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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10년, 이민자로 산다는 것. 본문

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이민 10년, 이민자로 산다는 것.

민아네 2024. 2. 12. 22:09

20090706

2009년 7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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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10년 1. 이민자에게 톨러런스란 없다.


노 톨러런스(No tolerance), 토론토의 하이웨이중에 폭이 좁고 곡선이 많은 하이웨이 404에는 이런 간판이 있다.
최고속도 90. 제로 톨러런스. 경찰 순찰지역.

옛날 우리동네 근처 하이웨이 404에 있는 표지판.


제한속도 90키로에서 단 1키로만 넘어서도 가차없이 단속을 하겠으니 이 도로에서만큼은 제한속도를 칼같이 지키라는 표지다.

지난 주말 친한 지인들과 모임을 가졌다. 즐거운 얘기 도중에 이민자의 입장에서 피해를 본 사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가 나왔다.

한 사람이 인종차별이라 일컫는 일을 당해본 사례를 예로 들면서, 이곳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싸워야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 사실 인종차별이라기는 뭣하지만, 이민자 특히 아시아사람 같은 유색인종에게는 톨러런스의 폭이 좁은것은 사실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차별을 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어찌 실수가 없을 수 있는가? 그러나 문제는 똑 같은 잘못을 해도, 영어가 모국어인 백인은 1점 감점이고, 영어에 액센트가 있는, 심지어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아시안은 10점 감점이라는 소리다.

실수에 대해 미리 정해져 있는 규정을 적용하는것은 공정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실수를 하면 용납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상황이 있게 마련인데, 유독 유색인종이 실수를 하면 규정대로, 그것도 제일 무거운 규정이 적용되고, 백인이 실수를 하면 가볍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6-7년전, 이곳의 유명 체인 슈퍼마켓인 로블로에서, 이민온 지 얼마되지 않는 젊은 한국 엄마가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는 와중에 쇼핑카트 밑에 있던 5불짜리 냉동닭을 모르고 계산하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이 아줌마를 슈퍼마켓 경비가 붙잡아 절도죄로 고발을 해 버렸다. (물론 다른 물건은 다 지불했고 단지 5불짜리 냉동닭, 그것도 아이 옷에 가려서 못 보았을 뿐인것을)

이 사건으로 한국 커뮤니티가 변호사를 선임한다 어쩐다 하며 한동안 들썩했는데, 피해자 아줌마가 캐나다에는 하루도 있기 싫다며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버리는 바람에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아마 그 아줌마는 지금도 캐나다라면 치가 떨릴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미국에서 채취면허없이 전복을 다량으로 캔 한국사람이 억대의 벌금을 맞은 사건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벌금 액수는 대개 400-500불이라 한다.

 

 

이민 10년 2. 통찰과 겸손

한국적 가치는 통찰과 겸손이다.

한국사람은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겸손을 미덕으로 안다. 그러나 백인들은 공정함을 미덕으로 안다.

한국사람이 자신을 낮추어 겸손해하면 백인은 정말 저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해 버린다. 오래 사귀어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지하철에 앉아있다가도 노인이 오면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리양보를 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아무 말없이 끌어당겨 무릎에 놓는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이런 가방을 말없이 무릎에 받아주었다.


나무 그늘을 독차지하고 앉아있다가 누군가 옆에 오면, 구태여 말을 안해도 알아서 옆으로 비켜 같이 그늘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 준다. 자리가 좁아 양보하기가 싫으면 눈치를 주지 직접 말로서 이쪽으로 오지말라고 하지 못한다. 소극적인 항의다.

그러나 캐나다사람들은 대중교통에서 아무리 노인에게라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양보를 하더라도 "여기 앉고 싶으세요?"고 확인한 다음에 그렇다고하면 양보를 한다.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싸가지가 없다. 게다가 자리양보는 매우 드물다.

한국 노인은 민망해서라도 못 앉을 것이다. 만약 한국노인이 체면때문에 나는 괜찮소 라고 하면 상대는 오케이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앉아있을 것이다.

만약 한국사람이 여기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노인을 보고 아무말 없이 스스로 일어나 양보를 했다면, 자리를 양보받은 노인으로부터는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를 위한 양보가 아니라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서 일어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가방을 든 사람의 가방을 받아주려고 말없이 끌어당겼다가는 도둑 취급을 받을 것이다.

과거의 에피소드를 하나 밝히자면, 고등학교 시절 버스에서 앉아가다가, 노인이 오기에 극구 사양을 함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양보를 하고 났더니 내 뒤의 좌석에 빈자리가 많아 뻘쭘하게 빈자리로 가서 앉았던 경험이 있다. 통찰은 때로 이런 에러를 일으키지만 나는 그게 좋은것을 보면 나는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이민 10년 3. 투쟁방법의 차이

나의 영역을 침범당해도 한국사람은 소극적인 항의를 한다. 

즉 말없이 눈치만 준다. 평화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랜시간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불시에 핵폭탄급 위력을 발휘한다. 그것을 알기에 한국사람은 누군가가 눈치를 주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잘못을 시정한다.

그러나 캐나다 사람은 이해관계가 상충되지 않을 때는 온화한 표정과 태도를 보이다가도 일단 자신의 영역에 누군가 들어오면 즉시 대단히 잔인하게 변한다. 상대가 누구건 상관없이 일단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상대에게는 정말 냉혹하고 무자비하다.

간혹 이런 캐나다사람들의 영역을 실수로 침범했다가 잔혹한 댓가를 치르고 캐나다사람을 혐오하게 되는 한국인도 있다.

세탁소를 하는 한국사람이 같은동네에 사는 오랜 단골 백인 노인으로부터 아끼는 옷을 망쳤다고 소송을 당했다. 평소에 매우 친근하게 대하던 사람들이어서 세탁소 주인이 겪은 마음의 고통은 엄청났다. 소송끝에 보상을 받아낸 그 노인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세탁소를 출입한다. 한국인 세탁소 주인은 그게 더 괴롭다.

이와는 반대로 해피앤딩의 경우도 있다.

얼마전에 토론토에서 좀 떨어지 곳에 사는 한국아이가, 급우중에 백인 양아치가 시비를 거는 것을 참고 참다가 한대 쥐어패서 코뼈를 부러뜨려버린 사건이 있었다.

한국애가 태권도 유단자라 나름대로 정신수양이 되어있었던지, 그 와중에도 전력을 다해 반격하면 상대가 큰 부상을 입을 것 같아, 단지 왼손으로만 가격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는 백인아이에게는 책임을 묻지않고 이 한국아이를 경찰에 고발했고, 퇴학의 위기까지 갔는데, 이 한국아이의 학교 학생들과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시위를 해서 경찰과 학교의 결정을 번복시켜 버렸다.

아마 시비를 건 양아치 놈이 학교와 동네에서도 평소에 평판이 아주 안좋았던것 같고, 백인의 정서에 정당방위라는 개념에 딱 들어맞은데다가, 적을 배려해서 왼손으로만 가격했다는 사실이 감동의 결정타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정말 드문 케이스이고, 참고 참았다 한방에 터져버리는 한국식 대응을 했던 아이들은 억울하게도 일방적인 처벌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정서였으면 어땠을까? 골칫거리 양아치들은 반 죽도록 패버리는 것이 속이 다 시원했을 것 같은데...


이민 10년 4. 나는 어느나라 사람인가?

누군가의 글에서 읽은 것인데, 월남에 단체관광을 갔던 미국인 틈에 끼어있던 월남인 2세들은 본인을 "월남인"이라고 지칭하는데 반해, 성인이 되어 이민을 간 1세대 월남 이민자는 구태여 자신을 "월남계 미국인"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시민권 아니라 시민권 할애비를 가지고 있어도 한국인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속인주의를 따른다는 한국법 이전에, 법이란 상식을 명문화 한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것은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정서다.

내 부모 형제 조상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온 모국이 단지 한 두 세대가 다른 나라에서 살았다 해서 바꾸어 진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한국말을 못해도, 한국에 대해 몰라도 한국인은 한국인이다.

한국사람이 같은 한국사람에게 다른 외국인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 본능이요 인지상정이다. 한국인 뿐 아니라 중국인은 중국인끼리, 유태인은 유태인끼리, 독일인은 독일인끼리 그렇게 친근감을 느낀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요 순리다.

간혹 한국인임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한국인을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사람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그들이 이 사회에서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이 사회에서 그들을 보는 시각은 여전히 한국인일 수 밖에 없다. 한국계 캐나다인? 한국계 미국인? 아니다. 그냥 한국인이 맞다.

캐나다 사람들도 자신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가 살았던 조국을 휴가때 찾아간다. 과거 캐나다 사람하고 이야기 중에 뿌리에 관한 말이 나왔다. 그는 부모, 조부모가 하도 유럽 여러 나라 출신이라 자신의 뿌리를 모르겠고 단지 캐네디언일 뿐이라고 해서 모두 즐겁게 웃었지만, 꼭 찝어서 나의 조국은 한국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것은 어쩐지 하나의 큰 혜택이라는 느낌도 든다.


이민 10년 4. 왜 이민을 왔는가?

그러나 이민자 그것도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백인들이 주류인 이 사회에서 음으로 양으로 불이익을 받는것이 사실이다. 노골적으로 차별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며, 이런 일을 당했을 때의 트라우마는 상당히 강하게 남으며, 경우에 따라 이것이 외국인, 특히 백인 혐오증 내지는 피해의식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불리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왜 이민을 왔는가? 온갖 미사여구로 이민의 동기를 설명을 해도 결론은 간단하다. 한국에서보다 더 나은것을 추구하려고 온 것이다. 

그것이 애들 교육이든, 정신적인 만족이든, 물질적인 풍요든간에 말이다. 간혹 한국에서 사기를 치고 도망나온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기대하고 온 것이 여기와서 충족이 안될 때 갈등이 생긴다. 애들 교육때문에 다 포기하고 이민을 왔는데 애들이 공부도 못하고 빗나간다든지, 직장 스트레스때문에 이민을 왔는데 여기에서는 직장 자체를 못잡아 몇배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든지, 돈을 많이 벌려고 사업을 했더니 경기침체로 매달 적자만 난다든지 하는 경우다.

불운의 삼박자가 다 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좋은 직장을 때려치고 이민을 왔는데, 직장을 못잡아 갖고 온 돈을 까먹으며 매일같이 부부싸움을 하며 스트레스 속에 산다.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 취직을 포기하고 가게를 하려고 하니 토론토 시내에서는 권리금이 비싸 시골 가게로 눈을 돌린다. 마침 한국사람이 하던 시골 가게가 매물로 나온게 있어 남은 돈 톡톡 털어서 가게를 인수한다.

시골은 고정고객들이 있으니 먹고사는 것은 해결되었는데, 한국사람을 눈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으니 외로움이 덮쳐온다. 애들은 애들대로 한국애들이 없으니 금새 한국말을 잊어버리고 전형적인 캐나다 시골애들이 되어간다.

동네에 한국말로 떠들 수 있는 사람은 부부 둘만이다. 영어는 생각보다 늘지않고 거의 전부가 백인인 동네에서 정서를 교감하며 맘껏 떠들 상대를 찾는것은 불가능하다. 시골 사람들은 대개 친절하지만 한국에도 있는 시골만의 텃세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게다가 일년 365일 가게에 묶여 일을 하는데 크리스마스 하루만 쉰다.

여름철이면 그나마 낫지만 겨울이면 눈이와서 교통두절이 될 때를 대비해 일주일치 식량은 재 놓고 살아야 한다. 학교는 눈만 왔다하면 휴교라, 눈오면 신경써서 라디오 공지를 들어야 한다.

남자는 그래도 참고 견디는데 드디어 와이프가 외로움을 못 견뎌 우울증이 왔다. 더 있다가는 와이프가 극단적인 일을 저지를것 같아 다 포기하고 한국사람 많은 도시로 나가기로 결정한다. 가게를 내놓았으나 워낙 시골이라 가게를 보러오는 사람도 없다. 1,2년을 그런 상태로 버티다가 어느날 술 한병 입에 털어넣고 가게문에 못질 하고 짐을 싼다.

스트레스, 애들교육, 재산 삼박자를 다 놓친 경우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다.


이민 10년 5. 이민자의 사는 방법 (1)

한국 이민자의 이민살이의 가치관은 다 다르다.

과거 초기 이민자들은, 대개 캐나다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어 살아가는 것을 최선의 가치로 삼았다.

부모세대는 언어와 관습차이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다 해도, 아이들은 완벽한 영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심지어 집에서도 영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정착할 동네를 선정할 때에도 한국사람 없는곳, 이민자 없이 백인들만 사는곳을 어렵사리 수소문해 찾아간다. 아이 학교도 백인아이들만 다니는 곳을 선호한다.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캐나다 사회에 들어가 정착을 하지만, 애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혹은 장성한 뒤에도 언어와 문화차이로 마치 캐나다 사람을 대하는 것 같다. 부모 자식간의 대화가 단절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게다가 부모가 한국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피해다녔으니 아이들도 한국사람과 구태여 친하게 지낼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어쩌다 한국인을 만나도 캐나다 사람이 동양사람 외국인 보듯 한다. 한국이 조국이란 생각을 갖는 것은 
무리다.

개인적으로 최악의 경우라 생각하지만, 한국이 고달팠던 시절 이민을 온 세대에게는 별다른 선택이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두번째는 캐나다에서 살되 캐나다 사회에 뛰어들어 소수인종으로서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며 사는 경우다. 대개 한국사람으로서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끝까지 싸워 권리를 쟁취하는 스타일이다.

캐나다 사회에 파고드는데는 제일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싸우는 것 자체가 이기고 지는것을 떠나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피곤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또한 조금더 과하게 나간다면 캐나다사람 혐오증에 걸려 과민반응으로 역차별을 하기도 한다.

총알이 장전된 총처럼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있어서 주변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쉽지않고 간혹 오해로 인해 오발사고가 나기도 한다.

만약 한국에서 한국사람에게 기분나쁜 대우를 받았다면 단순히 손털고 회피해버렸을 일도, 백인에게 똑같은 일을 당했을 경우에는 기분이 몇배로 더러워져 끝까지 싸워 사과를 받아내고야 만다. 때때로 간단한 일을 일부러 키워서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게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쩐지 좀 과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당당한것은 물론 좋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포비아(혐오증)나 피해의식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가끔은 나도 이런 방식을 따를까 망설일 때도 있다.


이민 10년 5. 이민자의 사는 방법 (2)

세번째는 캐나다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스타일도 있다. 먼저가서 인사하고(대체로 백인에게 더욱 친절하다. 같은 한국인에게는 절대 먼저 아는척 안함),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친절을 베푼다. 

호의를 베푼다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누구 말마따나 호의는 상호주의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는데 저쪽에서 본체만체 한다거나, 딴에는 친밀감을 보인다고 어깨를 툭 쳤는데 벌레 닿은듯이 화들짝 피하거나 한다면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몰라도 옆에서 보는 내가 오히려 민망해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도 있다.

캐나다에 사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백인중에도 한심한 사람은 얼마든지 널렸다. 모든 이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거니와 특히 피부색이 희다는 이유로 무조건 호의를 베푸는 것은 때로는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대개 초기 이민자들이 캐나다사람, 특히 백인에 대한 잘못된 환상에 젖어 무리한 호의를 많이 베푼다. 그러나 이민온 지 오래된 사람이 이러는 것을 보면 참...

사족을 붙이자면, 한국의 영어학원에는 백인들 일색인데, 그중에는 괜찮은 사람도 틀림없이 있겠지만 한국 영어강사는 이곳에서는 전혀 인기있는 직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 구인 싸이트에 가 보면 한국 영어강사 자리가
매일같이 넘쳐난다.

캐나다에서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왜 한국이라는 미지의 나라에 가서 학원 강사 그것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가겠는가?

그들을 친절하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은 얼마든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선을 긋는것이 중요하다. 무조건 호의를 베푸는 것은 때로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또하나의 흥미로운 글을 소개하면, 한국 영어학원 영어선생 모집에 미국 시민권을 가진 어느 한국인 2세가, 그 학원에서 일하는 백인 친구의 소개로 학원 선생모집에 지원했더니 처음에는 학원에서 호의적으로 나오다가 사진을 보더니 채용을 안하더라는 것이었다. 채용담당자의 말이 인상깊었다.

"어? 미국사람이라더니 아니잖아요? 우린 미국사람을 원해요."

네번째 한국사람으로 한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캐나다 사회 돌아가는것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고, 일터가 캐나다회사 혹은 캐나다 사람들만 상대하는 커피숍이나 편의점이라 하더라도 밥벌이 할 때는 캐나다 사회속에서, 생활은 한국 커뮤니티에서 하는 경우다.

구태여 캐나다 커뮤니티에 들어가려 하지도 않고, 또 캐나다사람들에게 그들이 친절하게 다가오지 않는 한 일부러 나서서 먼저 친절을 베풀지도 않는다.

다른나라 사람들과는 국적 피부색을 불문하고 기회가 닿으면 사귀지만, 아무래도 언어나 정서차이로 깊은 친구는 어렵고 주로 한국 커뮤니티에서 한국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아직도 한국에 관심이 많고, 캐나다 시민권자이면서 때로 한국 정치문제로 핏대를 올리기도 한다. 때로 먼 이곳 캐나다에서, 캐나다 수상 이름도 모르면서 한국 정치판 문제로 싸우는 사람들은 추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한국사람이라는 확실한 정체성을 가르치며, 한국말을 잊지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즉 캐나다인이 아닌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케이스가 있을 수 있고 열거한 케이스를 부분적으로 혼합한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인 호불호가 있을 뿐 어떤 케이스가 맞고 틀리다고 할 수 없다. 각각의 경우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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