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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런거지, 뭐 그런거야... 본문

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다 그런거지, 뭐 그런거야...

민아네 2024. 3. 11. 17:59

2021년 3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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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아련한 오래 오래 전 검정 교복입고 다니던 중학생 때, 지금도 그렇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열댓 과목이 바둑판처럼 촘촘히 새겨진 시간표에 따라 대개 쌀가마니처럼 빵빵하고 묵직한 무게의 가방을 들고 다녔다.

 

버스에 승객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그건 혼잡한 혹은 만원버스라는 표현으로는 한참 모자란, 이를테면 그 상태를 보여주는 계기판 같은 것이 있다면 바늘이 위험을 알리는 빨간 눈금을 한참 지나 압력을 못 견뎌 칙칙 소리를 내며 부들부들 떨다가 마침내 계기판의 유리가 터져나가는 그런 정도의 혼잡이었다.

그시절의 만원버스

 

그런 아비규환의 한가운데에서 머리속에 넣고싶은 그러나 용량문제로 못 들어간 책을 대신 쏟아넣은 가방의 부피와 무게를 들고 견디어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공부가 시원찮은 학생이 들고다니는 가방은 또 크고 무겁다. 내 가방 역시 늘 무겁고 빵빵했다. 전날 머리에 다 집어넣지 못한 공부에 대한 불안을 가방에 책을 챙겨 집어넣음으로써 어느정도 상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훈훈한 마음은 늘 있었으니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그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말없이 슥 잡아당겨 무릎에 받아주는 따뜻함은 늘 기대해도 좋았다.

 

여학생이 가방을 받아주면 제일 좋고 아줌마 아저씨들이 받아주어도 물론 땡큐였다. 그 때 고등학생 가방이란게 교실 뿐 아니라 땅바닥 흙바닥에 험하게 굴려지게 마련이라 가방이 지저분할 수도 있었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검정 교복을 입고 지친 표정으로 서 있는 학생들의 가방을 기꺼이 자신의 무릎에 올려놓아주었다.

 

지금은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말도없이 자신의 가방에 손을 대면 화들짝 놀라며 불쾌하게 생각할런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하교길에 버스를 탔는데 늘 그렇듯이 내 앞에 앉아있던 학생이 빵빵하게 무거운 내 가방을 잡아당겨 무릎에 놓아주었다. 검정 교복 카라에 달린 학년뱃지를 보니 중2 학생이었다. 나는 중3 이었기 때문에 존대말로 고맙습니다, 는 좀 아닌것 같고 그렇다고 고맙다 하기는 좀 그렇고 해서 고맙... 하고 말꼬리를 흐리며 어쨋든 고맙다는 표현을 하기는 했다.

 

그렇게 계속 서서 가는데 사람들이 계속 꾸역꾸역 버스에 타는 바람에 나는 점점 저 뒤켠으로 밀려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맨 뒷자리 아저씨가 내리는 바람에 내가 앉았는데, 내 가방을 받아준 학생하고는 이미 거리가 저만치 멀어져버렸다.

 

내 가방을 찾으러 자리를 뜨면 누군가가 내 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나는 그냥 앉아가기로 했다.

 

버스가 종점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내려서, 이제 서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다. 자신이 가방 주인이 눈에 보이지 않자, 내 가방을 무릎에 얹어놓고 있던 학생은 두리번 거리면서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내 책가방을 찾으러 가기가 귀찮아져 버렸고, 또 버스안 여러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쭐레쭐레 내 가방을 받으러 가기도 좀 머쓱했다.

 

만일 그 학생이 내가 내리기 전에 내린다면, 그는 내 가방을 좌석에 놓고 내릴것이고, 그러면 나는 그때 그 곳으로 가서 내 가방을 회수하고 그 자리에 앉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케도 그 학생은 내가 내릴 때가 다 되도록 계속 앉아가고 있었다. 혹시 그는 내 가방때문에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게 아니었을까?

 

드디어 내가 내릴 정류장이 가까와졌다. 나는 비실비실 일어나서 그 학생에게 갔다. 내가 내 가방을 들어올리자 그는 이제 가방주인이 나타나서 안심이다, 혹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내 가방을 미리 받아가지 않아 미안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본의아니게 뒤로 밀려가게 되어서 내 가방을 제때 회수못했다고 구구절절 변명을 해야할지,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이 걸리는데다가 구차한 것 같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무말이나 하긴 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내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 다 그런거야 임마.

 

윤항기의 다 그런거지

 

중3인 내가 아직 어려서 세상물정 모르는 중2 학생에게 세상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거야, 뭐 그런 의도로 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코찔찔이 중학생 녀석이 똑 같은 놈한데 그렇긴 뭐가 그렇다는 말인가? 내가 말해놓고도 얼굴이 달아올라 부끄러워졌는데 마침 버스 문이 열렸고 나는 내 가방을 챙겨 잽싸게 버스를 내려 그 어색한 상황에서 금방 벗어났다.

 

너와 나는 같은 검정교복을 입고 고생하는 대한민국 중학생, 너와 나는 한 배를 탄 동료, 그러니 이런 일 쯤은 우리사이에 다 그렇듯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뭐 이런 뜻 정도? 사실 나도 무슨 악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불가항력으로 그렇게 된 것일 뿐 그냥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냥, 아 미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고마워. 정도면 자연스럽게 수습이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거야말로 수십년 뒤의 내가 생각하는 뒷북중의 뒷북이고 당시에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 다 그런거야 임마.

 

왜 나는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을까?

 

유행가 가사에도 있듯이 다 그런거야, 뭐 그런거지, 아, 그러길래 미안 미안해 하는 말이 유행하던 시대였다.

 

내가 잘못한건 맞는데 그거 뭐 그렇게 큰 일도 아니면서 그냥 못 넘어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느냐, 뭐 이런 정도의 의미겠다. 다 그런거지, 는 설득이고 아 미안미안해는 사과 부분이다. 그러나 이 말은 동시에 피해자가 납득을 못하고 계속 따지고 들 경우 피해자를 "쪼잔이"로 둔갑시키는 마법의 주문도 된다. 얼마나 편리한가.

 

그렇긴 뭐가 그런가, 무언가 상식에 벗어난 일을 벌일 때, 부조리한 행동을 꾸밀 때, 예를들면 새치기를 하고나서 황당한 표정을 짓는 뒷 사람에게 하는 말, 시간약속을 해 놓고 못 지켰을 때, 혹은 짤짤이를 하면서 "야마시"를 치다 들켰을 때, 소소한 남의 물건을 슬쩍했을 때 등등, 뭔가 좀 부끄럽고 민망하고 나의 양심이 허용하는 울타리에서 살짝 벗어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리 나가지는 않았을 경우, 그럴 때 이런 말이 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리 봐도 한참 멀리나간 추잡한 일을 저질러놓고도 다 그런거지 라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양심이 허락하는 울타리의 높이는 사람마다 다 다른것이 확실하다.

 

중학교 시절의 그 조그만 일, 다 그런거지, 했던 일이 이십여년 후 나에게 다소 더 큰 일로 다가왔다.

 

세운상가 2층. 저 모퉁이 어딘가에 "빨간책"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개인용 컴퓨터가 막 유행하던 시절 그나마 컴퓨터를 좀 잘한다는 나는 (그때는 키보드를 빨리 치는게 컴퓨터를 잘하는 것으로 통하던 시절) 여러사람의 컴퓨터 주문을 받고 대표로 청계천 세운상가에 갔는데, 여러가지 컴퓨터 부품을 놓고 최종 견적을 뽑은다음 가게주인이 은밀한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 가격을 좀 많이 빼 드릴까? 뺀 가격은 다른 사람 물건에 나눠 넣으면 되니 말이오. 뭐 다 그런거지, 하하하.

 

즉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동시에 다른 주문자의 견적을 부풀리겠다는 소리다.

 

나에게 부탁한 사람이 다들 친한 사람들이라 차마 그렇게는 못했지만, 잠시 잠깐 마음이 설레였던 것은 사실이다. 내 심성이 정의로와서가 아니라 다 그런거지 뭐, 남들도 다 그러는데 뭐, 못해먹는게 병신이지, 이렇게 말하면서 과감하게 넘어갈정도로 나는 대범하지 못한, 그냥 평범한 쪼잔이였을 뿐이다.

 

십수년전 이민을 결심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속을 마치고 출국을 할 때 쯤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왜 이민을 가느냐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민자라면 다 같은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민을 왜 가느냐고? 글쎄. 그냥 이민병에 걸려서? 교육때문에? 더 나은 기회를 찾아서? 여러가지 모범답안이 머리속에 빙글빙글 돌고 돌다가 또 저절로 대답이 나왔다.

 

- 나는 줄 서서 기다리면 내 차례가 오는 곳에서 살고싶어.

 

한국이라고 줄 서서 한없이 기다리는데도 내 차례가 오지 않을까. 은행에서, 놀이동산에서, 회사에서 큰 사고 안치고 그냥 줄 잘 서면 내 차례가 오기는 온다. 다만 줄 중간에 끼어드는 얍삽한 인간들 때문에 속도가 더딜 뿐.

 

그런 얍삽이들 때문에 사람들은 늘 신경이 곤두서있다. 운전을 하면서, 줄을 서면서, 회사에서, 병원에서, 심지어 식당에서 나보다 늦게 주문한 사람의 음식이 먼저 나오는지 감시를 한다.

 

수치를 모르는 얍삽이들은 말한다. 다 그런거지 뭐, 아 미안해, 그러다가 오히려 화를 낸다. 아 미안하다 했잖아?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까 그만좀 해.

 

어느샌가 한국은 얍삽이들의 세상으로 변했다. 이제 변명도 사과도 없다. 얍삽이들은 더이상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냥 당당하게 남의 차례를 가로챌 뿐이다. 그들에게 부끄러움이란 추호도 찾아볼 수 없다.

 

- 다 그런거지 뭐, 아 미안미안해.

 

이런 변명과 사과는 이런 윽박지름으로 변했다.

 

- 뭐, 그래서 어쩌라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엄청난 인파를 보며 내가 이민 올 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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