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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참전용사 본문

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월남전 참전용사

민아네 2024. 2. 19. 18:09

단편적인 군사학적 흥미로 월남전에 관한 자료를 접하였다가 우연히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현장 체험담을 읽게되어 하나 하나 탐독하다보니 그만 몇 주가 훌쩍 지나버리고 말았다.

 

나의 아버지 역시 월남전에 맹호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한 월남전 참전용사인 연고로, 어릴적 흑백사진이 빼곡한 앨범에 이국적인 월남을 배경으로 찍은 아버지의 사진을 노상 보아왔던 터라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월남전에서 맹호부대 병사들.

 

그 어릴적 보아왔던 사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빛바랜 흑백사진과 함께 생생한 체험담을 접하니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의 눈물과 희생에 새삼 가슴이 뜨거워지며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불과 십수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그 시절, 규정과 법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만의 고지식한 삶으로는 생존이 어려웠던,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쉼없이 방법을 찾고 또 찾아 머리를 써 한톨의 쌀이라도 더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때 그 시절이었다.

 

고달팠던 시대을 살아왔던 삶의 관성으로 현 세대의 눈에 비추어진 노인이 된 그 시대 사람들의 그럴수 밖에 없었던 악착같은 각박함과 조급한 생활, 그리고 타협을 모르는 한방향의 태도는 종종 젊은 세대들의 조롱과 무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젊은세대가 어찌 알 수 있으랴,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 시대를.

 

전장에서 흘렸던 피의 열매로 나라가 눈부신 성장을 하는 동안, 포연과 오물이 뒹구는 맨땅에서 발전의 거름이 된 세대는 그 속도의 중압에 눌려 점점 잊혀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군대시절 훈련을 뛰며 육중한 중화기는 물론 개인화기조차 다룰때면 그 위압감이 대단했는데 하물며 이런 물건이 실제 인명을 해치는 전투현장에서의 비참함과 공포는 감히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목숨을 걸고 월남에 갔던 용사들.

 

요령이 좋아야 그나마 생존할 수 있었던 그 시대에 군대라고 달랐을까. 규정과 법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했지만 요는 그것을 그 '모든 사람'들이 존중하고 따르느냐 아니냐의 문제였을 것이다.

 

병장 봉급중 40불은 강제 송금하여 지정된 적금을 해야했고 나머지 돈은 군표로 지급받지만 그러나 말단 소총부대로 간 사람들은 민간인 한 번 못보고 귀국박스도 제대로 못 채워 따불백 하나 달랑 매고 살아돌아간다는 사실하나로 위안을 삼고 귀국한 사람도 많았다 한다.

귀국박스. 귀국때 지참물은 이 박스에 채워가는 물건으로 한정된다.

 

어리버리한 신병도 적의 총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두어달만 지나면 눈빛이 반들반들해지고 살기가 돌았다 했다. 살인적인 더위에 작전을 나가면 수통의 물은 금방 떨어지고 죽을것 같은 기갈에 자신의 오줌마저도 마셔가며 작전을 했던 용사들.

 

어린시절 신문 방송에서는 힘찬 행진곡과 함께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승전보만이 연일 넘쳐흘렀으니 이것도 일종의 프로파간다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것은 늘 잘 먹혀들어갔던 것 같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 이면의 끔찍한 고통은 생각하려 하지 않았고 월남에 갔다가 죽을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제대병사에게 돈 많이 벌어왔냐고 물었다가 주먹다짐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한다.

 

그 자신이 월남전에 참전하였고 "무기의 그늘"이라는 월남전 소설을 쓰기도 했던 작가 황석영씨는 십년전 유명한 월남의 소설가를 만났다.

 

'바오닌'이라는 이 작가는 "전쟁의 눈물" 이라는 소설로 월남 최고문인상을 수상하였고 영국 인디펜던트지 최고의 외국소설상을 받기도 하였다.

 

바오닌은 십대 소년시절 월맹의 제 27 소년여단에 입대하여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전투를 했던 말하자면 황석영씨의 적이었던 셈이다.

 

황석영씨는 두번의 신체검사 거부 후 최후통첩을 받고서야 징집에 응했는데 괘씸죄였는지 군기가 센 해병대에 보내져 월남 파병후 최전방 소총수를 하다가 연줄이 닿아 월남 다낭의 청룡여단 범죄수사대에 배치되어 복무하였다.

 

이 두 작가가 만난 자리에서 황석영씨는 자신의 월남파견에 대해 바오닌 작가에게 사과의 표시를 하였다.

 

월남에 대한 사과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월남을 방문하여 사과를 한 바 있고 2004년에 노무현대통령이 월남을 방문하여 호찌민 묘소에 헌화를 하고 참배하였다. 당시 피흘리며 싸운 적의 수장에게 우리 국민의 대표가 참배한 격이었다.

 

이를 두고 참전 전우회에서 거센 반발을 하였고 일각에서는 이를두고 수구니 뭐니 하며 조롱을 하였지만 이는 참전용사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월남전의 정당성에 대한 비난과 책임은 파병을 결정한 사람들의 몫이며, 참전용사들은 국가의 부름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섰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 셈이다.

 

개인의 생각으로는 월남에 대한 사과를 반대하지 않지만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참전용사들을 폄하고 조롱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그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로 나갔던 군인이다. 군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투철한 애국심, 국가관, 다 중요하겠지만 정작 적을 눈앞에 두고 총을 겨눈 병사에게 필요한 것은 증오심이다.

 

증오심이 없다면 순간 주저할 수 밖에 없고 찰라에 적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것은 필연이다. 이런 상황을 겪은 그들에게 파병에 대한 사죄가 과연 쉬운 일이겠는가?

 

65세 이상 참전용사 월 8만원.
인터넷에서 찾아 본 이들에 대한 보상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금전적 보상보다 더욱 절실한 것은 명예가 아닐까. 여러번의 군사정권을 거치며 부풀어 오른 군 출신 정치인에 대한 혐오가 아무 죄 없는 일반 군인들에게까지 오염되었는지는 몰라도 한국만큼 군인에 대한 예우가 형편없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설사 아무리 월남 파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들 참전한 이들까지 매도할 수는 없다. 게다가 월남 파병은 한국 경제발전의 큰 힘이 되지 않았는가?

 

그 댓가로 달콤한 경제성장의 혜택을 보고있으면서 과거 피의 희생을 폄하는 일은 실로 염치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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