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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한국회사, 캐나다 회사

민아네 2014. 10. 15. 09:23

<토론토의 SNC-Lavalin 오피스 건물. 한 동 전체와 나머지 두동의 일부를 사용한다. 본사는 몬트리올에 있다.>

<상일동의 삼성 엔지니어링 건물. 2008년 방문했을 때 그 호화로움에 놀랐다.>

 

내가 일하는 캐나다 회사 SNC와 나의 전 직장이었던 삼성엔지니어링에서 같이 했던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삼성엔지니어링 직원 몇이 여기로 출장을 다녀갔다.

 

출장을 온 사람들은 거의 다 내가 아는 옛 동료들이었고, 오랜만에 만나니 여간 반갑지가  않아서 차편이나 식사가 불편한 그들을 위해 나름 성심껏 편의를 제공하고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프로젝트 담당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제 한국을 떠나온 지 오래된 터라, 내가 캐나다에서 나름 안정된 직장에 만족하며 고만고만하게 지내는 동안 그들은 치열한 과정을 거쳐 이미 중견의 위치에 올라있었고 그에 걸맞는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업무를 하는 실력도 있거니와 그 저돌적인 추진력,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내가 곧 회사" 라는 무한한 책임감과 직관이라 불리우는 "눈치"는 나에게 신선한 환기가 되었다. 물론 한국 최고의 대기업 간부답게 영어도 참 잘했다.

 

좋은 일로 출장 온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온 것이기 때문에 출장 온 사람들은 보름동안 밤낮으로 고생을 하다가 돌아갔다. 낮에는 캐나다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회의하고 밤에는 호텔로 돌아가 한국과 통화하며 업무보고를 하고 협조하는 무척 피곤한 나날을 보냈다.

 

역시 한국사람들은 "치열하게" 일을 해서, 마치 전투를 하는 것 같다. 전투가 편한 시간에만 일어나는게 아니듯 일을 위해서라면 밤낮이 없다.

 

그러나 문제해결에 대한 의견이 달라서 나의 이곳 동료들과 한국의 옛 동료들은 서로가 불편해 보였다.

 

삼성사람들은 "약간의 편법"을 적용하면 모두가 윈-윈, 캐나다 업체는 원래 매뉴얼에 나와있는 대로. 서로의 주장이 평행을 달린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현실을 무시할 수도, 원칙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이곳의 동료들이 한국의 동료들보다 같이 지낸 시간이 훨씬 길다. 그러니 옛 동료가 나와 한국말로 대화하며 은근히 나의 이곳 동료들을 "까는" 발언을 할 때면 나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그동안 여기 살면서 각종 뉴스를 통해 한국 업체들이 최근에 어려워지긴 했어도 긴 시간동안 승승장구, 엄청난 양적 팽창을 해 온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다. 북미의 업체들은 한국업체의 그 치열함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그게 회사 오너에게는 분명히 좋겠지만 과연 고용인에게도 좋을지는 의문이다.

 

이번에 한국 사람과 캐나다 사람의 한가지 극명한 사례를 보았다.

 

이번 문제때문에 삼성에서는 비상이 걸려서, 전 부서원이 7시에 출근하여 저녁 8시가 넘어야 퇴근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막내부터 퇴근 시작, 팀장은 최소 9시까지 대기) 사무실 분위기가 이러하니 휴가는 언감생심, 아무도 휴가를 못 갔다고 한다.

 

그런데 캐나다 회사의 담당자는 그 와중에 휴가를 내고 캐리비안 해변에서 놀다가 일주일만에 보기좋게 그을린 얼굴로 회의실에 나타나니 삼성 직원들이 어이가 없는가 보다.

 

나도 여기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니 여기 스타일에 젖어서 그런가,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사실 여기 회사라고 아무때나 막 본인이 원하는 때에 휴가를 가는 것은 아니다. 대타도 없는데 프로젝트 한참 바쁠 때 갑자기 휴가를 내고 노는 사람은 없다. 여기는 대개 휴가 계획을 몇 달 전부터 세우고 예약을 다 해 놓는다.

 

만약 휴가를 계획할 때에는 안 바쁠 줄 알았는데 막상 그때 가 보니 엄청 바쁘더라, 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그냥 휴가를 갈 수 밖에. 그 비싼 비행기 표값, 호텔 예약을 며칠 일 때문에 싹 날려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휴가계획을 세울 때에는 다 업무 협조를 해서 승인을 받기 때문에 본인의 책임도 아니다.

 

나의 경우 8월 중에 이태리 여행을 가려고 했으나 프로젝트가 바쁠것으로 예상되어 9월 첫 주로 옮겨 잡았다. 물론 프로젝트 팀원, 팀장과 다 협의를 하였다. 그때가 5월 말이었다.

 

그런데 9월 첫 주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일이 바쁜 것이었다. 그래도 예약이 다 되어있으니 어쩔 수 없다. 휴가를 가는 수 밖에.

 

정 급한 일이 있으면 이메일을 하라 하니 단호하게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말고 다녀오라고 한다. 사실 나 하나 때문에 꼭 진행되어야만 하는 일이 연기 될 일도 없고 설사 한 일주일 연기된다 쳐도 프로젝트에 치명타가 되는 일은 없다.

 

회사 오너 입장에서야 물론 삼성 스타일이 좋을 것이다. 사람들이 야근수당도 받지 않고 알아서 하루 열서너시간씩 일하니 얼마나 좋겠나. 여기는 법적으로 하루 12시간 이상의 근무는 불법이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젠가 나도 무척 바쁜 일이 몰려서 12시간을 넘긴 일이 있다. 팀장이 곤란해 했다. 내가 과로해서 건강이라도 해칠까봐 그러는게 아니다. 규칙을 어기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지니 하는 소리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반대로 "눈치껏" 늦게까지 남아야지, 이거 열두시간 넘기면 불법이라며 그냥 퇴근했다가는 곤란해질 것이다.

 

만약 한국의 회사에서 여기 회사에서처럼 행동했다가는 정리해고 영순위에 오를 것이다.

 

어쨌든 한국의 옛 동료들은 보름동안 밤낮없이 일하며 (낮에는 캐나다 회사에서 밤에는 호텔에서 한국 본사와) 고생하다가 별 성과없이 돌아갔다. 그럴 바에야 여기까지 온 김에 경치 좋은 곳 구경이나 하다 갈 것이지.

 

옛 동료로부터 들은 삼성의 직원대우는 참 좋았다. 애들 대학 학비까지 대 준다니 말이다. 등록금 천만원 시대니 뭐니 해서 학부모들 등골이 휜다 하는데 삼성엔지니어링 직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급여도 만만치 않아서 북미의 잘나가는 기업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니 대기업이 잘되면 중소기업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낙수효과"는 적어도 삼성 임직원에게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삼성의 협력업체들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삼성 뿐 아니라 한국업체의 절대 강점인 "저렴한 가격" "짧은 공사기간" 뒤에는 협력업체의 고혈이 스며있다.

 

삼성같은 대기업의 울타리 안에만 머무를 수 있다면 일단은 안심인 것이다. 그 안에서 고생을 하든 어떻든간에 일단 그 일원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면 다른 이들에 비해 절대적인 비교 우위에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젊은 애들이 대기업에 입사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 까닭이 여기 있다 할 것이다.

 

어쩌다 협력업체 직원과 회식을 하게 되면 아랫사람들에게 급여관련한 언급은 절대 함구하도록 미리 주의를 준다고 한다. 너무나 그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간 옛 동료로부터 출장 때 이것 저것 편의를 보아주어서 고맙다는 이메일이 왔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마무리 지으러 또 오게 될 지도 모르겠다 했다. 물론 그들이 또 오면 나는 반갑다.

 

하지만 여기의 내 동료들은 별로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해결책을 제시해야지 자기네 주장만 우기며 말싸움 하다 갈거면 뭐하러 또 오느냐 한다.

 

나도 그들이 그냥 한가하게 놀러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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