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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서다 본문
20090121
2009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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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년전에 끊은 교통티켓 때문에 난생처음 법정에 서게 되었다. 죄명은 자동차 오너쉽(자동차 소유 증명서), 보험증 미지참, 자동차세 납부 증명 미지참 정도가 되겠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민아엄마가 운전이 겁이나서 너무 천천히 운전을 한 것이 탈이었나보다. 마침 브레이크 등 하나가 나갔던 것을 빌미로 경찰이 불러세웠다.
통상적으로 교통위반을 하면, 경찰이 꼬투리를 잡은 사항이 낚시줄이 되어, 면허증, 오너쉽, 보험증서 등등이 줄줄이 고구마줄기처럼 끌려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전면허증은 잘 갖고 다니지만 그 외에 그런 종이서류들은 집에다 두고 다니기 십상이며, 또한 그런 서류들이 자동차 안에 있다손 치더라도 몇년이 가도록 한번 꺼내지 않는 서류를, 게다가 경찰이 옆에 버티고 서 있는 상황에서 당황이 되어 금방 찾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여러번 딱지를 떼어 그런 상황에 노련한(?) 사람이면 모르겠으나, 민아엄마는 그런 상황이 난생처음이었던 것이다.
그 벌금이 가볍게 내고나서 툭툭 털고 잊어버릴 수준이 아니었다. 세가지 합쳐서 355불. 지금 한국돈으로는 거의 40만원 정도 되는 돈이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세가지.
- 벌금을 내고 잊어버리기.
- 유죄는 인정하지만 법정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벌금을 경감받기.
- 무죄를 주장하고 원고(경찰)와 법정투쟁하기.
나는 두번째를 선택했고, 공판날짜(?)를 받은것이 딱지를 뗀 날로부터 꽉 채운 일년이 지난 어제였다. (1월 12일, 딱지 뗀 날짜는 작년 2월 초) 이미 경험이 있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요령을 다 전수 받았건만 아무래도 법원출입은 결코 즐거운 일이 될 수가 없다.
일단 검사(prosecuter)에게 뭔가 설명을 하려면 자료가 있어야겠기에 보험증 오너쉽 등등 서류를 챙기고 자동차세 납부증명을 위한 번호판 사진까지 찍어 프린트를 해서 항목별로 정리했다. 즉 그 당시 딱지를 떼었던 사항은 이렇게 깨끗이 다 수정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하루 휴가를 내고 민아엄마와 같이 법원으로 갔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한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는데, 역시 법원답게 법정 출입전에 권총을 찬 경찰들이 공항에서 하는 검색, 즉 소지품 다 꺼내놓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는 절차가 있어 살짝 긴장이 되었다.
양쪽으로 열리게 되어있는 법정 문은 세로로 길고 좁은 유리창이 하나씩 붙어있어 대기하는 의자가 있는 복도에서 안쪽이 들여다 보였다.
법정은 작은 교회같은 분위기였고 의자 또한 교회에서 익히 보던 긴 벤치형식 나무의자였다. 좌석 열은 한 5-6열 정도로 약 50명-60명 정도면 꽉 찰 것 같았다.
법정 문 오른쪽 옆에 게시판이 있고 그날 판결을 받을 사람의 명단과 케이스 넘버가 프린트되어 있는데 물론 민아엄마의 이름도 그 안에 있었다. 명단은 엄청 길어서 약 200건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사람이 여러 케이스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실제 인원은 훨씬 적을 것이다. (민아엄마는 3 케이스)
시간이 가까워지자 그날 판결을 받을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 통역사라는 할아버지가 나타난 것이었다.
재판에는 통역을 신청할 수 있는데, 만약 통역이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법정에 출두하지 못한 경우에는 무조건 그 케이스는 피고가 이긴다. 물론 교통딱지에 한해서겠지만 말이다. 중대한 범죄에 대한 판결을 통역이 없다고 해서 무죄를 때릴리는 없기 때문이다. 딱지를 발부한 경찰 역시 출두하게 되어있는데 경찰이 출두 안 한 경우에도 피고가 무조건 이기게 되어있다.
2.
그러나 이 날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경찰과 통역 모두가 출두했다.
우리 경우에는 통역을 신청하지 않았는데, 다른 한국사람들이 여럿 신청을 한 모양이었다. 꼭 영어가 안되서라기 보다는 위에 설명한 통역사 불참으로 인한 "무죄"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자는 의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법정영어는 생소해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통역 할아버지가 갑자기 민아엄마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더니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은 통역을 해 주겠다고 자신의 수첩에 이름을 적어넣는 것이었다.
"원래는 미리 신청해야 되는데, 내가 해 주지 뭐. 까짓것."
그렇다고 손사래를 치며 저는 통역 필요없는데요 할 수도 없고, 어차피 법정은 처음이니 이 할아버지에게 도움받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가만히 있었다.
통역하는 할아버지는 왠일인지 매우 기분이 들뜨고 흥분하신 것 같았고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경력을 복도에서 한국말로 큰소리로 몇번이고 반복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말이야, 카나다 법무부에서 돈이 나오는 사람이야, 28년째인데 어제도 장거리 운전해서 법정에 갔다왔어, 내가 말이야, 아직도 카나다 법무부에서 돈이 나오는 사람이야, (특이 이 부분을 수십번 반복함) 내가 말이야, 은퇴한지 오래 되었는데도 당췌 법무부에서 놔주질 않아서 아직 하고 있어. 허허허..."
3.
시간이 되어 법정안에 들어가니 아줌마 검사가 피고들을 한줄로 쭉 세운다음 차례로 변명을 들어준다. 우리가 첫번째였는데 역시나 이 할아버지가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통역을 잘못하는 바람에 벌금을 받을 뻔 한것을 민아엄마가 끼어들어 다시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여 355불의 벌금을 "제로" 로 만들 수 있었다. 티켓 자체가 없던 일로 된 것은 물론이다.
통역할아버지가 또 법정에서 동포 피고인(?)들에게 자신의 경력을 떠들다가 검사에게 좀 조용히하라고 제지를 당하는 웃기는 광경도 연출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법정에 처음 나온 동포들은 이 할아버지 덕에 최소한 심리적 위안 정도는 얻을 수 있었으리라.
케이스 숫자에 비해 사람이 적었는데 그것은 법정대리인으로 나온 에이전트들이 여러사람의 케이스를 한꺼번에 들고 오기 때문이다.
즉 신문같은데 보면 "자동차 티켓 처리해드립니다. 판결에 지면 요금 안받음" 이런 선전이 있는데, 딱지를 뗀 사람이 이 사람에게 벌금 통지서와 돈을 주면 이사람이 대리로 법정에 나와 해결해 주는 것이다. 물론 합법적이다.
이 사람들은 교통범칙금 판결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기 때문에 교묘하게 합법적으로 티켓을 처리해준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개중에는 질이 안좋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잠시 후 역시 아줌마 판사가 들어오고 케이스별로 판결이 시작되었는데 거의 검사와 다 합의가 된 사항이므로 한 케이스당 10초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간혹 출두한 경찰이 검사의 처리에 불만이 있는경우 어필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민아엄마의 차례가 되어 판사앞에 섰는데 역시 이 할아버지의 오버액션 탓에 판사 검사 모두 웃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즉, 판사가 "교통법 몇조 몇항에 의거 지적사항이 모두 수정되었으므로 모든 벌금을 취소합니다" 라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할아버지가 민아엄마에게 한국말로 "빨리 고맙다고 하세요! 빨리, 어서, 빨리 빨리!" 하며 마구 손짓을 하며 다그치는 바람에 판사, 서기, 검사, 피고인(민아엄마) 모두가 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잠시후 땡큐를 했고 가벼운 마음으로 서류를 챙겨 법정을 나왔다. 법정 현관에서 다시 만난 그 통역할아버지에게 우리 둘 다 구십도 인사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음은 물론이다.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법정에 서 본 소감은, 판사나 검사도 매일같이 안좋은 일로 불려온 사람들과 대면해야 하니 결코 즐거운 직업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금은 각종 자동차 관련 서류들은 비닐 슬립에 단단히 싸서 자동차에 완벽하게 갖추어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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