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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식당 본문
20100219
2010년 2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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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식당은 말 그대로 기사들이 들러서 밥먹고 가는 식당이다.
종업원이 빨간 불이 번쩍거리는 경광등을 들고 마치 교통정리하는 사람이 차량유도를 하듯이 호객을 하면, 얼떨결에 속아서 주차장으로 들어온 운전수들은 귀신에 홀렸다는 듯 허탈한 웃음과 함께 엎어진김에 쉬어간다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속았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여직껏 듣도 보도 못했으니 얍삽한 상술도 푸짐한 기사식당의 인심에는 녹아버리는 것일까.
그러나 음식 메뉴갖고 얍삽한 꼼수를 부리다가는 단박에 망하는 곳이 바로 기사식당이라 한다. 기사들은 마음에 안 들면 어디든 다른 식당으로 갈 수 있는 자동차를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객지에 가서 밥먹을 곳이 마땅치 않으면 무작정 택시를 타고 맛있는 집에 가자고 하면 해결이 된다고 한다. 객지에 나와 식당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 사람의 뱃속 사정은 하루 온종일 사납금을 위해 뛰어야 하는 기사의 그것과 동병상련의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만약 당신이 맛을 찾아 방랑하는 우아한 미식가라면 택시기사가 데려다 주는 맛집에는 크게 실망할 것이다.
옛날에 살던 봉천동 동네에는 기사식당이 있었다. 봉천 사거리에서 얼마 멀지 않는 곳, 남부순환로 큰 길가 옆에 제법 넓직한 주차장을 갖춘 기사식당은 늘 택시들로 붐볐었다.
같은 과 친구이자 동네 친구와 함께 그 식당에 갔다.
잠깐 곁길로 새서 주변 풍경을 본다.
그 시절 봉천동에는 봉천시장 상권을 가로지르는 까치고개 언덕길 양 옆으로 주로 교회(!) 친구들과 많이 드나들던 음악다방, 생맥주집, 경양식집들이 즐비하게 있었고 그 뒤켠으로는 시장이 다 그렇듯 시장 입구 주변 골목으로 왕대포집, 곱창구이집, 대중식사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돼지 삶은냄새 가득 머금은 하얀 수증기가 뭉게뭉게 삐져나오던 그 나무 문짝, 그리고 문짝에 박혀있는 흐린 유리에는 빨간 페인트로 곱창, 돼지부속, 대중식사 라는 글씨가 써 있었는데 글자 받침에서 간혹 페인트가 아래로 주욱 흘러내린 모양이 더욱 시골 읍내 풍경을 돋구는 것이었다.
그 왕대포집과 곱창구이집에서 한동네에 살던 같은 과 친구와 만나 놀았으니 놀아도 참 촌스럽게 놀았던 것 같다. 동네 복덕방 영감도 아니고...
예상했겠지만 역시나 기사식당도 이 촌스러운 친구놈과 같이 갔던 것이다. 나는 돈까스를 시켰는데 값은 경양식집에서 시켜먹는 값의 2/3, 양은 두배였다. 맛도 제법 훌륭해서 아주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하이웨이 7 선상에 Keele st, Jane 사이에 남쪽으로 기사식당이 있다. 하이웨이 쎄븐에는 트레일러 트럭이 많이 다니는데 트럭이 많이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주로 트럭 기사들이 고객인것 같다. 식당 앞에도 트럭은 식당 뒤켠에 주차하세요 라는 팻말이 있어서 더욱 기사식당같은 느낌이 나고 이 식당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필시 장거리를 뛰는 운전수들을 위한 모텔도 있다.
간혹 캠핑이나 여행을 가면서 깡촌을 지날때면 시골동네 선술집이나 레스토랑을 보게 되는데 과연 이런곳도 한국 기사식당처럼 저렴한 가격과 충분한 양의 식사를 제공하는지 궁금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