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Home

백고불여일블 본문

옛날 글과 사진/한국에서

백고불여일블

민아네 2024. 2. 13. 21:45

20120126

2012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
 
백고불여일블.

과거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씨가 기고문에 썼다가 학자답지 못한 천박한 표현이라 하여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은 사연이 있는 이 말은 백번의 고고가 한번 블루스보다 못하다는 의미를 갖고있다.

386세대가 학창시절을 지낸 7, 80년대의 춤문화는 트위스트에서 고고, 그리고 디스코로 넘어가는 변화무쌍한 격변의 시대였다.

칠십년대 중후반 풀밭에서 야전 틀어놓고 까까머리에 삐딱하게 얹힌 교모에 교련복 차림으로 발바닥 비비며 먼지 피워올리던 촌놈들이 드디어 수출 백억불 대망의 팔십년대가 되자 현란한 조명과 귀청 떨어지는 음향을 갖춘 고고장, 속칭 닭장에서 디스코를 추기 시작했다. 

그시절 최고의 포터블 오디오. 야외전축. 줄여서 야전.


지금 시각으로 보면 도찐개찐 촌티 흐르기는 매한가지지만 그 때 야전과 닭장 디스코의 차이는 컸다.

존 트레볼타의 '토요일밤의 열기'라는 영화로 닭장 디스코의 열기는 그 정점을 찍는다.

당시 유명했던 고고장을 언듯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보면 동대문 이스턴 호텔 뒤 마부, 광교에 코파카바나, 이태원에 라이브러리, 영등포 ABC, 무교동 바덴바덴, 신촌에 우산속, 명동 마이하우스 그리고 강남 어디께 팽고팽고 등등이 떠오른다. 특히 이태원에 갈 때에는 집에다 도서관 간다고 말하고 가도 되어 좋았다.

80년대 디스코장. 출처미상의 이 사진에는 뜬금없이 사람들의 눈을 범죄자처럼 다 가려놓았다.


나는 몸치인데다가 닭장에서 손가락 찌르기를 시도하다 몇몇 친구들의 입술을 터뜨리는 사고를 친 이후로 닭장가는것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엌!! 하면서 입을 감싸쥐는 친구 손 밑으로 피가 한줄기... 우연히 싸이키 조명까지 받으면 영낙없이 천둥번개 밑의 귀신이었다.

여담이지만 반대로 닭장에서 내가 피해를 입은 적도 있다. 안경을 쓰고 열심히 발바닥 미장질을 하고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안경을 쳐서 떨어뜨렸으니 안그래도 발디딜틈 없는 플로어에 떨어진 안경은 곧 백만대군의 말발굽에 밟히듯 무수히 짓밟혀 박살이 나고 말았다.

헌데 가해자는 의외로 아리따운 아가씨였는데 이 아가씨가 지갑에서 천원짜리 몇장을 꺼내 건네는 것이었다. 뭐 그깟 낡은 안경이 얼마나 한다고 뭐 그걸 돈을 받나 싶어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같이 인자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더니 얼굴이 잔뜩 찌그러지면서 이번에는 무려 만원짜리를 꺼내 주는 것이었다.

아마 돈 필요없다는 제스쳐를 액수가 적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나본데 그 여자가 얼마나 밥맛이 없었을까 상상이 된다. 허나 만원짜리 앞에서도 동일하게 사양을 하고 있어야 하는 내 손은 만원 이라는 액수앞에 비굴하게도 저절로 그걸 덥썩 받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그걸 사양했으면 그 아가씨와 어찌 잘 되었을런지 어쩔런지 모르겠지만 일단 받은 돈은 닭장에서 나와 친구들과 막걸리값으로 요긴하게 쓰였으니 어쨌든 나의 낡은 안경은 그 마지막을 헛되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술이라도 한잔 할라치면 꼭 나오는 여자 이야기, 즉 아무개 친구의 선배의 친구 누구는 닭장에 가서 여자들을 꼬셔서 잘 되었더라는 전혀 확인도 안되고 확인 할 수도 없는 소문에 낚여서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들과 어울려 가게 되는게 탈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운동하러 간다 생각하고 가면 속이나 편하지.

디스코의 상징 토요일밤의 열기 - 존 트레볼타.


어쨋거나 음악은 닭장 안을 뒤흔들듯이 울린다.


닥터 닥터 김미더 뉴스 아가더
뱃 케이스 업 러어빙 유

Doctor, doctor, gimme the news
I got a bad case of lovin' you


이런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땀을 뻘뻘 흘리며 특히 닥터 닥터 부분을 같이 합창하는 호기를 부리던 친구들은 갑자기 조명이 확 죽으면서 끈적한 음악이 바뀌는 부르스타임이 오면 멋적게 테이블 자리로 털레털레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는데 얼마 안 남은 기본 맥주를 아끼고 아껴 홀짝거리며 플로어에 몸을 밀착시킨 채 빙글빙글 도는 커플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요령좋은 친구들은 여자들끼리 놀러온 그룹에 스리슬쩍 끼여들어 같이 춤을 추다가 부르스타임이 오면 테이블로 돌아가는 여자들을 확 나꾸어채서 잘도 부르스를 성공시키곤 했는데 어쩌면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그 간단하게 보이는 걸 단 한번도 성공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부르스를 매몰차게 거절하는 여자아이들을 보면서 닭장오면서 드럽게 요조숙녀인척 내숭떤다고 우리끼리 투덜거렸지만 정작 그 때 그 자리, 우리들의 잠바때기나 걸친 꾀죄죄한 옷차림과 냄새나는 부스스한 장발머리 그리고 테이블에 올라있는 것이라곤 꼴랑 기본맥주뿐인 촌티가 줄줄 흐르는 놈들에게 여자들이 호감을 갖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니 백고불여일블 이라하나 막상 백고가 아닌 천고가 지나도록 일블 한번 땡겨보지 못한 우리들은 힘들고 지치면 닭장을 나와 부르스 대신 막걸리나 한사발 땡긴 후 찬 새벽바람을 맞으며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고 귀가를 하곤 했던 것이었다.

 

'옛날 글과 사진 > 한국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그리 부아가 났소?  (0) 2024.02.17
영화 건축학 개론 감상평  (0) 2024.02.13
기사식당  (0) 2024.02.12
빛바랜 추억  (0) 2024.02.12
워낭소리  (0) 202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