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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밥을 먹어야 식사

민아네 2024. 2. 14. 11:34

20130102

2013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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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끼니가 되면 밥을 먹고 나서도 떡 같은 간식이 있으면 어머니는 '떡배 따로 밥배 따로' 라면서 나에게 권하곤 했다.

'밥배 따로 떡배 따로'는 세월이 지나가며 바리에이션을 거듭하여 '밥배 술배' 혹은 '밥배 고구마배' '밥배 피자배' '밥배 짜장면배' 등등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이런 먹거리의 조합에서 주목할 점은 '밥'은 꼭 들어간다는 것이다.

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사람들이 보통 두끼를 먹었다 한다. 왕족은 하루 세끼, 귀족은 두끼, 평민은 사정이 좋으면 두끼, 그렇지 않으면 한끼로 넘어갔다고 한다. 또한 끼니를 표현하는 옛말로서 '조석', 즉 아침 저녁만이 들어갈 뿐 점심이란 의미는 어디에도 없다.

옛말에 삼순구식(三旬九食)이란 말이 있다. 삼순이라 하면 한 순이 열흘이니 삼십일 동안 겨우 아홉번만 먹을 수 있는 굶주림을 뜻하는 말이라, 당시라면 '밥배따로 떡배따로' 타령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겠다.

다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흉년이 들면 관아의 공무원들에게 점심을 건너뛰라는 공문 기록을 보아서 조선시대부터 점심을 먹었으리라 짐작을 할 뿐이다. 그러나 점심은 형편에 따라 먹을수도 못 먹을수도 있는 옵션이었을 뿐, 이후 일제시대의 일본군 기록을 보면 조선에서는 대개 두끼를 먹는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끼를 먹게 된 것은 그리 먼 옛날이 아니라는 소리다.

1890년대 프랑스 엽서에 있는 조선인의 밥상. 출처: 국제신문


요즘 사람들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려는지 점심은 먹는둥 마는둥, 책상에서 일하면서 샌드위치나 과일 등 간단한 주전부리로 때우는 경우가 많지만, 그대로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은 끼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또한 때가 되면 꼭 밥을 먹어야 끼니가 채워지며, 과자나 떡같은 주전부리는 감히 식사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떡을 많이 먹어 배가 불러서 저녁식사를 안 한 사람이 떡을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 저녁을 못 먹었다 하지'저녁을 떡으로 먹었다' 라고 하지는 않는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명나라에 출장을 월사 이상공이라는 관리가 명나라 재상을 만나러 갔는데, 마침 그 재상이 그날 아침 급한 일로 조정에 들어가고 없었다. 재상은 출타하기 전 자신이 돌아올 때 까지 이상공을 잘 대접하여 실례가 없도록 하라고 일러두었다.

재상의 집에서는 이상공을 술과 떡으로 여러차례 극진히 대접하였는데 식사때가 되자 이상공은 식전이라 밥을 먹으러 숙소에 돌아가야 한다 하며 떠나려 하니 재상의 식구들이 생각하기를, 대접이 소홀하여 배가 고파 집에 밥을 먹으러 가는구나 하여 놀라고 미안하여 또 떡과 과일로 대접하였다. 이렇게 대접하기를 너다섯번을 하였다.

그러나 이상공은 대접한 음식을 다 먹은 후에도 식전이라 돌아가야 한다며 결국 돌아가 버리니, 나중에 재상이 집으로 돌아와 하는 말이 "조선사람은 밥을 먹어야 식사를 했다 하니 내 밥을 대접하라는 당부를 잊었다" 라며 한탄하였다 한다. 그러니 한국사람의 배는 예로부터 밥배가 따로 관리되어왔던 것 같다.

요즘같이 먹을게 넘치는 세상에 밥을 챙겨먹는다는 것은 오히려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구태여 귀찮게 밥을 안해도 간단하게 배를 채울만한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인의 밥배는 역시 밥으로 달래주는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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