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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체크 본문
벌써 그게 작년 이맘때가 되었다. 세월 참 빠르다. 해고통보 전화를 받은 일 말이다.
사실 북미에서 직장을 옮겨다니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만, 나에게는이직이란게 영 낯선 일이었다.
이민을 와서 한 직장에서 8년 넘게 있다가, 현재의 회사로 옮기긴 했지만 옛날 팀원들이 고스란히 옮겨와 또 같이 한 팀이 된지라, 이직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이전 회사에서 만나 이 회사로 같이 옮겨서 계속 일해온 동료들, 고정 멤버가 되어 그동안 같이 일해 온 역사가 오래라, 그 중 둘은 벌써 은퇴를 했지만 다른 회사로 떠난 사람은 한명도 없다. 대신 새로운 멤버들이 몇몇 들어왔다 떠나갈 뿐이라 우리 고정멤버들을 어쩌면 시샘을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런 상태에서 해고통지를 받았으니 솔직히 말해 충격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이전 회사에서 잘 있는 사람을 스카웃까지 해 오더니 필요없어지니까 내치는구나, 오래 같이 일해온 역사도 다 필요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고통지가 착오로 인한 해프닝으로 밝혀지기까지의 그 며칠동안 섭섭함을 지나쳐 원망으로까지 갈 지경었다.
북미에서 직장을 옮기거나 잃는 일은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라 쳐도 막상 당하는 본인은 그 심리적인 여파가 만만치 않은 것을 실감했다.
이후 팀장을 비롯한 두명은 은퇴를 하였고 프로젝트가 바빠짐에 따라 팀원이 많이 늘었다. 아직은 불안한 상태지만 작년 이맘때에 비하면 일단 위기는 탈출한 듯 싶다.
이전 회사에서 같이 일하다가 이쪽으로 같이 온 사람 하나는 재작년에 환갑의 나이에 작고하였다. 지난 회사에서 나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양반이라 부고를 들었을 때 무척 놀랐었다.
파견근무 와중에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본사로 돌아 온 지 일년도 안되어 같은 사무실의 두명이 한두달 사이에 갑자기 세상을 하직하였다. 두 사람 다 환갑을 갓 넘어선 나이에 변을 당했다.
친하지는 않았어도 아침에 커피받으러 가면 늘 마주치던 사람이 세상을 떴다니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그의 책상 명패는 이후에도 한참을 달려있었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 올라온 소식은, 서른 갓 넘은 젊은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평소에 정기적으로 오지 않고 "꼭 아플때"만 보러 온다고 주치의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다. 그 "꼭 아플때"란 것도, 평소에 하루저녁만 푹 자고 일어나면 거뜬해질 정도, 딱 그정도라 더더우기 주치의를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원칙상으로는 환자가 가정의에게 예약 신청을 해서 부지런히 찾아가야 한다. 이곳의 의료는 무상으로 제공되지만, 가만히 앉아있는데 의사가 오라고 하지는 않는다. 치료도 본인이 원해야 해 주지, 억지로 해 주지는 않는다. 당연한 소리인가?
그런데 나는 의사가 전화를 해서 오라고 했다. 오죽 복장이 터졌으면 그랬을까.
수년전 신장기증을 한 사람이 왜 이렇게 의사를 보러 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막말로 이렇게 무신경하게 있다가 만에 하나라도 큰일 치루고 싶냐는 협박도 곁들인다.
물론 그동안 전혀 안 찾아간 것은 아니라, 의사양반 소견대로 혈압약을 먹고 있기는 하다. 문제는 내 혈압이란게 정상치에서 벗어날듯 말듯 깔짝거리는 수준이라, 약을 안먹자니 그렇고, 또 먹자니 너무 혈압이 떨어지는 그런 난점이 있다. 요즘은 약도 먹고 운동도 하고 다이어트도 잘 하고있다.
사실 의사양반은 민아엄마가 일하는 변호사 사무실, 변호사 아줌마의 바깥양반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의사를 보러 가는게 별로 내키지 않는다. 의사를 보러가려면 귀찮기도 하거니와 여간 시간이 깨지는게 아니다. 게다가 이 의사양반은 환자의 혈압이 조금 높게 나와도 펄쩍 뛰는 스타일이라 보러갈 때 마다 조마조마한게 시험을 보러가는 기분이다.
여튼 의사양반이 엄중하게 나무란 것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착실히 의사가 시키는대로 한번 해 보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약도 바꿔보고, 피검사 하라는대로 다 하고 요즘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달 새 피검사를 세번이나 했다. 한 번 하고, 약먹은 후 열흘후에 한번 하고, 또 무슨 신장관련 데이타가 필요하다 해서 또 하고. 의사양반이 아주 마음을 먹었다.
피검사는 집 근처에 의료 검사하는 곳이 있는데, 영업시간내에 가서 줄서서 등록하고 피 뽑고 오면 된다. 물론 공짜지만 예약 없이 가서 줄서는 시스템이라, 여간 일찍 가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문 열기 30분전에 가서 줄을 서는데, 그러면 한 열명 이내에 순위에 들 수 있다.
창구에 등록하고 이중 삼중 본인 확인을 하고 (피가 바뀌면 안돼니까 - 피 뽑기 직전에 또 확인한다.) 앉아서 기다리면 이름을 부른다.
사실 이 곳은 좀 작고 우중충한 곳인데 꼭 시골 읍내 보건소정도의 초라한 규모이고 대기실에는 접수창구를 한켠에 두고 조그만 의자가 열댓개 정도 벽에 죽 둘러서 놓여있는 그런 구조다.
때문에 사람들이 자리가 없으면 서있기도 뭐해서 그냥 나가서 자기 이름을 놓칠새라 귀를 쫑긋 세우고 문 밖에서 기다린다.
보통은 자기 앞 사람 두어명을 기억해 놓았다가 바깥 멀찌감치서 그 사람이 들어가는지를 보고 자기 차례를 짐작한다.
한번은 일찍 가서 번호표 5번을 받고 기다리고 앉아있는데 9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그런대로 정정해 보였는데 할머니가 보행기를 밀면서 부들부들 떨며 거동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 옆은 할아버지가 조심조심 부축을 하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할매 할배는 좀 늦게 온 지라 접수 후 의자에 앉는 모습을 슬쩍 보니 번호가 십몇번대였던 것 같다. (번호딱지가 손바닥 반 만한 크기에 번호도 대문짝만하게 새겨져있다.)
그런데 내 옆에 4번 번호표를 받은 아줌마가 슬그머니 할배에게 가더니 뭐라고 소근소근 말하고는 번호표를 샥 바꿔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아주 조용한 가운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만보니 노약자가 오면 너도나도 자리를 양보하는지라, 그것도 아주 조용하게, 때로는 눈짓으로 때로는 손짓으로 여기 앉으라 하고 자신은 일어서 비켜주는데, 이 양반들 보소, 얼굴 표정은 웃음기 하나 없이 무뚝뚝한 표정 일색이라, 마치 한국의 어디 경상도 시골사람들 같은 투박한 푸근함이 풍기는 것이었다.
두번째 갔을 때에는 어떤 늙수그레한 엄마와 아들이 왔는데 아들이 정신지체가 있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난폭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옆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그런 상태였다.
일단 아들을 앉히고 엄마가 등록을 하고 나니 역시 아들 옆에 앉았던 할매 하나가 손짓으로 아줌마를 끌어다 여기 아들 옆에 앉으라 하고 자신은 일어난다. 그래서 나도 말없이 일어나서 그 할매 어깨를 감싸 내 자리로 끌고와 앉혔다. 나도 캐나다에 산 지 십오년이니 무뚝뚝한 표정이며 행동이 아마 좀 비슷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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