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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그 남자들의 황금기 본문

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바람, 그 남자들의 황금기

민아네 2024. 2. 19. 19:46

2014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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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야한 얘기로 풀어보겠습니다.

일찌기 추사는 "일독이호색삼음주"(一讀二好色三飮酒)라, 제 일의 즐거움은 책읽기요 두번째는 여자, 세번재는 술마시기라 했으니, 학자로서 프로페셔널한 탐구를 제 일로 친 것 까지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바로 다음에 여자 밝히기를 꼽은 것은 세간에 알려진 추사의 고고한 이미지에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추사는 첫번째 부인인 한산 이씨와 사별 후 3년간 독신으로 지내다가 23살때 예안 이씨와 재혼했다. 추사는 두번째 부인과도 후사가 없자 첩을 들여 '상우'라는 자식을 보았는데,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둘째 아내가 있었음에도 본부인과의 애정은 각별했던 모양으로, 전해지는 추사와 부인이 주고 받은 서신의 내용은 그토록 애틋할 수가 없다.

 

훗날 추사의 부친은 평안감사로 부임을 했는데, 마침 관직에서 물러나 있던 추사는 부친도 뵙고 평양의 여러 학자들과 교류도 하고 연구도 할 겸 평양으로 장기 외유를 하게 되었으니 이 때 그의 나이 불혹이었다.

 

전화나 인터넷이 발달하여 마음만 먹으면 지구상 어디서나 얼굴을 보면서까지 이야기 할 수 있는 요즘도 남편이 어디 먼 지방이나 해외로 장기출장을 떠난다면 보내는 아내의 마음이 여러가지 이유로 편할 리 없으련만, 인편에 서찰하나 보내놓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그 시절임에야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설상가상이라 했으니, 평양 하면 특산물처럼 따라다니는 명칭이 바로 평양기생이다. 야들야들한 기생들이 우굴거리는 평양으로 장기외유를 떠나는 남자의 마음이야 설레였겠지만, 그런 곳에 남편을 보내는 아내의 마음은 그 반대였을 것이다. 게다가 남편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기인이 아닌가. 

 

보통 여자가 나이들어 완숙의 경지를 알면 색에 눈을 뜬다 했지만 그것은 남자도 마찬가지다. 온종일 직장에서 치이고 집에 오면 아이들은 커서 아빠하고는 얘기도 잘 안하고 연속극 속의 잘생기고 자상한 훈남에 익숙해진 아내는 머리 희끗하고 똥배 나온, 게다가 까탈스럽게 매사에 잔소리나 해 대는 남편은 눈에 찰 리가 없을 터이니, 남자의 헛헛한 마음은 가을볏짚단처럼 더욱 메말라가기 마련이다.

 

여기에 불여시같은 쭉쭉빵빵한 기생年들이 접근하여 살살 불이라도 싸지르면 걷잡을 수 없이 화르륵 타오를게 아닌가.

 

아내의 불안한 촉은 대개 적중하게 마련이다. 결국 추사는 죽향이라는 평양기생과 스캔들을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프랑스 영화에서처럼 예술과 불륜은 아마 궁합이 잘 맞는가보다. 이 추사의 아름다운 시는 이렇게 스캔들의 와중에 쓰여졌다. 

 

착수성춘죽일지(着手成春竹一枝) 
사성시의효정사(寫成詩意효情絲) 
입정홀작소상색(入庭忽作瀟湘色) 
분외여청오몽시(分外餘淸午夢時) 

 

손 닿으니 봄 되었네 대나무 한 가지 
시의 뜻을 베껴쓰니 마음의 실오라기가 흩날리네 
뜨락에 내려서니 소상강의 물빛이 홀연히 일어나네 
분수에 넘는 한가한 맑음이 대낮에 꿈을 꾸게 하네 
(출처: '추사에 미치다', 이상국 저)

 

죽향이라는 기생에 내 손길이 닿으니 봄이 되었구나!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헌정한다면 어느 여자인들 넘어가지 않으리, 더우기 상대는 예쁘기도 하거니와 풍류가 업인 기생임에 두 말 할 것도 없겠다.

 

인기인의 스캔들이니 그 연기가 퍼지지 않을 리가 없다.

 

추사에게는 여자 형제가 여럿 있었는데, 이씨 문중으로 출가한, 추사의 이실李室 이라는 (아마 이씨문중 사람이라는 뜻에서 이실이라 불렀을 듯 하다) 여동생이 이 스캔들의 결정적인 단서, 즉 추사와 죽향이 주고 받은 연애편지를 입수, 바로 올케에게 신고해 버리고 만다. 요즘말로 아주 딱 걸린 것이다.

 

시에서 대나무에 손을 댔다는 구절로 보아 설마 추사께서 그녀와 아름다운 연애시만 주고 받으셨을까, 게다가 봄이라는 말은 색과 일맥상통하는 단어가 아니던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높은 선비를 흠모하는 마음에서 더 이상의 
상상은 고이 접어두기로 한다.

 

그러나 그 시대에 사대부집 남자가 기생하고 연애편지 좀 교환했다고 무슨 큰 사단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은 남자들의 한 때 바람기가 큰 허물이 되지 않던 시대, 더우기 추사같은 분이 불장난 한 번 했다 해서 부인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닐것이다.

 

추사는 부인에게 편지를 써서 "이실이가 그대에게 꼰지른 것은 다 헛소문이니 걱정마오.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한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연애질을 하겠소?" 라고 부인을 안심시키지만 왠지 좀 당황해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미인곡으로 유명한 선조때 선비 송강 정철로 넘어가자.

 

이 몸 생겨날 때 임을 따라 생겼으니 
한 삶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던가 
나 하나 젊어있고 임 하나 날 사랑하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가 전혀 없다
평생에 원하는바 함께 있자 하였더니
늙은 뒤 무슨 일로 외로이 두고 그리워하는가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이 사미인곡은, 여기서 나오는 '임' 이란 임금을 뜻하는 것이며 충절을 표현한 시라고 빨갛게 똥글뱅이를 쳐가며 외웠던 기억이 난다. 사족이지만 교과서에 긋는 원형의 마크는 언제나 '동그라미'가 아닌 '똥글뱅이'였다. (경상도 사투리로 '똥글배이')

 

하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건 여인에 대한 절절한 연모의 마음을 담은 연애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시의 저자 송강 정철은 당쟁에 휘말려 강계지방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강계는 지금의 평안북도에 속해있는데 그 당시에는 필시 깡촌중의 깡촌, 오지중의 오지였을 것이다.

 

이런 깡촌에 유배된 신세라도 능력남은 사고를 치려면 충분히 치고도 남는다.

 

이 분이 그곳에서 진옥이라는 기생과 주고 받은 시는 오늘날 야설(야한 소설) 문학의 원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찐- 하다.

 

옥(玉) 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 으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 일시 분명하다
내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진옥이라는 기생이 와서 수작을 붙이는데 이게 짝퉁 옥이겠거니 했더니

지금 보니 진퉁 진옥이가 분명하구나,
내 살로 된 송곳 있으니 확 뚫어볼까 하노라. 
(무엇으로 무엇을 뚫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진옥이라는 기생은 답시에서 한 술 더 뜬다.

 

철(鐵) 이 철이라커늘 석철(錫鐵) 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 일시 분명하다
내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정철이라는 분이 왔다하기에 짝퉁 정철인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진짜 정철이 분명하구나,
내 마침 골풀무가 있으니 이걸로 녹작지근 녹여버릴까 하노라. 
(풀무가 뭔가? 두 다리를 벌렸다 오무렸다 하면서 바람을 내는 기구가 아닌가?)

 

이런 육담을 주고 받으며 귀양살이인지 신선놀음인지 모르게 지냈는데 아뿔사 이게 아내 안씨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또 시절이 시절인지라 아내는 서신에다 오히려 힘든 귀양살이에 남편을 보살펴주니 진옥에게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썼으니, 가히 남편들의 유토피아라 할 만 한 시절이었다.

 

일제강점기 평양기생학교의 춤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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