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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가장의 무게

민아네 2024. 2. 19. 17:58

인터넷을 보다가 소동파의 시를 만났다.

 

송나라때 시인 소동파는 사십 중반의 나이에 잘나가던 관직에서 떨려나 황주라는 곳의 말단 공무원으로 쫒겨났다. 그는 장강(長江)을 바라보며 허탈한 심경을 읊는다.

 

自笑平生爲口忙 자소평생위구망
老來事業轉荒唐 노래사업전황당

 

평생을 먹고살기위해 바쁘게 뛰었던게 웃음만 나오는구나
이제 늙으니 내 하는 일이란게 황당하기만 하다

- 소식(소동파)

 

내가 왕년에 누군데, 송나라 최고의 시인이자 학자, 화가로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중요한 자리에 여기저기 불려다니던 귀하신 몸이 아니었던가? 

 

줄 한번 잘못 섰다가(구양수와 개혁 신법의 이견으로 밀려남) 이런 시골바닥으로 쫒겨나, 있는지도 모를 말단 관직에서 안해도 그만인 일이나 하고 있으니, 참 황당하도다!

 

그는 유배지에서 술 만드는 양조장에서 술 지게미에서 술을 짜내는 일을 했다. 그나마 왕년에 날리던 몸이라 동네 유지들의 잔치에 초대되긴 했으나, 고정석도 아닌 장외에 따로 마련된 자리에 앉는 신세가 되었다.

 

소동파가 개발했다고 알려진 요리 '동파육'.

 

다시 천년 세월을 스르륵 흘려 현재로 와 본다.

 

내가 왕년에 누군가. 회사에서 부장, 임원으로 회의다 계약이다 접대다 골프다 하루에도 몇탕씩 뛰던 그 잘나가던 몸 아닌가.

 

회사에서 아래로 치이고 위로 눈치보던 사오정, 결국 명퇴로 떨려나 집에는 출근한다고 양복차림으로 나서 한강 둔치에 멍하니 강을 바라보고 앉아있자니 기가 막히는구나.

 

눈 가늘게 뜨고 담뱃재 길게 달린 담배를 초조하게 빨아들이는 초로의 사내, 그의 실루엣 뒤로 한강의 석양이 붉게 물든다.

 

가장의 무게란 천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이토록 뻐근한 것인가?

한강변의 소주병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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