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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살아있는 생명체 본문

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문화는 살아있는 생명체

민아네 2024. 2. 14. 14:35

2016년 11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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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보다가 한국의 해방 전 영화부터 시작하여 전후, 6,70년대를 관통하는 각종 쑈프로, 드라마, 국민영화등등이 잘 정리되어 업로드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에는 옛날 영화만 있었는데, 이제는 다양하게 여러 분야의 영상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67년도 제작의 "벼락부자"라는 영화에는 구봉서 서영춘이 주연으로 나온다. 구봉서가 호텔 도어맨으로 나오는데 천만원짜리 복권에 당첨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천만원을 타면 "천만장자"가 된다는 표현으로 보아 당시 천만원은 엄청난 금액이었던것 같다. 으리으리한 양옥집이 2백만원으로 나오고 구봉서와 그의 약혼녀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전기구이 통닭을 보며 "저것은 비싼것이니 나중에 먹고 지금은 찐빵을 사먹자"라고 말한다. 

영화 '벼락부자'의 한장면. 앳된 얼굴의 구봉서.

 

복권을 넣어 둔 양복을 서영춘이 몰래 빌려입고 나가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양훈이 중국집 주인으로 나오고 서영춘이 애인과 함께 중국요리를 돈도 없으면서 이것저것 먹고는 구봉서의 양복을 잡힌다. 이 중국집에서도 통닭은 비싼 메뉴로 나온다. 마무리는 돈을 보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환멸을 느낀 구봉서가 진실한 사랑과 우정을 찾아간다는 전형적이고도 교훈적인 결론이다.

허장강 김희갑 황정순등이 나오는 "촌닭 아가씨"에서는 촌에서 상경하여 술집에서 일하게 된 아가씨가 나오는데 지금같으면 악역들이나 할 법한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장면들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당연하게 나온다. 술집에서 아가씨가 매상을 올리려고 손님으로 하여금 이것저것 음식을 시키도록 하는데 역시 통닭은 비싼 메뉴로 나온다. 손님(박시명)이 "통닭은 1인분이면 됐지 왜 2인분을 시켜?" 하자 아가씨가 "아이 참, 제가 먹는게 그렇게 아까와요?" 하는 대사가 나온다.

통닭은 아마 지금의 닭고기보다 맛있었을것 같다. 왜냐하면 통닭은 지금처럼 닭공장에서 대량생산하듯 기르는 닭이 아닐것이기 때문이다. 

구봉서 배삼룡 이기동 곽규석 이순주 서영춘등 나의 어린시절 늘 놓치지 않고 보았던 TV속의 스타 연예인들이 젊은 모습으로 나온다. 지금은 거의 다 작고한 분들이다. 그 분들 예명은 후라이보이 곽규석, 막둥이 구봉서, 비실이 배삼룡, 땅딸이 이기동, 살살이 서영춘으로 기억한다. 남보원 송해가 발간 볼의 해맑은 젊은이의 얼굴로 나온다.

1967년 '쑈'에 출연한 구봉서와 곽규석. 출처: KTV


그보다 더 오래된 필름에 나오는 가수나 코미디언은 나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안다 하더라도 그저 이름만 어줍잖게 줏어들었을 뿐이라 생소하다.

영화의 스토리나 수준은 물론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형편없겠지만 영화속에 나오는 거리풍경과 차량,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이채롭다.

지금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런 연기도 그 당시에는 배꼽을 잡고 눈물을 흘려가며 웃었었다. 어린시절 코미디 프로그램은 온가족이 놓치지 않고 시청하던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였다.

60년대 초에는 군사정권이 들어선 직후여서 그런지 사회자 멘트도 색다르다. 김희갑의 "국민 여러분! 혁명과업 수행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로 시작되는 쑈 개막 멘트는 마치 북한 중앙방송을 보는 듯 생소하다.

공개 야외쑈의 모습이 나온다. 넓은 광장에 관중석은 의자도 없이 새끼줄로 구획을 나누어 놓았을 뿐이다. 구름같이 몰려든 관중들은 그냥 맨땅에 주저앉아 구경을 한다.

 

1972년 평택 새마을운동 위문쑈 '잘살아보세', 구봉서 이기동 배삼룡 이순주 이대석


사람들의 입성을 보니 아직 쌀쌀한 날씨에 바람도 만만치 않게 불어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헝클어 날리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남자들은 두엇에 하나는 꼭 담배를 피워물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얼굴은 호기심어린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간혹 항공잠바에 짧은 머리, 썬그라스를 끼고 왠지 날카로운 인상의 사람들이 관중속 군데군데 섞여있다. 그게 그당시의 첨단 유행이었거나 아니면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미자 하춘화 김세레나 김상희 패티킴 등 당시 최고의 여가수들도 나온다. 패티킴은 당시에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했나보다.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인터뷰를 한다.

"패티킴씨는 미국에 많이 가보셨지요? 미국은 어떻던가요?"

패티킴이 약간 혀 꼬부라진, "교포발음"으로 대답한다.

"엄- 미국 정치인들은 싸울때는 심하게 싸우지만, 엄- 어떤 일을 처리할 때는 한데 뭉치더군요. 이런거는 우리가 좀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미국사람들은 이렇게 나라를 위해서라면 힘을 합친다는 말씀이군요!"

같은 위문쑈에서 '서울의 노래'를 열창중인 패티킴.


아마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신민당 김대중씨 때문에 좀 골치아팠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설마 패티킴이 한국말이 저렇게 불편해질 정도로 미국에 오래 살았을 리는 없고 그냥 한국 미국을 왔다갔다 했던 모양인데 그냥 발음을 의도적으로 저렇게 한 것이리라. 당시에는 미국에 몇달만 갔다와도 저런 말투를 쓰면서 은근히 자랑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저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 하다.

쑈프로를 보니 사회자는 물론이고 코미디언이나 가수들이 주눅들어 보인다. 아무리 연기가 본시 꾸며서 행동하는 것이라 해도 연예인들이 저렇게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연기와 노래를하는 것은 참으로 어색하다.

연예인들이 힘있는 자들의 눈치를 보는것은 지금도 현재진행이지만 그래도 저 때는 좀 심했던 것 같다. 권력자들이 국민을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닌 지배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당시에도 제대로 된 해외파 가수가 있었으니 "김 시스터즈"이다. 숙자 애자 영자로 구성된 트리오 걸 그룹이었다. 그들은 해방시대 인기가수 김난영의 딸과 그 사촌이었다. 그냥 미국에 가서 이름이나 내걸고 공연 몇 번 한 수준이 아닌 진짜 미국 내에서 한국인 최초도 아닌 아시안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도 이름을 올렸던 초대박 걸 그룹이었다. 딘 마틴 쑈와 에드 설리번쑈와 같은 굵직한 골든타임 미국 쑈프로에 부지기수로 출연했던 킴 씨스터즈였다.

미국 최고 인기프로 '딘 마틴쑈''에 출연한 킴 시스터즈.


미국에서 그렇게 성공을 했으니 한국에서야 말 할 것도 없다. 김시스터즈가 미국에서 성공한 후 내한 공연을 할 때에는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던 서울시민회관에 인파가 구름같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무대 앞에서 김시스터즈 내한공연을 축하하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김 시스터즈 중 한 분은 이미 작고하고 한 분이 근래 방한하여 "다방의 푸른 꿈" 이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하였던 것을 테레비에서 방영한 적이 있다.


옛 영상이나 음악을 감상하노라면 잠시 낯선 일상을 잊고 옛 생각을 불러내어 그 안에 포근하게 잠길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보니 문화라는 것은 끊임없이 꿈틀대며 변화해 나가니 마치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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