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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착해지는 공부

민아네 2013. 11. 28. 10:12

권정생 선생님의 글 "열 여섯살의 겨울" 에서 일부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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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시대 때도 양반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더 훌륭하고 죽도록 일을 하는 농사꾼이나 도구를 만드는 장인들은 홀대를 하였다. 과학문명시대도 마찬가지다. 공부는 오직 편하게 살기 위한 수단이다.

 

배우면 영리해지고 못 배우면 바보가 되는 것이지 배우면 착해지고 못 배우면 악해지는 건 절대 아닌데도 말이다.

 

<중략>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배우면 강해져서 못 배운 사람을 등쳐먹는 것은 똑같지 않는가?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을 등쳐먹으니 못 배운 사람은 억울해서 빼앗기지 않으려고 따라서 배우려 애쓰고, 그러니 지식이란 살아가기 위한 무기일 수밖에 없다.

 

무지했던 사람들은 달나라엔 계수나무가 있고 옥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운 사람은 달나라엔 공기도 없고 물도 없는 벌거숭이 사막이라는 걸 밝혀내었다. 똑똑한 사람은 사물을 곧이곧대로 보고 있지만 마음은 얼마나 황폐한가. 달나라에 계수나무가 있고 옥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미개하고 어리석었지만 마음 속은 훨씬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진정 어리석은 쪽은 누구인가? 우리 어른들이 자식을 가르치는 목적이 남에게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서는 더욱 앞장서서 지배하라는 것일게다. 이렇게 말하면 공부라는 것이 온통 나쁜 것 뿐이라고 주장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꼭 그렇다는 것만은 아니다. 슬기를 넓히는 공부, 좀더 아름답게 생각을 키우는 공부, 다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공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부는 수학점수나 영어점수를 더 많이 따서 되는 공부가 아니다. 나는 그런 것을 구별 짓자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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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교회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교사"를 했었다. 그런 교회 선생을 주일학교 교사라고 한다.

 

주일학교도 학교인지라 시험을 본다. 그러나 교회에서 보는 시험이 얼마나 강제성이 있겠는가? 아이들은 시험날인 줄도 모르고 와서 그냥 설렁설렁 옆의 아이와 상의해 가며 답을 써 넣거나 아예 책을 펴 놓고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도 많았다.

 

시험 전에 한마디 했다. 컨닝해서 백점 받는 것 보다 아는 만큼 정직하게 써서 50점 받는게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고. 그냥 하는 말이었다. 교회에서 학교처럼 아이들이 컨닝한다고 시험지를 빼앗고 체벌을 주거나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영악한 아이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에헤이- 여보슈 선수끼리 왜 이래? 다 알면서.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 중에 몇몇 아이들은 진지하게 알아듣는 것 같았다.

 

결국 장로님 손주 뒤에 앉았던 아이는 장로님 손주와 함께 백점을 받았고 정직하게 시험을 치른 아이는 50점에도 훨 못미치는 처참한 점수를 받았다.

 

그런 시험도 좋은 점수를 받은 아이에게는 상을 준다.

 

백점 받은 아이는 목사님 앞에 나가서 평소 신앙심이 깊고 성실하여 모범이 되는 어쩌고 하는 낯간지러운 문구가 적힌 상장과 학용품 등속의 상품을 받았다.

 

성경구절을 남보다 많이 외운다고 더 신앙이 깊고 더 양심적이지는 않다.

 

성경에서 아이들과 같아지라 한 말은 이 아이들처럼 영악해지라는 뜻은 아니라 요령을 피우면 달콤한 열매를 가질 수 있는것을 알고도 정직하게 시험을 쳐서 망쳐버린 저 아이들의 순수한 심성과 같아지라는 소리일 것이다.

 

가장 낮고 더러운 곳으로 내려와 그들과 함께 슬픔과 고통을 견디다가 종국에는 혼자 모든 허물을 다 짊어지고 희생된 예수의 사랑은 어디로 가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남을 찍어 눌러야 달콤한 댓가를 독점할 수 있다고 학습된 이 아이들이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요즘 어느 개신교회의 지도자가 돈, 권력, 개인숭배, 심지어는 성추문에 오염되어 물의를 일으키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교회가 이런데 하물며 학교는 말해 무엇하랴.

 

피나는 노력을 하여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남들이 쉽게 도달할 수 없는 학위나 위치에 도달한 사람이나 많이 배운 요령으로 남들이 가지기 힘든 부를 가진 사람들, 이런 이들이 만약 불행하게도 선량한 마음이 없어 그 지식과 요령을 나쁘게 사용한다면, 못 배우고 비루한 이들이 못된 마음을 먹고 저지르는 악행에 비할 바 없이 사람과 사회와 국가에 크나큰 해악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니 권정생 선생이 배우면 영리해지고 못 배우면 바보가 되는 것이지 배우면 착해지고 못 배우면 악해지는 건 절대 아니라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에서 힘깨나 쓴다는 법조계 출신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술이 거나해져 어느정도 경계가 풀리자 그가 새끼 손가락을 펴 보이면서 말했다.

 

요즘 유부남이 이거 하나 없으면 바보라고. 당신은 없냐고.

 

내가 웃으면서 나는 그럴만한 위인도 못되거니와 후환이 두려워 그런 거 없다 했더니 의외로 자신은 당당하다고 했다.

 

와이프한테 해 달라는 거 다 해줘, 아이들 해 달라는 거 다 해줘, 어디 같이 놀러가자고 하면 다 같이 가 줘, 뭐 사달라면 다 사 줘, 그렇게 다 해주고 내가 애인 만난다는데 누가 뭐라 해? 난 떳떳해, 뭐라 할 놈 있으면 다 나와 봐!

 

이 분은 "신뢰"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 같았다. 허나 남들은 엄두도 못 낼 고통스러운 공부의 과정을 인내해 낸 그 분이 배움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 세간에 욕을 바가지로 먹는 분들이 과연 남들보다 배움이 부족해서 그럴까, 남들보다 가진것이 없어서 그럴까?

 

바보라는 낱말이 요즘 유독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만큼 똑똑하고 영악한 이에게 호되게 당한 사람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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