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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토론토 지하철 풍경

민아네 2015. 11. 12. 10:21

캐나다에 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직장이 바뀌면서 지하철을 타고 다닌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한국은 지하철 티켓을 사면 들어갈 때 검표(체크)하고, 나올때 체크하고 이렇게 두 번 하는데, 여기는 일단 들어가면 끝이어서, 나올 때에는 검표없이 그냥 기계식 개찰구를 밀고 나오면 되는 방식이다. 아마도 한국은 구간에 따라 요금이 다른데, 여기는 그냥 고정요금이라 그럴 것이다. 요금은 한국돈으로 약 2500원 정도 될 것이다.

 

표는 정기권 카드로(마그네틱 카드) 일정기간 이용하거나 그때 그때 지불하고 타는 방법이 있는데, 이 경우를 위하여 개찰구 옆에 매표소가 있다. 여기에서 토큰을 구입하여 매표소 옆의 토큰 통에 넣고 들어가면 된다.

 

토큰이 있는 경우에는 매표소에 갈 필요없이 개찰구에 토큰을 넣고 들어가면 된다. (토론토에 살면서 여태껏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 경우는 매표소에 직원카드를 보여주고 그냥 들어간다.

 

토큰을 저금통에 넣듯이 집어넣거나 마그네틱 카드를 긋고 들어가는 이런 방식은 한국에서는 벌써 옛날에 사라진 구닥다리일 것이다. 지난 봄에 한국에 갔을 때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지하철을 포함한 여러가지 결재를 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핸드폰 케이스에 교통카드를 끼워 사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핸드폰 자체에 그런 기능이 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독일은(프랑크푸르트, 뮌헨, 칼스루헤) 아예 검표 시스템이 없다. 그냥 표를 사고 지하철을 타면 된다. 양심에 맡기는 셈인데, 간혹 가다가 역무원이 불시에 티켓 검사를 한다고 한다. 여기에 적발되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들었다.

검표기계 자체가 없으니 구식이라 해야 할 지, 인간의 양심에 맡기는 방식이니 최신식이라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일본은(오사카) 한국과 같이 들어가고 나올 때 모두 검표시스템이 되어 있는것으로 기억한다.

 

토론토 지하철은 서울에 비하면 대단히 짧고 간단해서, 굳이 비교를 한다면 규모면에서 아마도 대구 지하절 노선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최신형 설비가 갖추어진 한국의 지하철 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토론토 지하철 노선도>

 

지하철 역사도 매우 작고 간단해서, 내가 내리는 듀퐁 Dupont 역은 출구가 두개뿐이고 매점(가게) 하나에 매표소 하나가 있을 뿐이다. 회사에서 지하철 역 도면을 찾아보니 1976 년에 디자인 되었다. 매우 오래되고 낡았지만 관리와 에스컬레이터 시설같은 업그레이드는 그럭저럭 잘 되어있어서 크게 불편하거나 지저분하지는 않다.

 

또한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많겠지만 한국에서처럼 터져나갈듯한 만원 지하철은 없다. 그저 사람이 좀 많은데 그렇다고 서로 닿을 정도는 아닌, 그런 정도가 여기의 만원 지하철이다.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하여 일찍 퇴근하므로 거의 대부분 한산하다.

 

1. 거지

 

한국에서도 통근할 때 주요 교통수단은 지하철이었다.

 

한국 지하철도 마찬가지겠지만 여기 지하철도 구걸은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거지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도데체 없을 수가 없다.

 

한국의 지하철 거지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

 

가장 끔찍한 경우는 하체를 못 쓰는지, 다리를 검은 고무로 칭칭 동여 감싸고 바퀴달린 깔판을 배에 대고 바닥을 기어가며 구걸을 하는 걸인이었다.

 

그에 못지않은 경우는 아직 어리광이나 부릴 법한 어린 아이들이, 돈이 필요하다는 애절한 사연이 적힌 꼬질꼬질한 메모장을 다짜고짜 사람들의 무릎에 차례로 얹어놓고 구걸을 하는 경우였다. 저 애들이 모아간 돈은 도데체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일까. 착취당하고 있는게 아닐까. 애들이 거리를 헤메고 있는데 국가는 도데체 무얼하고 있는가?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스친다.


청각장애인이 사연적인 팻말을 목에 걸고 수화를 하며 모금함을 들이대는 경우도 있었고, 목에 건 녹음기로 찬송가를 틀어놓고 천천히 지나가며 구걸하는 맹인도 흔했다. 요즘은 녹음기가 아니라 아이팟으로 하려나?

 

사람이 밀물처럼 몰리는 지하철 계단 구석에서 하루종일 껌을 파는 할머니도 있었고 - 아침에 보았던 할머니가 저녁무렵 집에 갈 때 아침에 그 자세 그대로 껌을 팔고 있었다. -  앞에 프라스틱 그릇을 하나 놓고 엎드린 자세로 하루종일 꼼짝않고 있는 걸인도 있었다.

 

걸인이 득실거린다고는 못하겠지만 적은 것도 아니어서 지하철 한 칸에서 걸인들끼리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암묵적인 규칙인지 모르겠지만 점잖게 서로 모른척 회피해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며칠전 퇴근길에 느긋하게 차창을 뒤로하고 앉아 늦가을 오후의 햇살을 즐기며 가고 있는데 드디어 거지가 나타났다. 토론토 지하철 열차내에서 처음 목격하는 거지였다.

 

약간 피둥피둥한 백인이었는데 진짜 꾀죄죄하고 다 늘어난 츄리닝을 입고 종이컵을 들고서는 "잔돈 있으면 주세요" change, change please, 하면서 휙 지나갔다.

 

집에 와서 민아엄마에게 얘기하니 지하철을 그렇게 많이 타 보았는데 본인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한다.

 

역시 퇴근길 다운스뷰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는데 통로에 흑인 할배거지가 앉아서 잔돈주세요 하고 앉아있었다. 마침 그 날 왠지 기분이 내켜 5불짜리 하나를 꺼내 주었더니 환한 얼굴로 갓 블레스 유! 한다.

 

지하철 거지는 아니지만 차가 많이 몰려서 신호대기하고 있는 사거리에는 어김없이 거지가 박스를 찢어 팻말을 만들어 들고 자동차 사이를 돌며 구걸을 한다. 박스에는 배고파요, 집이 없어요, 일거리가 없어요, 등등 간단하고도 불쌍한 사연이 적혀있다.

 

그런 거지는 예외없이 다들 노인도 아닌 청장년의 사지 멀쩡한 백인 남녀들이라, 속으로 야 이 시키들아, 희멀끔 하게 생겨서 나보다 영어도 훨씬 잘하는 것들이 일을 해서 벌어 먹어라!는 생각이 든다.

 

2.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

 

오래 전 한국에 갔을 때 지하철을 탔는데 모처럼 자리가 나서 앉았다.

 

잠시후 내 앞에는 젊은 남녀가 섰는데 서로 존댓말을 하며 가벼운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것으로 보아 사귀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남자는 과일(포도)로 보이는 상자를 들고 있었고 그 상자는 여자의 것으로 보였다. 둘은 예의바르게 대화했고 잠시후 여자는 상자를 받아들고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한 후 열차에서 내렸다.

 

그 직후에 내 옆에 자리가 비어서 남자가 앉았다.

 

열차는 출발했고 그 여자가 차창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직후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온갖 저질 육두문자가 섞인 그런 욕설이었다.

 

욕을 하는 대상에는 방금 내린 여자도 있었고, 내가 모를 어떤 대상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나를 포함하여 주변에 있던 사람을 향한게 아니라는 것 만은 분명하였다.

 

그저 허공에 있는 가상의 무엇인가에다 대고 욕설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다 쳐다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남자는 한동안 스스로 흥분하여 계속 욕설을 하다가 내렸다.

 

저렇게 여자 앞에서 멀쩡하게 친절하고 부드러웠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는데 놀랐고 더욱 우려되었던 것은, 먼저 내린 여자와 지인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 여자는 남자의 이런 모습을 까맣게 모를 것이라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나 원 참, 몇 년만에 한국에 와서, 어쩌다 한 번 지하철을 탔는데, 멀리도 아니고 바로 내 옆에 저런 정신이상자가 앉아서 고함치며 욕을 해대는 그런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니면 저런 일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데 단지 나에게도 일어난 것인가?

 

다시 토론토.

 

며칠전에 이른 새벽 출근길 지하철을 탔는데 다운스뷰 역을 출발하자 마자 저쪽 멀리서 마구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여기 지하철 열차는 차량 사이 연결통로에 문이 없이 첫 칸에서 끝 칸까지 완전히 터져있다. 그래서 멀리서 소란을 피우는 소리도 여기까지 들리는 것이다.

 

<지하철 내부, 열차 연결부분의 출입문이 없고 오픈되어 있다.
다운타운 구 노선열차는 칸이 구분되어있다.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

 

그러더니 그 고함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은근히 불안해졌는데 드디어 시야에 나타난 소란의 주인공은 옛날 영화 "백투더 퓨쳐"Back to the future 에 나오는 박사같이 생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네였다.

 

이 노인네가 하필이면 내 바로 앞에 멈추더니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가며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 "샤인" Shine 의 주인공처럼.

 

그 돈은 니 주머니가 아니라 내 주머니에 들어가야지. 불만있어? 그러면 미국 대통령한데 따져, 뭐 이런 내용이었다. 뭐야 이 노인네 왕년에 조폭이었나?

 

피해버릴까? 내가 일어서서 다른 칸으로 가면 쫒아오면서 시비를 걸면 어쩌나 온갖 생각이 들면서 불편하고 불안했는데 다행히 그 노인네는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조금 멈칫거리더니 문이 닫히려고 하는 순간 후다닥 내려버렸다.

 

어제는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더니 갑자기 중국음식 냄새가 확 풍기는 것이었다. 한국의 중국집 냄새가 아닌 중국 본토음식은 경우에 따라 좀 역하기도 하다. 특히 중국간장 냄새는 좀 그런데 그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가 탄 열차 출입구 바로 옆 좌석에서 어떤 젊은 중국놈이 스티로폼 도시락에 담긴 중국음식을 얼굴을 쳐박고 젓가락으로 주둥이에 마구 쓸어담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진한 음식냄새에 후루룩 첩첩 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참 고약했다.

 

사람들이 다들 찡그리면서 힐긋거리는데도 전혀 동요없이 쳐먹고 있었다. 아주 꿋꿋한 의지의 진상이었다.

 

중국사람이 대개 공공질서가 없고 무례하다고 하지만 내가 목격한 경우는 커피숍이나 식당같은 곳에서 옆사람 눈치 안보고 큰 소리로 마구 떠들거나 남겨진 음식과 휴지를 어지르고 가는 정도였지 저런 막장은 또 처음 보았다.

 

혹시나 친구들하고 같이 있어서 객기를 부리는것인가 싶었는데 옆 사람들은 다 내리고 혼자 남아있는것을 보니 혼자서 저런 진상을 부렸던 것이었다. 행색도 멀끔하게 차려입은 녀석이 "수치"라는 것은 아예 모르는 것 같았다.

 

지하철을 나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많이 타 본 주변 사람들은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을 벌써 몇 번 씩이나 경험했다.

 

나에게는 지하철에 어떤 운이 작용하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 파는 복권을 한 번 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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