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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광복절 소회

민아네 2024. 2. 24. 19:52

2005년 9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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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부서에 있는 일본사람이 지나가다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은퇴할 나이가 지난 분인데, 아직 컨트랙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에는 일본사람이 둘 있는데 한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영- 아니올씨다 입니다.

 

이 아저씨는 내가 좋아하는 분입니다.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대만에서 온 아저씨가 또 합류를 합니다. 이 아저씨는 오십 중반정도 되시는 분인데 역시 내가 좋아하는 분입니다. 전에도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역시 나이가 좀 지긋한 사람들이 여유도 있고 너그럽지, 내 나이때 정도나 그 이하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여유가 없고 좀 각박하고 인정머리 없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대만 아저씨가 갑자기 우리 몇십년전에 싸웠었지? 그러는 겁니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금방 알아차렸는데 2차대전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8.15 광복절이나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한 날 등등 8월 즈음해서는 2차 대전때 아시아를 많이 떠올리는 날이 많지요. 그런데 나는 이런 화제를 직접 그 나라 출신 사람들하고 하는게 좀 껄끄럽습니다. 아직 국제화가 덜 되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너네들 조상때문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얼마나 불행했는지 아느냐고 성난 얼굴로 따질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독도문제라든지 전쟁배상문제 교과서 왜곡문제 일본 정치가들의 망언 등등 그런 문제를, 그저 지나가다가 잘 있냐고 안부를 묻는 노인에게 성토할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결국 이런 류의 대화는, 보통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다는 식 보다는, "전쟁은 바보같은 짓이다" 라는 것으로 결론지어집니다.

 

일본사람 입장에서 본 2차대전과 한국사람, 그리고 중국사람의 입장에서 본 전쟁은 또 그 의미가 많이 다를 것입니다.

 

한국에서야 다들 같은 한국사람이니 이런 문제로 토론을 한다거나 하는 일이 자연스럽겠지만 여기서는 직장동료 이웃이 일본사람 중국사람이니 평소에 잘 지내던 동료, 이웃과 이런 문제로 언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생각이 됩니다.

 

캐나다에서 유명한 자연보호운동가 중에 데이빗 스즈끼 라는 일본계 캐나다인이 있습니다. 이사람은 아주 어릴때 캐나다에 온 사람인데 어린시절에 2차대전을 맞게됩니다.

David Suzuki.

 

언젠가 이 사람이 데이빗 스즈키가 TV에서 인터뷰를 하는것을 보았는데, 2차대전때 캐나다에서 국내 모든 일본인들을 강제로 수용소에 수용했던일, 그리고 종전이 되었을때 연합군이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부르면서 환호하던중, 부모와 주변 일본 동포들의 울지도, 웃지도 못할 그런 착잡한 분위기를 느꼈던 일 등등을 이야기 하더군요. 나의 태어난 조국이 지금 살고있는 조국과 전쟁을 한다면 그것처럼 아이러니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캐나다 역사집을 보니 2차대전때 캐나다에 사는 일본인들이 군대에 자원해서 일본인 중대들 조직해 암호해독이나 통역 등등의 일을 했다더군요.

 

태어난 조국이 일으킨 전쟁에 반대해 자원을 했다기 보다는 캐나다에 살면서 일본 출신이란 이유로 얼마나 차별을 받았으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2차대전때 일본계 캐나다인 군인들.

 

나와 우리 가족은 아직 시민권 신청을 안했으니 당연히 한국사람이지만, 만약 시민권이 나와서 캐나다 사람이 된다면, 캐나다가 진짜 마음속 "조국"으로 생각이 될까 스스로 질문을 해 봅니다만, 솔직하게 말하면, 진짜 조국은 미안하지만 "한국" 이라는게 답인것 같습니다.

 

내가 캐나다에 온 이유는 나의 필요와 캐나다의 필요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지, 캐나다를 나의 "마음으로부터의" 새 조국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기서 하는 "애국"이란 것은 직장 열심히 다니고 경제활동 열심히 해서 세금 꼬박꼬박 잘내고 법 질서 잘 지키는 것 정도지, 만일 어떤 다른나라에서 캐나다를 공격을 했다거나 한다면 내 목숨이나 가족의 안전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끝까지 대항을 한다거나 하는것은 무리겠지요. (한국 남자들은 다 군대를 갔다오기 때문에 소집만 하면 금방 전투 전력으로 쓸 수 있지요)

 

땅은 넓고 인구가 적은 캐나다 특성상 이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캐나다, 그리고 여러가지 민족과 여러나라 출신이 뒤섞여 살아야 하는 캐나다에서 진정한 애국심을 끌어내는것은 큰 숙제가 아닐수 없을 것입니다.

 

더우기 캐나다는 "민족의 모자이크"를 표방하면서 각 민족의 특성과 풍습을 존중해 준다는, 미국의 "용광로" 정책과는 또 다른 정책을 펴는지라, 정부의 애국심에 대한 목소리가 사람들, 특히 이민자에게 먹혀들기에는 좀 약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여러가지 경로로, 그것이 합리적이든, 비 이성적이든 간에,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애국심을 강조하고 그게 얼마간 먹혀들어가는것 같습니다.

 

또 실제로 이민자들도 미군에 들어가 전쟁터에 나가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시민권자가 아니더라도 - 이렇게 전사하면 즉시 가족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된다고 합니다) 캐나다군은? 글쎄요.

 

캐나다 모자이크 정책 보다는 차라리 미국처럼 우리 방식에 완전히 순응해서 죽이되는 밥이되는 일단 들어와 섞여 부대끼며 살아라 하는 정책도 국가 경쟁력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내가 직접 느낀 미국의 사회 분위기는 "in or out" 입니다. 우리편에 들던지, 아니면 나가라! 이런 식이지요. 캐나다의 사회 분위기는, "let it be" 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도 좋다, 단, 사고는 치지 말고 세금은 확실히 내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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