점점 그 일에 숙달되어 가면서 처음의 열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또한 쉬운일이 아니리라.

열정이 식어버린 봉사활동은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노력의 제공일 뿐, 자신을 위해서도 또한 대상을 위해서도 바람직 하지 않다고 본다. 특히 위에 언급한 대로 아이들에 대한 봉사활동은, 아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가막히게 알아채기 마련인지라, 항상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을 말로 또 눈빛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런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그 아이들에게 훌륭한 봉사자가 아니었음을 고백해 본다.

반대로, 열정은 앞서는데 전혀 준비되어진 기술이 없다면 이 또한 골치아픈 일이다. 본인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한다고 하는데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주변에서 그만하라고 하기도 어렵고 난처한 상황이 연출된다.

앞으로 감성에 맞는 실력이 있는지, 실력에 맞는 감성이 있는지 한번 돌아보고 봉사를 하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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