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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

민아네 2024. 2. 12. 18:26

20091019
2009년 10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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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말하라면 나는 토요일 아침이라 하겠다.

어둠이 걷히고 희뿌옇게 새벽이 오면서 창너머로 새소리가 조근거리듯 들려오기 시작하면 가끔 동네를 지나가는 부릉거리는 자동차소리, 우리집 뒤의 공원에 아이들 소리, 개짖는 소리로 아침이 분주해진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 후 느릿느릿 침대에서 나와 커피를 끓인다.

파자마 차림으로 커피포트를 든 채 부엌창을 보면 가끔 집 옆 담너머 교회에서 장례식, 결혼식 그리고 세례식등등을 준비하는 광경을 본다.

아침부터 롤스로이스, 리무진같은 멋진 자동차와 버스, 간혹 촌스럽게 장식한 하얀색 말과 마차가 대기해 있는 날은 결혼식, 아기를 안은 부부와 화사한 옷차림의 하객들은 세례식, 그리고 검은색 캐딜락 장의차와 어두운 정장의 사람들이 줄지어 운전해 들어오는 날은 장례식이 있는 날이다.

성당 옆집에 사는 덕택에 창문 밖으로 꽉 막힌 옆집 담벼락 대신 툭 터진 공간을 보는 것 외에, 덤으로 이렇게 사람의 일생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임에 틀림없다.

 

집 뒷마당의 플럼나무와 배나무. 우리는 이 집에서 20년을 살았다. 민아가 초등학교때 이사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해서 뉴욕으로 떠난뒤에도 한참을.

 

활짝 핀 배꽃.

 

매년 찾아오는 토끼.


커피잔을 들고 내 방으로 내려와 이메일을 체크하고 이것 저것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주말 아침을 즐긴다.

그때 즈음 민아엄마가 내려오고 아침준비를 하는지 도마소리, 접시 부딪치는 소리, 프라이팬의 치이익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도 부엌으로 슬슬 다시 올라가 옆에서 빵을 썬다든지 냉장고에서 버터나 야채 등등을 꺼내준다든지 하면서 이것저것 참견을 한다.

얼추 간단한 아침준비가 끝나면 이제 민아를 침대에서 끄집어 내야 한다.

평일에는 9시 이후에는 인터넷 금지지만 주말 밤에는 인터넷을 무제한 허용해 주는고로 틀림없이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들었을 터라, 한두번 불러보지만 낑낑대기만 할 뿐 금방 내려오지 않는다.

잠시후 마지막 경고를 보내면 그제서야 후다닥 일어나 궁시렁거리면서 내려와 식탁에 앉는다.

그렇게 같이 앉으면 굉장히 천천히,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다 한다.

모임이나 날씨, 쇼핑얘기, 회사얘기, 학교, 친구들, 주말 약속등등.. 각자 일터에서 학교에서 있었던 별 중요하지도 않은 시시한 일상들을 주절주절 얘기하며 간간히 웃기도 해가며 한가한 주말의 아침을 즐긴다.

내가 일주일 중 가장 좋아하는 토요일 아침의 풍경이다.

오늘은 금요일 오후, 다소 느긋한 오후를 정리하고 퇴근하면 나의 행복한 주말이 있다. 그리고 편안한 휴식과 행복한 토요일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행복한 순간들은 영원히 나와 머무르지는 않지만, 그 아쉬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은 또 다른 미래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들, 나는 긴 세월이 지난 후 틀림없이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때에는, 지금은 아직 알지 못하는, 그러나 내가 눈물겹게 사랑하는 또 다른 따뜻한 생명들이 나의 주말식탁에 같이 동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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