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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한국에서

워낭소리

민아네 2024. 2. 12. 18:10

200909

2009년 9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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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가 유명하다고 난리법썩이어서 도저히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만 보고 말았다. 

노인이 오랜 세월동안 기르며 같이 농사일을 해 온 소가 늙어서 죽었다. 더도 덜도 없는 영화의 스토리다. 담백하다. 시골 초가집 툇마루에서 토장국에 보리밥 먹고 난 기분이다.

 

영화 워낭소리의 한장면.



문득 아니, 이것은 동물학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40살이 다 된, 수명을 넘겨도 한참을 넘긴 소. 노쇠해서 걸음조차도 비틀거리는 소를 짐수레 끌기, 농사일, 심지어 자가용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것은 동물학대가 아니다. 노인은 동물학대라는 말도 모를 것이다. 그저 옛날부터 그렇게 해 왔을 뿐이다.

옛날부터 해 오던 일을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동물학대니 뭐니 왈가왈부 하는것도 우습다. 시골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동물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다. 즉 동물을 보는 의미가 다른것이다.

먼저, 농부에게 소는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 보았다.
농촌에서 소는 생존의 도구이며, 반려자이고, 재산이기도 하다.

늙은 소를 바라보며 한숨짓는 노인의 심정은 오랫동안 타고나녀 정들었던 고물 승용차를 바라보는 도시사람의 심정이 조금은 섞여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제는 노쇠하여 병들은 오랜 친구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도 틀림없이 있을것이다. 이 점은 자신의 고물 승용차를 바라보는 도시사람도 마찬가지리라.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농부가 소에게 쏟는 애정이 도시사람들이 애완동물에게 하는 것과 같이 살갑지 않다 해서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그것은 질타의 대상은 더욱 아니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노인의 심정은 도시사람들이 강아지같은 애완동물에게 가지는 감정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것이다. 소를 보니 엉덩이와 다리에는 쇠똥이 까맣게 엉겨있고 눈에는 백내장이 있으며 다리는 절룩거리고 건강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 소를 노인은 매일같이 끌고나가 밭일을 시킨다. 노인 역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의 몸으로 농사일을 한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예전에 소가 밭일을 한다면, 일의 주체는 "소"고 "사람"은 소를 부리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소와 사람의 분업과 협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소와 사람이 일을 나가면 소만 하루 온종일 죽어라 일을 하는게 아니고, 파종이나 김매기 등등 사람의 손이 필요한 노동을 할 경우에는 사람은 밭을 기다시피 하면서 힘든 일을 하는 동안에 소는 나무그늘에 앉아 편하게 풀이나 씹고 있는 것이다.

밭갈기나 논 평탄작업같은 큰 힘이 필요할 때는 소가 동원된다.

노인은 농사에 기계를 쓰지 않는다. 농약도 쓰지 않는다. 일일히 손으로 잡초를 뽑고 호미질을 한다. 소 여물은 사료를 쓰지 않고 새벽같이 일어나 쇠죽을 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노인의 자연에 대한 사랑? 자연보호? 사랑하는 소에게 자연식? 등등 입방아를 찧지만, 그것 역시 노인의 오랜 습관일 뿐 여기에 도시사람의 눈으로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역시 별 의미가 없다.

노인은 수명이 다한 소는 조만간 팔아치울 작정으로 새 암소를 구입한다. 늙은 소를 데리고 소 시장에 가지만, 차마 팔지 못하고 일부러 터무니 없는 값을 불러서 거래를 망치고 집으로 다시 데려온다.

새로 구입한 암소는 트레이닝을 아직 시키지 않았는지 외양간에서 잘 먹고 노는데, 이 늙은 소가 수시로 노역에 동원이 된다.

농촌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다.

정든 늙은 소라도 팔아치우면 돈 백만원은 고단한 삶에 얼마간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소를 끝까지 팔지 않는다. 그리고 소가 죽자 장사를 지내준다. 장사라고 해 봐야 죽은 소를 트럭으로 싣고 가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서 묻어주고 얕으막한 봉분을 해 준것 뿐이다. 노인은 그 봉분위에 막걸리를 부어주며 오랜 친구를 추모한다.

보리밥에 토장국이면 충분하다. 그 외에 화려한 수사나 의미는 갖다 붙여봐야 군더더기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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