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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집주인이세요?

민아네 2023. 3. 15. 19:00

우리 이전에 살던 세입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젊은 친구들이었는데, 큰 개를 서너마리 키우고 있었다. 본인 입으로는 개 트레이너라고 했다. 아파트에서 도저히 트레이닝 비즈니스를 할 수가 없어서,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팔뚝에 문신이 있는게 좀 꺼림칙하기도 했지만, 말도 바르게 잘 하고 그렇게 불량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는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든지 내가 참견할수도 없고 참견해서도 안되는 일이지만, 우리가 이사를 하고나서 청소와 소소한 수리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소모하고 나서, 그리고 아랫집 아주머니로부터 이전 세입자에 대한 컴플레인을 듣고나서는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럭저럭 우리집은 하나 둘씩 셋팅이 되어갔고 일부러 가까운 명소에도 가볼만큼 약간은 마음의 틈새가 생겼다.

 

이제 아랫집 아줌마로 돌아와보면, 그 아줌마는 우리를 보자 반색을 하며 이전 세입자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개똥을 아파트단지 여기저기에 방치하는것은 예사이고, 개털이 너무 날려서 골치아팠으며, 개 짖는 소리, 새벽 한두시까지 쿵쿵거리는 층간소음에 담배연기까지 아주 "막나가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컴플레인이 끝나자 우리에게 호기심어린 질문이 훅 들어왔다.

 

"그런데, 집주인이세요?"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무슨 대답을 해야하나? 무례하군요. 그런 질문은 삼가주시죠. 이렇게 나오면 너무 건방져보일테고, 뭐 이런걸 물어보나? 요즘 한국 트렌드인가? 아니 이런것 가지고 기분상할것 까지야 있나?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이 흩어져 교차하며 혼선을 일으키면서 어버버버하다가 그냥 "세입자입니다" 라고 말해주었다.

거기에 민아엄마가 한마디 보탰다. "월세예요."

 

아래층 아줌마는 그럼에도 미소와 친절함을 잃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여기 처음 입주해서 계속 살았어요."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루키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그 아줌마를 만났다. 아줌마는 루키를 보면서 지난 세입자의 만행을 또 나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루키는 털이 안빠지는 품종이고, 루키의 응가봉투를 보여주며 나는 결코 단 한번도 개똥을 그자리에 남겨둔 적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설명을 했다. 나 역시 웃으며 친절하게 답을 하긴 했어도 기분이 좀 그랬다.

 

여러날이 지났다.이번에는 민아엄마가 루키를 데리고 나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아줌마를 만났다. 민아엄마는 그래도 친절하게 먼저 말을 건넸다.

"혹시 시끄럽지는 않으세요? 이제 괜찮으세요?"

 

아줌마가 역시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유~ 괜찮아요! 이제 조용해요! 가끔 개짖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괜찮아요."

"우리는 괜찮지만 그집 윗층은 더 크게 들릴수도 있어요."

 

민아엄마가 어버버 하는데 이 아줌마가 다시 루키를 물끄러미 보면서 한마디 하는것이었다.

"아유~~ 너는 목소리가 크구나??"

 

뭐지? 최신 유머인가? 혹시 지금 몰래카메라? 아래층 아줌마는 우리의 당혹스러운 기분을 알아챈것일까, 아니면 월세사는 우리에 대한 집주인의 우월감일까? 그것도 아니면 새로 이사왔다는 사람들이 떡도 안돌리고 인사도 안하니 건방떤다고 생각을 한 것일까? 요즘 그 아줌마는 우리를 봐도 그냥 가볍게 목례만 할 뿐, 샐쭉해져서 아무말도 하지않고 휑하니 비켜갈 뿐이다.

재미있는 이웃을 만났다. 이 동네는 뭐랄까, 마치 왕룽일가 드라마속의 인물들처럼 치장되지 않은 날것의 무례함과 순박함이 버무려진 그런 등장인물들이 계속 출연할 것 같은, 그런 연극무대같아서 기대가 된다.

 

이 왕룽일가 속의 나는 어떤 인물일까? 외국에서 왔으니 "쿠웨이트 박" 정도? 민아엄마는 쿠웨이트 박이 작업걸던 은실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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