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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먹다. 본문
20120615
2012년 6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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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닥에서 구른지 이십여년. 한국에 있는 동기들은 잘나가는 관리자요 임원에 고위 공무원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냥 한가지 기술로 먹고 산다.
주변을 둘러봐도 머리 허연 할배들이 많은것을 보면 내 미래도 저렇지 않을까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여기의 라이프스타일. 그게 싫었으면 여기 오질 말았어야지. 게다가 한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이라는 가정도 나의 화려한 현재를 보장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먹을것 입을것 자는것 소시민답게 소소하게 쓰면서 큰 걱정없이 사는 나는 다행인 편이라 위로하며 오늘도 열심히 구르고 있다.
그런데 구르면 먹을게 생기나보다. 한국말에 '굴러먹는다'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매일같이 회사에 나가 구르다보면 월급은 착착 들어온다. 월급쟁이가 월급타는 재미라도 없으면 어찌 직장생활을 하랴.
그러니 오늘도 구른다. 열씸히, 가끔은 휘휘 놀기도 하며 구른다. 재주없는 굼벵이도 구른다 하는데 하물며 사람인 나는 못 구를까.
주로 "바닥" 이란 말과 같이 쓰이는 "구른다"는 말은, 특별히 머리 쓰지 않고 몸으로 때운다는 느낌이 많이든다.
오랜 기간 학문을 깊고 넓게 닦은 대학교수 박사에게 "그 바닥에서 오래 굴러 잡수셨습니다"고 한다면 어쩐지 말의 수준이 맞지도 않거니와 큰 실례의 말처럼 느껴진다.
진료받으러 갔다가 늙수그레한 의사에게 "선생님은 이바닥에서 얼마나 오래 굴러 잡수셨나요?" 글쎄올씨다. 뒷감당은 각자의 몫.
바닥에서 굴러먹었다 하면 뒷골목 건달주먹이나 무엇인가를 잘 만드는 사람 - 그것도 명인급이 아닌 그저 그렇고 그런 물건을 만드는 사람 - 혹은 엎어치고 메치는 복마전같은 거래현장에서 빤질빤질하게 닳을대로 닳은 거간꾼 브로커나 비즈니스맨 정도, 어쩐지 이정도에 머물러야 잘 어울릴 것 같다.
게다가 그 "바닥" 이란 것은 어쩐지 학문이나 첨단기술같은 연구실에서 조용히 일하는 고차원적인 분야가 아니라, 아차하면 다치고 깨지고 여차하면 집 날리고 논밭 날려먹는, 왁왁 소리지르고 욕설이 오가야 어울릴 법한, 그런 험한 "바닥"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데 또 굴러먹다 온 "뼈다귀"라는 말이 있다.
왜 하필이면 뼈다귀일까. 구르면 뼈다귀가 되는가?
"이건 또 어디서 굴러먹다 온 뼈다귀야?" - 이바닥에서 굴러먹고있는 뼈다귀가 다른 바닥에서 굴러먹다 온 뼈다귀를 경계하는 이 표현은, 으례히 그 "뼈다귀"로부터 된통 눈탱이가 밤탱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 씬으로 이어진다.
야 임마, 나는 그래도 한우 사골뼈다귀여, 임마, 이 물건은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뼉다귀여?
아아, 이보게 뼈다귀들, 닭뼈고 소뼈고 간에 다 먼지속의 아지랑이 같은 것, 우리 술이나 한 잔 하고 용가리 통뼈나 되세.
不如來飮酒[불여래음주]술이나 먹세
- 白居易[백거이]-
莫入紅塵去[막입홍진거]붉은먼지 자욱한 세상에 들어
令人心力勞[영인심력노]힘들여 마음 쓸 일 어디 있으랴
相爭兩蝸角[상쟁양와각]달팽이 뿔 위에서 서로 싸운들
所得一牛毛[소득일우모]얻어야 한 가닥 소털 뿐인 걸
且滅嗔中火[차멸진중화]잠시 분노의 불길을 끄고
休磨笑裏刀[휴마소리도]웃음 뒤 감춘 칼도 갈지 말고
不如來飮酒[불여래음주]차라리 같이 술이나 마시며
穩臥醉陶陶[온와취도도]평안히 누워 도도히 취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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