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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한방향. 우리는 하나. 본문

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한마음 한방향. 우리는 하나.

민아네 2024. 2. 14. 12:55

2015년 11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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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입사원때 사무실 옆에 제도판이 있었던 것만 빼고는 거의 같은 사무실 광경.


Ep.1
한국 회사에서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꼭 잊지않고 한마디 하는것은 나이든 임부장이고, 꼭 그 와중에 저쪽에서 눈치없이 옆사람과 계속 웃고 떠드는 사람들은 '분위기 파악 못하는' 차대리 김주임 안사원이었다. 그리고 부장 옆에는 딸랑이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어서, 꼭 한마디 거들게 되어있었다.

- 어허!! 거기 지방방송 좀 꺼라!

술도 일사불란하게 마셔야 한다. 부장이 맥주 그라스에 소주를 찰찰넘게 부어주면, 옆에 앉은 순서, 즉 고도리 방향 혹은 포카방향으로 잔을 넘기며 노털카로 마시고는 다 비워진 잔을 머리위에 거꾸로 들고 탈탈 털어야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체질상 술이 전혀 받지를 않아 도저히 술을 마실 수 없었던 한 신입사원은 소주로 가득 찬 잔을 스스로 자신의 머리위에 거꾸로 들어 부어버렸다. 필시 취직했다고 엄마가 사주었을 캠브리지 기성복 콤보정장은 소주로 흠뻑 젖어버렸다. 

순식간에 싸해진 분위기는, 다행히 부장이 박수를 치며 마 댔다! 사나이가 술 못 무믄 저렇게 깡이라도 있어야 안되겠나! 하고 거드는 바람에 단박에 반전되었다. 다음 차례였던 깡없고 소심 쫄보인 나는 그냥 울컥대며 꾸역꾸역 잔을 비웠다.

술기운이 얼근히 오르면 노래가 시작된다. 노래방이 유행하기 이전이어서 소주병에 숟가락 꽂아 마이크를 삼고 젓가락 두가락은 드럼이 되어 타악기와 박수의 반주로 노래 메들리가 이어졌다. 역시 예외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넥타이 풀어 삼돌이 머리띠에 박자 따라락 딱딱 맞게 젓가락 두드리고 박수 역시 모두가 해병대 박수 뺨치도록 일사불란하게 쫙쫙 리듬이 맞아야 했다. 대리 이하는 무조건 일어나서 삼돌이 막춤을 추어야 했다.

평소에 업무상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겨줘서 고마웠던 미스김, 잊어버렸던 서류를 몇달동안이나 잘 챙겨놓았다가 나의 위기를 넘겨주었던 김대리, 무슨 미운털이 박혔는지 나만 보면 갈구던 조주임, 각자 할 얘기가 많았는데 이런 자리에서 슬며시 얘기를 하면 좋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방방송', 잠깐 잠깐씩 눈치를 보면서 요령껏 하는 수 밖에. 한마음 한방향. 우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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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교회에서 그동안 수고해 주시던 전도사님이 목사 안수를 받고 다른 교회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 전도사님이 리더로 있던 그룹(당시에는 구역이라 불렀다)에서는 전도사님을 위하여 작은 선물을 드리기로 하였는데, 그것을 논의하기 위하여 교회 예배 후 잠시 시간을 내어 회의를 했다. 구역에서 가장 오래전에 이민을 온, 나이도 많고 편의점 사업으로 왠만큼 돈도 많은 장로님이 총대를 맸다.

- 자, 우리 모두 각자 돈을 모아서 합동으로 선물 한가지 드리는게 어때요? 별 의견이 없으면 각 가정마다 20불씩 내도록 합시다. 선물 구입은 김집사가 좀 수고해 주시고요.

모인 사람들은 다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냥 정해진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다는 듯 심드렁하게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이민온 지 석달밖에 안되는 지연이 엄마가 한마디 했다.

- 저... 저희는요, 그냥 개인적으로 선물 드리면 안될까요? 평소에 전도사님께 신세진 것도 있고요, 개인으로 선물 드릴께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상적인 제안이 이 그룹에서는 처음 일어나는 일탈이었는지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장로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푹 쉰다.

- 개인선물은 무슨.. 그냥 합쳐서 같이 하시죠.

- 장로님 다른 분은 그냥 하고싶으신 대로 하시고요, 저희는 그냥 개인적으로 선물 드리고 싶...

장로님이 격분하여 명단을 확 팽개치며 버럭 일갈한다.

- 아 진짜!! 요즘 젊은사람들 왜 그렇게 개인적이야! 할려면 다 같이 하고! 안하려면 다 관두고!!

한마음 한방향. 우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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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이민 초기, 여름방학에 애들을 써머캠프에 보냈는데, 가까운 공원에 트립을 간다고 했다. 이동차량으로 밴 몇대가 지원되었는데, 애들을 나누어 태워야 할 상황이었다. 스무명 남짓한 애들을 네명, 다섯명씩 조를 편성하여 차에 태워야 했다. 그런데 이 조 편성하는 일이 하세월이었다.

- 데이빗, 누구랑 같이 타고 싶어? 제이미? 아, 그래? 근데 제이미는 존 그룹에 끼고 싶다는데? 대니얼 그룹에 같이 가면 안돼?  싫어? 그러면 마크네 조는 어때? 마이크랑 같은 차 탈 사람 손?

이런 식이었다. 애들 하나 하나 물어보고 차량 조 편성을 하다보니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나는 답답해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 어이, 저기 마크, 일루와. 기준!

- 기준!!

- 어허 소리 봐라, (배를 작대기로 꾹꾹 쑤시며) 아침밥 안먹었나?? 엉?? 기준!

- 깃!! 쭌!!

- 자, 다들 주목! 사열 종대, 사열종대, 헤쳐모엿!! 이 새뀌들 동작봐라!

- 앞줄부터 앉아번호!

- 하낫! 둘! 셋! 넷!...

- 자, 일렬부터 탑승 개시!

이게 내가 상상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1분도 안 걸릴 일을 저 답답이 선생은 지금 15분째 저 짓거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차를 타면 얼마나 오래탄다고, 어이구 그깟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맘에 안맞는 친구하고 좀 타고 가면 어때? 좀 참으면 되지. 그리고 애새끼들이 참고 말고가 어딨어? 애들 다 똑같지, 그냥 하루만 운동장에 뒹굴고 치고 박고 같이 섞어서 놀게하면 다 친구되고 그러는거지. 따 당하는 애들은 다 이유가 있는거야. 애들이 괜히 그러겠어?

다른 애들 봐. 다들 잘 어울리고 지내고 있는데 유독 유난떠는 애들이 꼭 있어요. 그런 놈들은 모아다가 해병대 극기캠프 며칠 보내면 다 해결돼. 그것도 안통하는 놈들은 어쩔수 없어. 쫒아내야지.

한마음 한방향. 우리는 하나.

70년대 국민학교 조회광경.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어린시절 그렇게 자랐으니까. 단체에서는 소수의 '색다른' 개인을 지워버렸을 때 확실히 빠르고 효율적이다. 소수의 예외는 무시하면 되었다. 그 무시당하고 방출당한 소수는 틀림없이 비참한 댓가를 받을 것이었다. 따라서 내가 그 소수에 속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치를 보아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선생이 늘 말하던 구절이 있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라는 말이었다. 미국의 지미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인권문제로 감정이 상해 돌아갔던 그 시절이었다. 

늘 대위 계급장의 군복을 즐겨입던 교련선생은 민주주의랍시고 너도 나도 인권만 주장해서는 나라가 개판이 될 것이라며, 인권 떠드는 놈들은 모조리 쓸어담아 태평양 한가운데 빠트려 버려야 된다고 했다. 지미 '카터'를 'CUTTER' 로 알았던 그는 카터는 이름처럼 카터로 짤라버려야 한다고 빈정대기도 했다.
 
집합시간에 늦거나 동작이 늦거나 틀리면 가차없이 가혹한 구타와 처벌을 받으며 들었던 말이었다. 그 말에 의하면 나는 전체를 어려움에 몰아넣은 형편없는 개인이었다. 그런데 개인이 전체를 위하여 희생하는 일은 많았지만 전체가 개인을 위하여 뭔가를 해주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말은 북한의 대표적인 구호로서 천리마운동을 시작하며 김일성이 평안도의 강선제강소를 시찰할 때 북한의 집단주의를 강조하면서 말한 것이었다.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는 개인을 말살하는 전체주의와 다르다며 인용하는 김일성 어록중 대표적 구절임)

 

교련선생이 늘 입에 달고 다니던 저 구호는 북한 김일성 어록의 한구절이었다.


그러니 그 교련선생의 발언은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했을 때 잘못되면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큰 화를 당했을 수도 있었을 대단히 위험한 발언이었으니, 행여 일이 잘못되어 그 말 한마디로 간첩으로 몰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면 그의 박살난 인권은 어디가서 찾았을 것인가.

아이러니한 점은 김일성이 했다는 그 말을 이쪽 남한 사회에 적용시켰을 때 별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련선생도 아무런 의심없이 위험천만하게 그 말을 하고 다녔고 아이들도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 빨갱이는 다 죽여도 된다는 스님이나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북한의 원조 세습 빨갱이들이나 별로 다르지 않아보인다. 3대에 걸쳐 세습되는 독재자를 비판하면 당장 목숨이 날아가는 북한이나 그들이 추종하는 독재자를 비판했다고 죽여야 한다는 사람들의 차이는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 그 야수와 같은 포악한 생각과 마음은 동일한 것이다.

오래 전에 이민왔던 그 장로님은 그 당시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생각에 정체되어 있었던 것이고, 새로 이민온 젊은 아줌마는 또 최근의 민주화된 한국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 이민 온 사람을 '구포', 새로 이민온 사람을 '신포'라 부른다면 그 중간에 어중간하게 낀 나같은 사람은 시쳇말로 '낀포'다.

낀포는 구세대의 무지막지한 짱돌과도 같은 폭압도 겪어보았고 새로운 시대의 자유로운 생각도 경험해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내 또래 사람들 중에는 젊은이들이 말하는 '보수꼴통'도 있고, 자칭 보수들이 말하는 '빨갱이'도 공존한다. 먼 타국까지 와 공부하면서 식당에서 힘들게 알바하는 청년들에게 무조건 야자 막말하며 진상질로 괴롭히는 '개저씨'도 존재하고 상대가 비록 애들이라도 존중하고 존대하는 "깨인" 사람들도 있다.

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어느쪽에 속할 것인지 무엇을 주장할런지는 본인의 결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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