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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한국에서

즐거운 우리집

민아네 2024. 2. 12. 17:33

20090908

2009년 9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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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분다. 코끝이 싸해지면서 생각의 조각들이 하나 둘 일어난다. 그 한조각을 집어들고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를 듣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나눕시다 명랑하게
일년은 삼백육십오일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어도
우리집은 언제나 웃으며 산다

<쿨 씨스터즈>가 부른 70년대 인기 라디오 드라마인 <즐거운 우리집> 의 주제가 가사다.

70년대에 활동했던 쿨 씨스터즈.


어렸을 때 신림동 양옥집에서 살던 시절, 아침 7시 50분이면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울려퍼졌고 그 배경으로 부엌에서 어머니의 도마소리와 함께 구수한 밥냄새가 기분좋게 나던 기억이 난다.

이 연속극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 이렇게 삼대가 함께 살면서 가족과 이웃간에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그린 가족드라마였다.

당시 우리집은 할머니가 계셨으므로 꼭 맞지는 않지만 얼추 비슷한 상황이었고 그것은 우리집 뿐 아니라 당시 한국의 보통 가족들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라디오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따라 가볍게 흥얼거리며 우리 가족의 아침상을 준비 하곤 했었다.

잠이 덜깨어 비몽사몽간에 아침을 먹으면서도 귀는 열어두고 이 아침 드라마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집에 있던 전축과 비슷한 장전축.


다음으로 생각나는 노래는 <비둘기 집> 이다.

비둘기 처럼 다정한 사람들 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비둘기 처럼 다정한 사람들 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이 노래 또한 라디오에서 무척 자주 나왔던 노래라, 노래의 명랑한 분위기나 가수의 음성, 곡조등이 또렷하게 생각난다.

추억의 옛날 라디오.


이 노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 합창 경연대회의 지정곡으로 채택된 이후 KBS 라디오의 건전가요부르기 공개방송 <삼천만의 합창>의 시그널로 선정되면서 그야말로 국민가요가 되었다.

훗날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이석> 이라는 고종황제의 직계손자라는 사실과, 노랫말과 달리 그의 순탄치 못했던 일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뒷얘기에도 불구하고, 지금와서 음미해 보면 음악의 선율도 노랫말도 무척 예쁘고 아름다운 노래인것 같다.

어린 시절 우리집에는 웬만한 서랍장 크기의 제니스 라디오가 있었는데, 보통 이런 오디오를 <전축> 이라 불렀다.

쌀쌀한 날 아침에 우리 형제가 이불속에서 뭉기적 거리고 있으면 아버지는 드르륵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이 라디오 볼륨을 한껏 높힌다. 그 느낌,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싸늘하고 상쾌한 공기의 느낌과 아침의 소음, 밥냄새, 즐거운 우리집/ 비둘기집의 주제가 그리고 어머니의 도마소리.

눈으로 보고, 냄새 맡고, 온몸으로 느끼던 그때 그 행복한 시간들, 잠시 눈을 감고 생생하게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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