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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 부아가 났소? 본문
2006년 11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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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회사에서 하는 연수 프로그램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연수원에서 숙식하면서 하는 프로그램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연수 프로그램도 한 일주일 정도 먹고 자고 하면서 받는 연수였습니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간단한 단체 구보도 한 뒤 아침을 먹으러 갔지요.
길게 줄을 서서 식판에 아침밥을 담아 식탁에 앉았는데, 내 바로 맞은편에 다른 회사(물론 같은 계열사) 사람이 앉았습니다.
식판을 놓자마자 허겁지겁 밥을 먹는 나와는 달리, 식판을 앞에 놓고 고개를 숙이고 아주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도 교회를 다녔던 터라 식사기도도 없이 밥을 먹었으니 그 광경을 보면서 좀 양심에 찔리더군요.
그런데 이양반이 기도를 다 하고 나더니 갑자기 식판을 탁탁 치면서 "이런걸 사람 먹으라고 주나!" 하면서 투덜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양 볼이 불룩하게 밥을 쳐(!)먹고 있던 나는 얼마나 무안하던지 얼굴이 다 벌개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럼 이양반이 바로 앞에서 맛나게 밥먹고 있던 나는 사람이 먹을만한 음식이 못되는 그걸 그토록 맛나게 먹고있었으니 나는 사람이 아니면 뭐라는 말인지? (사실 내 입맛에는 너무 너무 맛있었거든요 T.T;;)
그리고 식사 기도라는것은 오늘도 먹거리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일텐데 기껏 감사를 하고 나서 갑자기 고작 이런걸 사람 먹으라고 주는거냐고 타박을 하다니 하나님이 다 헷갈리실 지경입니다.
여기에서 수많은 동양사람들 중에 한국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을 누군가로부터 들은적이 있습니다.
일본사람은 거의 안보이니 논외로 치고, 중국사람은 하도 안감아서 떡이 진 머리에 아무 생각이 없는 해맑은 얼굴, 한국사람은 얼굴이 벌써 찌부드드 하고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누군가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듯한 표정이라구요. 내가 한국사람이다 보니 나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회사생활 하면서 그렇게 표정관리를 하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됩니다. 일을 좀 열중해서 할라치면 항상 심각한 얼굴, 어디 아픈 얼굴이 되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얼굴만 그런게 아니라 때로는 마음도 화가 나 있을때가 문제겠지요.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상당히 많은 공격적인 글을 접하게 됩니다. 비단 인터넷 뿐만 아니라 실 생활에서도, 때로는 좋은 이야기들도 너무 심각하고 과격하게 흐르는 바람에 좋은 본 뜻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하긴, 요즘 세상에, 술에 술 탄듯 물에 물 탄듯 밋밋한 것 보다는 무엇이든 좀 더 짜릿하고 강한 것이 인기가 있는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지만, 이런 짜릿함이나, 강하다는 것은 난폭하다거나 화를 낸다는 것 하고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화가 나 있는 사람의 일상에 마주치는 모든 것은 온통 불만과 불평투성이일 것이 틀림 없습니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너그럽게 지나칠 일도 화를 벌컥 벌컥 내게 되고 아무리 좋은 그림과 글과 경치를 보아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부아가 치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칭찬이 나올 리가 없지요.
식사에 대한 감사기도를 정성스럽게 했다 한들, 그 음식이 사람이 먹을만한 음식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게 소화가 잘 될 리가 없겠지요. 그 피해는 당연하게도 고스란히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소화 불량으로 속이 쓰리고 배가 아프겠지요. 그러면 또 얼굴이 찌푸려지고, 화가 나고, 또다시 악순환의 시작입니다.
오늘부터라도 얼굴에 힘을 풀고, 아무생각 없는 행복한 표정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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