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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겨울

민아네 2011. 12. 25. 10:28

<12월 11일 밀튼 지역의 트레일 코스에서>

                                        
겨울의 초입이라 해도 아직은 푸근하다.

매일 저녁 아내와 산책을 한다.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것도 좋고, 얘기를 안해도 자박자박 들리는 둘의 발소리가 좋다. 노란 가로등 밑으로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나는 캐나다에 와서 4년동안 백만원짜리 월세 아파트에 살았다.

나는 운이 좋았다.
이곳에는 발 들여놓기도 꺼려지는 슬럼같은 아파트도 많았지만 나는 오래된 주택가 언저리에 오롯이 있는, 관리가 잘 되어있는 아파트에 입주했다. 초짜 이민자에게는 세를 안준다는 것을 어렵게 보증인을 세워 들어갔다.

여기는 보증금이 없다. 그러니 무보증금에 월세 백만원짜리 아파트라면 한국으로 치면 서민중의 서민 아파트겠다. 게다가 전기세 물세가 월세에 포함되어 있으니 더욱 서민용이겠다.

아파트에 오래 살았던 이유는 돈도 돈이었지만, 그 아파트는 낡았어도 깨끗하고 넓어서 우리 식구가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게다가 여기서는 보기드문 시냇물 흐르는 숲속의 예쁜 공원을 끼고 있었기에 굳이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단독주택이 필요해졌고 직장도 안정되어 이제는 정착이 웬만큼 되었다 생각이 들었을 때, 전세주고 온 한국의 아파트를 팔아 이곳에 배나무와 자두나무가 있는 정원이 딸린 작은 단독주택을 샀다. 이곳에 과일나무있는 정원은 흔하며 오히려 과일나무가 있으면 동물들이 모여들고 또 과일이 떨어지면 정원이 지저분해지니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이후에도 아파트를 끼고 있던 그 공원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지금 우리집도 뒷마당이 공원으로 이어지지만 그냥 뻥 뚫린 넓직한 잔디공원일 뿐이라 옛날의 오솔길도 있고 시냇물도 흐르던 옛날 그 공원 산책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람쥐가 후다닥 무언가를 물고 바쁘게 지나간다.

옛날에 아파트 살 때 그 여우 나오는 산책로가 더 좋았지만 그래도 그때는 해가지면 무서워서 못 갔는데 동네 산책은 깜깜해져도 갈 수 있으니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산책할 때 나는 손잡고 걸으려 하는데 아내는 자꾸 남사스럽다고 싫단다. 걸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먼 훗날 은퇴후에 한국에 집을 사 놓고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면서 살면 좋겠다는 얘기도 한다. 한국 생활을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한국에서 살 집은 아내와 산책할 때 서로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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