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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컴퓨터 역사 본문

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나의 컴퓨터 역사

민아네 2024. 2. 18. 16:53

2009년 4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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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컴퓨터 역사 - 1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란 물건을 만진것은 금성 패미컴이라는 물건이었다. 키보드와 본체가 일체형인 이 8비트짜리 컴퓨터는, 모니터가 없어서 테레비에 연결해서 영상을 봐야하는 물건이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미국에서 애플이 나오던 시절 국내 가전업체에서 이를 모방해서 비슷하게 만든 짝퉁 물건이었다.

베이식 언어가 내장되어 있고 단축키가 강제내장되어 있어(옵션이 아님) 예를들면 베이식 언어에서 print 라는 명령어가 p 자판에 고정이 되어 있어서 'p'만 누르면 'print'가 자동으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의 치명적인 단점은 p를 포함하는 단어, 예를 들면 point 라는 단어를 입력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아면 p를 누르는 순간 이미 print 라는 단어가 강제로 들어가기 때문에...


저장장치는 특이하게도 카셋 테이프여서 카셋 테이프 플레이어가 있어야 했으며 이마저도 없으면 힘들게 매뉴얼을 보고 따라 쳐 넣은 베이식 프로그램을 한번 해 보고 다 날리는 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 장애물을 피해 달리는 게임 프로그램이었는데 사람이 점프를 하면 도무지 다시 땅으로 떨어질 생각을 안하고 한없이 치솟기만 하는 것이어서 다시 땅으로 내리려면 별도로 키를 눌러주어야만 했다.


문서작성이나 계산은 엄두도 못내는 그야말로 장난감이었다.

금성 패미콤.

 

그 이후 8비트 애플이 대세였으나 이미 구입한 패미컴을 가지고 노느라 애플은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 이후에 16비트 컴퓨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처음 나온 16비트 컴퓨터는 조잡하기가 그지없어 청계천에 가 보면 그당시 절정에 이른 8비트 애플 최종모델이 차라리 더 좋아보이기도 했다.

 

드디어 나도 청계천에 가서 16비트 컴퓨터를 장만했다.

 

삼보 트라이젬, XT, 5.25" FDD, 512KB 메모리와 허큘리스 그래픽카드 그리고 14" 흑백 모니터를 갖춘 나름대로 당대 최신형의 컴퓨터였다. 물론 프린터도 없고 마우스도 없이 DOS 운영체제로 돌아가는, 그나마 하드디스크가 없어서 플로피를 넣고 전원을 넣어야 부팅이 되는 그런 컴퓨터였다.

당시 내 컴퓨터와 동일한 모델. 내 컴은 하드가 없어서 플로피디스크로 구동시켜야 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박물관에나 있음직한 물건이지만 당시 가격은 거의 200만원을 육박하는 엄청 비싼 가격이어서 이것을 구입하기 위해 아끼고 아껴서 모아둔 돈을 전부 털어넣고 말았다.

 

청계천은 전자제품에 관한 한 부품에서부터 완제품까지 없는게 없는 그야말로 전자제품의 메카라고 불리웠는데 항간에는 청계천에서 인공위성까지 만들 수 있는 기술력과 재료가 있다는 말도 돌았었다.

 

청계천에는 꼭 구입할 물건이 없어도 한달에 한두번쯤 눈요기 삼아 나들이를 가서 최신 컴퓨터나 주변기기를 구경하고 실없이 값만 물어보고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청계천을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어느정도 안면이 튼 가게 주인도 생기게되고 가끔 청계천에 갈 때면 가게 주인에게 새 프로그램을 복사해 오곤 했다.

 

그때에는 프로그램 불법복제에 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라 가게 주인에게 전혀 스스럼없이 프로그램 복사를 부탁하곤 했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아직 업무에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고 다만 사무실 한구석에 XT 컴퓨터 세대가 24핀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와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는 항상 사무실에 남아서 그 컴퓨터를 가지고 놀다가 늦게 퇴근하곤 했었다.

 

 

나의 컴퓨터 역사 - 2

 

286 AT 라는 PC가 나오면서 개인용 컴퓨터의 속도는 두배로 뛰었다. 회사에서는 제도판에 연필로 그리던 설계도면을 컴퓨터로 하도록 독려하기 시작했고 시범케이스로 별도 전산실에 있던 컴퓨터 설계 장비를(CAD) 떼어서 설계부서에 하나씩 배치하였다.

 

CAD 장비는 당시에는 너무너무 비싼 장비여서 회사에서는 전산실 옆에 CAD실을 별도로 만들어 운영했는데 그 앞을 지나다 보면 넓직한 창 안으로 보이는 CAD실은 비싼 컴퓨터와 커다란 모니터들로 가득한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컴퓨터실 같았다.

 

당시 전산실에 있었던 캐드 워크스테이션.

 

Computervision 이라는 HP 사의 워크스테이션에 microstation 이라는 CAD 프로그램을 사용했었고 다들 깨끗한 복장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첨단기술 인력답게 일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첨단은 개뿔, 그 때 작업한 파일들을 나중에 열어보고 엉터리로 도배된 CAD 설계도면에 한숨만 푹푹 쉬던 생각이 난다.

 

사무실에 CAD가 도입되기 이전에 사무실 한 귀퉁이에 있던 XT 컴퓨터에 신기하게도 AutoCAD 프로그램이 깔려있었다. 물론 라이센스 같은거 없는 불법 카피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것을 보고 CAD에 완전히 매료되어 지금까지 그 기술로 먹고 살고있다. 그때는 어찌나 그게 신기하던지, 마우스도 없는 사무실 XT 컴퓨터에 늦게까지 앉아 매뉴얼을 보며 키보드 화살표로 커서를 움직여가면서 혼자 배워나갔었다.

 

회식이 있던 어느날 선배 사원들과 어울리다가 술에 떡이 되어 새벽 두시에 집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 상태에서도 집에서 새벽 세시까지 연습을 하고서야 잠을 자고 아침에 출근을 했을 정도였다.

 

그때까지 컴퓨터는 흑백 일색이었고 CGA (Color Graphic Adapter) 라는 16색이 나오는 컴퓨터가 개인용 컴퓨터로서는 최신이었다. 비싼 전용 모니터나 일반 테레비에 연결해서 볼 수 있었고 최고 해상도는 고작 640x200에 불과했다.

 

그보다 좀 더 좋은 EGA(Enhanced Graphic Adapter)는 같은 칼라수에 640x350 해상도였다. 당시 CGA에 전용 모니터, 286 AT에 24핀 dot matrix printer 를 장만하려면 웬만한 승용차 한대 값이 필요했다.

당시의 전형적인 286 PC.

 

나는 오로지 목적이 CAD만 하면 되었으므로 AT 컴퓨터와 모니터만 구입했다. 마우스는 밑면에 뻘건 불이 나오는 광마우스에 특수 마우스패드를 이용해야 하는 물건이었고 그래픽 카드는 흑백인 허큘리스 카드, 80×25의 text 영역과 720×348 의 그래픽 영역으로 흑백이란 점만 빼면 CGA나 EGA 같은 어줍잖은 칼라카드보다 훨 나았다.

 

1메가의 램, 20MB의 하드디스크를 장착한 그 모델은 프로그램을 돌리면 탱크 굴러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당대 최신의 개인용 컴퓨터로서 손색이 없는 모델이었다.

 

그러나 CAD를 하려고 구입한 컴퓨터가 막상 CAD가 안돌아가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80286 프로세서가 CAD 프로그램의 연산을 못 쫒아가서 80287이라는 코-프로세서를 따로 구입해서 장착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당시에 거금인 20만원을 들여 코프로세서를 구입, 슬롯에 끼웠더니 그제서야 CAD를 가동할 수 있었다.

 

당시에 고가의 CAD 프로그램이나 계산 프로그램들은 불법복제를 막기 위해서 하드-락(Hard lock)이라는 장치를 끼워 팔았다. 즉 프로그램을 인스톨 한 뒤에 컴퓨터 뒤에 프린터 포트에 이것을 끼워야만 프로그램이 돌아가도록 한  장치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드락을 아무리 걸어서 출시를 해도 정품 출시한 뒤 일주일만 지나면 청계천에 하드락 없이 돌아가는 불법 소프트웨어가 출현해서 마구 돌아다녔다.

 

이 하드락을 해제하는 것은 일반 컴퓨터로는 불가능하고 마이크로닉스 보드라는 하드웨어를 장착한 컴퓨터에서 가능한데 이 하드락을 해제하는 점조직 형태의 사람들이 있어 청계천에서 비밀리에 접선을 하면 장비들을 가지고 와서 한시간 정도 하드락 해제작업을 해 준뒤 거액을 챙겨 홀연히 사라진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의 컴퓨터 역사 - 3

그러나 286에 DOS 시스템으로는 아직 업무에 적용하기는 무리였다. 삼성에서 만든 글틀이나 셈틀같은 워드프로세서나 스프레드쉬트같은게 있었는데 셈틀은 로터스 123를 한글로 바꾼것이었다.

 

황당한 것은 글틀로 문서를 작성하다가 한페이지 반 정도 넘어가면 "메모리가 부족하다" 는 메세지가 뜨면서 프로그램이 멈추어 버리는 것이다. 하기사 그때는 640KB의 메모리에 확장 메모리 1메가를 꽂아쓰던 때였으니 무리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소프트웨어 설계를 어떻게 했길래 컴퓨터가 사람에게 반말을 지껄인단 말인가. "부족하다" 라니! "부족합니다" 해도 뚜껑이 열릴 판에.

 

스프레드 쉬트인 셈틀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차라리 로터스 123를 불법카피해다가 사용하곤 했다.

 

업무에 컴퓨터를 적용하는 것은 386 시스템 / WINDOWS 3.1 이후의 일인 것 같다. 그 전의 단계는 거의 초보단계의 계산이나 문서작성일 뿐이었고 컴퓨터 특유의 넷트워크, 데이타베이스라든지 문서정리 검색같은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대부분의 업무용 문서나 도면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졌으며 다만 아래한글이 나오면서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어느정도 용량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던 것 같다. 덕분에 컴퓨터보다 조금 싸게 팔리던 워드프로세서 전용기는 시장에서 치명타를 입었다.

 

이때 회사에서는 업무용 컴퓨터에 넷트워크를 시도했는데 지금 윈도우에서는 그토록 간단한 네트워크가 당시 DOS 시스템에서는 어마어마한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노벨 넷트워크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는데 전용 케이블이나 전용 넷트워크 카드가 필요했는데 툭하면 에러, 다운이 되곤 해서 담당자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 당시에 1024x768 의 해상도에 256칼라를 구현할 수 있는 VGA 카드가 마구 쏟아져 나와 거의 표준화가 되었다. 이전의 허큘리스나 CGA, EGA 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능이었다. 물론 초기 가격은 매우 매우 비쌌다.

 

그런데 VGA는 시간이 갈수록 값이 내려갔는데 문제는 모니터였다. 칼라 모니터는 여간해서 값이 내려가지 않는게 탈이었다. 나는 당시 VGA 카드를 가지고도 모니터가 없어서 못 쓰고 있었는데 내 구미에 맞는 물건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VGA 모니터이긴 한데 흑백으로 나오는, 출판사에서나 사용함직한 흑백 VGA 모니터였다.

 

이놈으로 칼라영상을 보면 칼라가 있는 부분은 해당되는 그레이 톤으로 보이기 때문에 마치 흑백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VGA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당장 용산으로 달려가 하나 구입했다. (당시에는 구세력의 청계천과 신흥세력 용산이 양립하던 시대였다)


나의 컴퓨터 역사 - 4

VGA로 업그레이드를 하니 VGA용으로 나온 각종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VGA용 게임은 돈주고 하는 오락실용 게임과 꼭 같거나 오히려 양질의 화면을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게임을 하느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그중 하나인 "레저 수트 래리 Leisure Suit Larry" 는 약간 야하면서도 어찌나 웃기고 재미있던지 한동안 심취했던 게임이다. 그 밖에 스톤에이지, 팩맨, 아라비아 왕자, 볼펜슈타인 등등이 생각난다.

래리 게임의 도입부. 저기에서 아무생각없이 그냥 길을 건너면 차에 치이고 그대로 게임오버.

 

그러나 흑백으로는 역시 한계가 많아서 결국 흑백 VGA 모니터는 헐값에 팔아넘기고 큰맘먹고 칼라 모니터를 구입하여 칼라 시대를 열게 되었다. 내친김에 싸운드카드와 스피커도 구입하여 삑삑거리던 컴퓨터 소리를 벗어나
웅장한 스테레오 디지탈 싸운드 시대로 들어갔다.

 

컴퓨터도 286에서 386, 486, 펜티엄으로 눈이 돌아가도록 바뀌는데 컴퓨터 업그레이드 하는데 쓴 돈을 다 모으면 아마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조그만 집 한채값은 되지 않을까 싶다.

 

펜티엄 까지는 최신정보를 입수하여 줄줄 꿰고 다녔었는데 그 이후 즉 요즘나오는 싱글코어니 듀얼코어니 코어 2 듀오니 하는 것들은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

 

윈도우 3.1 이 나오고 윈도우용 CAD가 나오자 이제 제법 일이 좀 되는 것 같았다. 메모리 제한도 없어지고 시스템도 이전에 비해 월등히 안정되었다. 네트워크도 많이 빠르고 좋아졌다.

 

이때 가장 많이 캐드작업을 했었던 것 같다. 거의 모든 문서나 도면이 컴퓨터로 작성되었고 저장되었다. 그러나 아직 데이타의 정리 저장 검색은 요원했던 것 같다. 하드웨어의 성능 부족도 있겠지만 아직 업무 프로세스 자체가 컴퓨터에 맞게금 Re-Engineered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지나자 VGA를 넘어 XGA 32비트 칼라시대가 왔다. 256 칼라에도 감탄을 했었는데 32비트 칼라를 보자 화면이 너무 생생해서 사진보다 더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컴퓨터 그래픽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나의 컴퓨터 역사 - 5

 

노트북 컴퓨터가 슬슬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자 나도 덩달아 사고싶어 안달이 나기시작했다.

초기 노트북 가격은 300만원을 넘나드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게다가 성능은 어찌나 열악한지 주변이 조금만 밝아도 잘 안보이는 LCD 방식에 800x600 해상도에 두툼한 두께와 무게 그리고 소음은 어찌나 크던지. 실용성 보다는 긴급한 일에 쓰는 임시방편 아니면 과시용 정도였다.

 

노트북이 워낙 비싸다 보니 중고시장을 기웃거리다가 도저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그냥 Dell 에서 나오는 래티튜드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주택청약저축을 헐어서... 펜티엄 MMX 266 짜리였고 조금 더 업그레이드를 해서 1024x768 해상도의 스크린으로 장만했는데 컴퓨터에 관한 한 가장 큰 투자였고 또한 가장 큰 효과를 
본 놈이다. 

주택청약통장을 깨서 장만한 나의 첫 랩탑컴퓨터와 동형의 컴퓨터.

 

이놈이 회사에서 외국 출장을 갈때 맹활약을 했고 또한 이민 온 후에 직장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고나 할까. 또한 당시에 6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한 1메가 픽셀짜리 8메가 메모리의 코닥 디지탈 카메라는 국내와 해외에 꼭 동반하였고 수없이 많은 귀중한 영상을 제공하고 산화하였다.

 

당시에 디지탈 카메라를 꺼내어 노트북과 무선 연결로 파일전송을 하면 사람들이 신기하게 볼 정도로 귀한 제품이었다. 적외선 무선연결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폐기된지 오래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아마 블루투스의 원시적인 형태정도 될 것이다.

 

그 이후에 쏘니 바이오를 거쳐 후지쯔, 그리고 지금 코어 2 듀오를 장만했으니 나도 컴퓨터를 엄청 갈아치운 셈이다.

 

초기의 8086 XT 프로세서와 640KB의 메모리 20메가의 하드디스크를 갖춘 초기 컴퓨터와 코어 2 듀오 프로세서, 250GB 하드, 4GB 메모리, 32비트의 칼라를 구사하는 지금의 노트북을 비교해 보면 그 당시 회사 전산실 전체의 파워보다 더 방대하고 강력한 시스템을 손가방 하나에 들고 다니는 셈이다.

요즘의 플랜트 설계. 저렇게 3D 모델링을 해서 도면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