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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Jet Lag

민아네 2024. 2. 19. 18:49

꿈을 꾸었나?
한달여의 한국 방문이 마치 꿈만같아서, 다시 돌아온 지금도 새벽에 문득 선잠을 깬 것 처럼 구름을 걷는 것 같다.

 

한국의 모든것은 대단히 강렬했다.

 

쉴새없이 증기를 뿜어내는 찜통같은 듯한 그 무더위와 습기, 거리의 소음, 냄새, 지하철, 쉴새없이 흐르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물결, 더욱 높아지고 화려해진 건물, 도무지 없는게 없는 상점들.

 

과거 한국에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마치 이방인이 된 듯한 낯설음에 두리번거리며 무엇이든 자꾸만 묻고 확인해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차라리 완전한 이방인이었다면 새로운 모든 것을 즐기기나 했을 것을, 과거의 기억과 맞물려 돌아가는 지금의 현실은, 이젠 더이상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힘겹게 삐걱이듯 어색한 긴장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 걸핏하면 탈이 나는 위장으로 고생하는 어머니, 그리고 딸아이는 9년만에 만난, 폭삭 늙어버린 외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왕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야 말았다.

 

그렇게 핏줄의 정은 한국의 그 어느것 보다 훨씬 강렬했다.

 

아련한 기억속의 가족사를 더듬다가, 이것을 모두 정리하여 기록하기로 했다.

 

모든 앨범속의 사진을 뜯어내고, 스캔하고, 연도별로 정리하여 설명을 달고, 다시 제자리에 붙여넣는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2012년 방문한 전쟁기념관.

 

1000여장의 사진.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전쟁 기념비를 찾아 두번의 기념공원 답사, 또 두번의 용산 전쟁기념관 답사.

 

스캔을 뜬 사진은 연도별로 정리하여 컴퓨터를 큰 TV에 연결하여 영상을 띄운후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보며 설명을 적어넣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나의 부모님의 살아온 여정을, 단지 나의 기억이 닿는 부분부터 어렴풋이 더듬어 알고있을 뿐이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몰랐던 부모님의 인생을 알게 되어 기뻤다.

 

50년대 말 아버지 어머니의 흑백 약혼사진에는 젊은 미남과 그토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모하던 여인의 친한 친구였다 한다. 아버지는, 두 여인이 다 나와있는 결혼식 사진속에서 하필 어머니를 지목하여 소개를 부탁하였을까? 어머니의 친구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어머니의 친구는 그 후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

 

먼 훗날 어머니는 남대문 시장에 갔다가 그 친구를 영화처럼 우연히 딱 마주치고는 둘이 서로 부여잡고 바로 그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어머니 아버지는 나의 바람막이, 든든한 후원자였기에 어머니 아버지의 로맨스 스토리는 매우 애틋하게 다가온다.

 

입대 바로 전날 찍었다는 사진속의 아버지는 어찌 그리 앳된지, 그런 어린애들이 전쟁터에 나가 총을 들고 싸웠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월남전, 맹호 혜산진 부대, 퀴논, 꾸멍시장, 나환자촌, 싸이공에서의 사진들, 그리고 두번의 전쟁을 거쳐 우리 삼남매를 키워낸 여정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제 그 사진속의 청춘은 고즈녁한 황혼을 드리우고 있다. 슬그머니 목이 메어왔다.

 

시원한 공원을 산책한다. 한바탕 꿈을 꾼 것 같다. 한국에 갔다 온 것이 꿈만같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내가 꿈속에 있는가? 호접지몽이 따로 없다. 

 

이름하여 Jet Lag 증상이다.

 

 

주) Jet lag : 시차로 인한 피로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