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Home

비누 본문

잡동사니 생각

비누

민아네 2012. 3. 25. 01:19

[다른곳에 썼던 글인데, 정작 내 홈페이지에는 없어서, 그런 글들을 모아서 올립니다.]


어린시절 차가운 겨울날 이불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나와 얼굴에 물이라도 묻힐라치면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야야, 사분 놔가가 깨끔시리 씻그레이~"

사분은 옛날사람들이 비누를 이르던 말이다. 허나 사분의 어원을 짚어보면 의외로 비누를 뜻하는 프랑스말인 사퐁(Savon)에서 유래된 말이다.

고려시대 청나라 서긍이라는 사람이 쓴 고려도경에는 고려사람들은 하루에도 목욕을 두번이나 하는 청결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풍속이 변했는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즈음에는 조선사람은 거의 목욕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의 학창시절, 마을 원로들이 상투틀고 지내는 경상도 깡촌출신인 내 친구의 증언인즉 고향 어른들의 목욕은 일년에 한두번 이루어지는 연중행사라 했으니 과히 틀린말은 아닌것 같다.

상류층에게도 목욕이란 과히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1887년 박정양이 고종의 명을 받고 초대 미국 공사로 미국에 부임하기 위해 가는 선상에서 안내를 맡은 선교사출신 어의 알렌은 이 전권대신 일행의 몸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와 선실을 더럽히는 비위생을 기록하고있다.

조선에 비누가 대중화 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이며 그 시절부터 일본제 '호시 미비누' '화왕 비누' 같은 비누광고가 나오면서 비누가 대중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비누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그 향기로운 물건을 몸을 씻는데 사용하는 것인지 몰라 먹어보기까지 했다.

당시 언론에서도 국민계몽 차원에서 비누에 대한 기사를 많이 실었다하니 아마 일제시대에 학교에서도 이런 위생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신문에 실린 호시 미 비누 광고>

 

나의 국민학교 시절에도 정기 위생검사날이 있었다.

학교에서 가정통신으로 정기위생검사를 알리면 아이들을 부모손 잡고 목욕탕에 끌려가서 등짝을 철썩철썩 맞아가며 때를 밀고 손톱도 깎이고 덤으로 졸음을 참아가며 이발까지 해야했다.

위생검사에 걸린 아이들은 따로 불려나가 창피를 당하는것도 모자라 치도곤 매를 맞고 다음날 재검사를 당해야 했다.

당시에는 그런 친구들을 보고 놀리며 웃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가 애들 위생같은 것은 신경을 못 쓸 정도로 빈한한 가정환경이었거나 심지어 근처 고아원에서 사는 아이도 있었으니 불쌍한 처지의 아이들이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 집단생활을 해야하는 특수상황에서 강제적인 위생검사는 필수였다.

지금은 목욕을 하지말라해도 하루 이틀지나면 목욕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시대가 되었으니 시대가 많이 변했다 할 것인데, 허나 나는 아직도 씻는게 여간 귀찮지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아직도 와이프는 수시로 날 보고 드럽다 냄새난다 하고 씻기는 싫고 오호라 지난사로다.

'잡동사니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등성명  (0) 2012.03.25
먼 옛날의 가슴 터질듯한 추억  (2) 2012.03.25
자박마니의 꿈  (0) 2012.03.25
귀가  (0) 2012.03.25
낭패  (0) 201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