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Home

자박마니의 꿈 본문

잡동사니 생각

자박마니의 꿈

민아네 2012. 3. 25. 01:18

 

[다른곳에 썼던 글인데, 정작 내 홈페이지에는 없어서, 그런 글들을 모아서 올립니다.]

 

자박마니는 금을 캐는 사람들이라는 순수한 한국말이다. '자박'은 우리말로 제련되지 않은 생금을 말하며 '마니'는 어떤 사물이나 일의 뒤에 붙여 그 일을 하는 사람이나 그 사물을 찾는 사람을 말한다. 비슷한 말로 인삼이나 산삼을 찾아 다니는 '심마니'를 들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막대한 전비를 지출한 강대국들은 늘어난 통화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금본위제를 실질적으로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29년 여름 일본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를 해결하고 절하된 엔화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금본위제를 부활을 시도하였다.

금본위제 시행은 초기에는 효과가 있어서 1929년 7월 43달러에 100엔 하던 엔화가 1930년 초에는 49.85달러에 100엔까지 가치가 올라가 14%의 절상효과를 내었다.

금본위제가 본격화 되면서 전국적으로 금광 개발 붐이 일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총독부는 금광 탐사에 탐광 보조금을 지급해가며 대대적으로 산금 장려정책을 펴서 금광 개발을 독려했다.

모든 사람들이 금광을 찾아 나섰으며 심지어 지식인들까지 곡괭이를 들고 금광으로 몰려들었다.

1939년 조선에서 생산된 금의 양이 31톤이나 되었으니 2004년 한국의 금 생산량 230킬로그램과 비교하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양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당시 조선(한국)은 가히 "동양의 엘도라도" 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조선에서 수탈해 간 금 덕분에 일본은 당시 손가락에 꼽는 금 생산국이 될 수 있었다.

캐나다의 광산회사 "아이반호"는 1995년 한국의 금광에 주목하여 한국 전역을 탐사, 2002년까지 금을 캐어 투자금을 회수하고 돌아갔다.

현재 한국의 금광은 전라남도 해남에 있는 은산광산이 유일하며 이는 캐나다 아이반호의 채굴권을 한국 회사가 인수한 것이다.

금광 탐사는 옛날처럼 곡괭이와 삽으로 탐사를 하는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첨단 탐사기술이 동원된다. 탐사기술과 채광기술의 발달, 그리고 최근의 경제위기에 따른 금값 폭등 덕분에 과거에는 금광석 1톤당 최소 13그램의
금이 있어야 채산성이 맞았으나 요즘은 1톤당 최소 6그램만 넘어도 채굴을 한다.

그러니 금맥이라 해도 번쩍거리는 금이 여기저기 박혀있는 것이 아니다.

돋보기를 들고 아무리 들여다 봐야 금가루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원광석을 제련과정을 거쳐 철, 은, 동 같은 금속과 함께 금을 뽑아내어 금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사에 행복한 순간은 금광석의 금처럼 그리 많이 않다. 아무리 돋보기를 들고 인생사를 들여다 봐야 행복한 시절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당장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우리 인생에 행복한 순간이 없는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틀림없이 일련의 제련과정을 통해 금을 쥐고 행복해 할것이다.

1톤의 금광석 안에 틀림없이 들어있는 6그램의 금은 1년을 가정했을 때 5분이 안되는 짧은 시간이다.

1년에 5분의 금과같이 행복한 시간만 있다면 1년이라는 시간은 살아갈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1년을 마무리 하는 요즈음, 5분의 행복을 찾는 자박마니의 희망을 생각해 본다.

수년전 써놓았던 글을 손질하여 올려보았습니다.

'잡동사니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 옛날의 가슴 터질듯한 추억  (2) 2012.03.25
비누  (0) 2012.03.25
귀가  (0) 2012.03.25
낭패  (0) 2012.03.25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일까?  (0) 201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