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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Appreciation

민아네 2013. 12. 10. 10:25

모든 일에는 고마운 마음이 필요하다.


에피소드 1)

 

작년이었던가? 한국에 있는 대학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동기가 맞지만, 학창시절에는 거의 말을 해 보지 않았던, 그냥 얼굴만 아는 그런 친구였다.그러니 졸업하고 나서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얼굴만 아는 사이다 보니 구태여 안부를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내 전화번호는 한다리 건너 아는 후배로 부터 얻었다 한다. 잘은 모르지만 그 친구는 집이 꽤 부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노는 물이 달랐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긴긴 세월이 지나도록 말 한번 안 섞었던 친구가 갑자기 한국에서 전화를 해서 이것 저것 물어본다.

 

내용인즉슨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해 왔는데 일이 재미도 없고 한국에서 일하다 보니 짜증나는 일도 많고, 그러니 외국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혹시 내 인맥을 통해 일자리가 있으면 하나 소개시켜 달라는 용건이었다.

 

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여기 경기가 너무 안좋아서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이 망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고 회사는 구조조정이니 뭐니(그것도 한국으로 치면 대기업 급의 큰 회사들) 해서 직원들이 대거 직장을 잃는 마당에 그럴듯한 자리 하나 없냐고 묻다니 마치 나무위에 올라 물고기를 내놓으라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 여기 경기가 너무 안좋아서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고, 또한 돈이 그리 많으면 한국에서 살면서 가끔씩 관광으로 오면 될 것 아니냐고 조언을 해 주었더니, 내 답변이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는지 영 탐탁치 않은 반응이다.

 

가만 생각을 해 보니 그가 원했던 답은 아마 이런것이었으리라.

 

"세계 굴지의 다국적 회사인 저희 회사가 캐나다에 사업을 확장하면서 마침 지사장 자리에 적임자가 없어 고심하던 차에 송구스럽게도 님께서 연락을 주시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대우는 원하시는 대로 다 해 드리겠사옵고 모든 절차는 여기서 다 준비하겠으니 부디 왕림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었으면 좋겠습니다. 별도의 요청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알려주시오면 즉시 처리하겠나이다."

 

 

 

<나는 상위 1%야. 스미더스, 개 풀어라.>

 

그런데 이런 대답이 아니고 김 팍 새게스리 뭐? 그냥 한국에서 이대로 눌러 살다가 가끔 캐나다에서는 개나 소나 다 친다는 골프나 치러 오라고? 여기 이민자들 이민 오면 처음에 다들 어렵고 힘들게 몸 쓰는 일부터 시작한다고? 캐나다가 뭐 그리 대단한 곳이라고.


그런데 내 말이 그 말이다. 캐나다는 그리 대단한 곳이 아니다. 그래서 여기 오는 이유가 폼나는 자리를 원해서라면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는 것이다.


여기 오는 한국사람들이 그 친구보다 멍청해서 처음에 지렁이 잡이, 공장 노동자, 야간 청소부부터 시작하는게 아니다. 이를테면 투자할 돈을 뭉텅이로 싸들고 오지 않는 한 한국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여기에서 폼나는 자리를 마련해 놓고 어서오시라고 하는 곳은 단언코 하나도 없다. 역지사지,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 대답이 시원찮으니 자존심에 살짝 금이 좀 갔나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본인이 한국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어필하는 수순으로 넘어간다.


내가 어디에 상가건물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뭐 돈도 별로 안돼는게 힘들어 죽겠어, 새끼들이 장사 안된다고 가게세를 안내, 완전 배째라야.


한참을 너스레를 떨더니 그렇게 한시간을 넘게 통화를 하고 끝끝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전화를 툭 끊는다. 허탈하다. 긴긴 세월동안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것도 친하지도 않은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서 대답을 해 주었건만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전화를 뚝 끊더니 지금껏 전화 한 통, 이메일 한 통 없다. 내 한시간. 내 아픈 목. 깨 버린 잠.


에피소드 2)


한국에서 이메일이 왔다. 캐나다에 프로젝트가 있는데, 인허가 관련해서 자꾸 캐나다 업체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같으니, 캐나다 알버타 주의 건설 인허가 절차를 알고 싶단다.

 

나는 온타리오에 살고있고 알버타는 여기에서 비행기로 다섯시간이나 가야하니 거의 다른나라 수준으로 멀다. 세제도 다르고 기후도 다르고(특히 동절기) 설계 코드도 다르다. 그러니 내가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는 정부 인허가 절차가 정부 홈페이지에 가 보면 정리가 잘 되어있다. 옛날 한국처럼 두루뭉수리한 표현이 없고 절차마다 딱딱 정의가 잘 되어있다. 한국도 요즘은 잘 되어 있을 것이다.

 

인허가 뿐만이 아니라 관공서 일, 예를 들면 작게는 운전면허, 의료보험카드, 더 나아가서 영주권, 여권, 시민권 신청절차 같은게 정부 홈페이지에 상세하게 나와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혼자 다 준비해서 영주권도 받고 시민권도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대행업체들도 있으니 귀찮거나 개인이 못 할 사정이 있는 사람은 돈을 주고 시키면 된다.

 

그래도 정부 인허가 절차가 나와있는 홈페이지 링크만 달랑 보내는것은 성의가 없을 것 같아서, 문서를 일부러 다운받아 첨부하고 간단한 설명을 붙여서 보냈다.


그랬더니 딱 연락두절이다. 이게 바로 먹튀렸다.

 

 

원하는것을 얻었으니 혹은 이사람에게는 원하는게 나오지 않으니 이제 연락 리스트에서 지워버려도 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참 괘씸하다.


내가 그걸 준비하느라고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깝다.
......................

 

 

 

 

회사 일을 하면서, 나는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니 나의 일은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이다. 맡겨진 일은 설령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업무를 완수했을 때, 그게 뭐 어때서, 당연히 해야 하는거 했구만. 이런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모든 일에는 감사가 필요한 것이다. 더우기 땡큐와 쏘리를 늘 입에 붙이고 사는 이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캐나다 업체 중에 제일 싸가지 없는 곳 중 하나가(라기 보다는 싸가지 없는 이들을 만날 확률이 큰 곳) 지하철, 버스 공사다.(TTC) 여기는 버스와 지하철을 관에서 운영한다. 한국의 지하철 공사 비슷하다.


여기 지하철 확장공사 프로젝트를 할 때, 사업주인 지하철 공사 사람들이 그토록 싸가지가 없었다. 물론 일을 하는 입장에서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는 그런 싸가지 없는 응대를 받을 이유는 없다.

 

이 친구들은 강성노조를 갖고있어서 평생 짤릴 위험이 없어 그런지 지하철 근무자나 버스 운전수나 아예 상전노릇을 한다. 언젠가는 매표소 직원이 손님 줄 서 있는데 대놓고 의자에 제끼고 앉아서 낮잠을 자다가, 열받은 승객이 사진을 찍어서 찌르는 바람에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한번이 아니라 심심하면 이런 일이 터진다.

 

여기 회사에서는 한국과 달리 직급의 위아래 의식이 거의 없다. 직책에 따른 업무 역할이 있을 뿐 내가 높고 너는 낮다 라는 인식이 희박하다. 따라서 일을 시킬 때나 완수했을 때에도 항상 이거 저거 해주겠니, 고맙다, 수고했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일을 할 때 당연히 월급받고 해야 할 일을 했으니 아무런 감사 없이 성과물만 챙긴다면 그런 곳에서는 일할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교회에서도 그랬다.

 

감사가 없는 교회는 신앙의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식사기도를 마친 후 식사가 형편없다고 혹평하는 것과 같다. 교회에서도 자원봉사자를 마치 종 부리듯 하는 덜 된 인간들도 있었다.

 

왜요? 본인 스스로 원해서 일 한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나오면 답이 없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바로 바닥에 팽개치고 나와버리고 싶다.

 

오디오와 비디오, 사진에 관심이 많아서, 십수년간 동문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사진을 찍거나 음악, 또 영상물 상영등의 봉사를 해 왔다.

 

행사 때 이런 저런 봉사를 하면 오히려 대 선배이신 아버지나 삼촌뻘의 노 선배님들이 내 손을 잡으면서 고맙다고 수고 많다고 격려와 칭찬을 해 준다. 감사가 있으면 일단 일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일이 부드럽게 흘러가니 행사가 재미있어진다. 사진도 잘 나온다. 감사란 인생살이의 윤활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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