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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식 인도주의의 위선 본문
2001년 3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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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한국 비디오나 빌려볼까 해서 한국 식품점에 가 비디오를 빌려왔는데 "그것이 알고싶다"였다.
다른 비디오는 소제목이 다 있는데 이 ''그것이 알고싶다''는 소제목이 없어 "도데체 무엇이 알고싶은지" 비디오를 틀어보기 전에는 전혀 그 내용을 알수가 없게끔 되어있다. 이것도 하나의 상술인지도 모른다.
집에와서 틀어보니 달포전쯤에 여기까지 떠들썩하게 했던 이민특집이었다. 눈에익은 토론토 거리가 나오고 한국사람들 몇몇을 만나 인터뷰 한것도 나온다.
애들 사교육비가 엄청나 이민간다는 푸념, 공항에서 가족끼리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 애들 여기 학교생활 하는것, 세탁소하는 전직 대기업 과장 아저씨, 여기 큰 식품점 아저씨, 이민온지 몇달 안된다는 신참내기 아저씨.. 이민때문에 인생 망쳤다고 술취해서 혀꼬부라진 소리하는 아저씨.
여기에서 흔히들 볼수 있는 한국사람들 모습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주변을 돌아보면 행복하게 사는사람 불행하게 사는사람 잘나가는 사람 못나가는 사람 여러가지 형태의 인간군상이 있듯 여기도 또 그런 한국 사회의 축소판인것이다.
사실 한국의 생활이 너무 경쟁적이고 치열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아 보이는 외국 생활을 선호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도 엄연히 사람 사는곳이고 더우기 요즘들어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모여드는 대도시다 보니 느긋한 생활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이사실이다.
캐나다에서는 우선순위가 애들, 여자, 개, 그리고 남자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것이 애들이 우선이다. 환경도 애들 안전을 얼마나 따지는지.. 사실 이 안전의 측면에서는 나 자신에게도 좋은데 한국에 있을때 애들 안전에 유난히 신경을 쓰다보니 다른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듣는 경우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내가 신경쓰던 부분이 자연스럽게
지켜지고 있었고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공간이 많으니 애들이 안전하게 지낼수 있는 공간이 많아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숨지는 애들이 년간 70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경악한 적이 있었고 실제로 공사가 한창이었던 정릉 고가도로 밑을 지나다 보면 위험 천만한 공사 자재들 틈을 비집고 매연을 뒤집어쓰고 놀고있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수 있었다.
옛날에는 그냥 애들을 ''놓아 기른다''는 말이 있듯이 밥만 먹여서 밖에 내 놓으면 들로 산으로 친구들과 뛰어 다니며 종일 놀다가 밥때 되면 알아서 들어과 밥먹고 놀던 그 시절에 비해 모든것이 풍족하고 발전되고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천만에 말씀 애들이 놀수 있는 환경은 더욱 위험천만 해지고 더럽기가 이루 말할수 없이 되었다.
나의 어린시절만 해도 동네 친구들과 동네 야산에 올라가 놀기도 하고 집앞 개울가에 그당시만 해도 물이 많이 더러워져 수영은 꿈도 꾸지 못했었지만 그래도 바지 걷어부치고 들어가 송사리 개구리도 뒤지고 물장난도 하면서 놀던 기억이 있다.
서울의 우리집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그나마 넓은 운동장이 있어 다행이었다) 한번은 일부러 그 운동장의 흙을 손으로 쓸어 보았는데 금세 손이 숯처럼 새까맣게 변하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흙장난을 해도 흙의 브라운 색만이 묻을 뿐이었지만 요즘의 흙은 흙 성분이 아닌 공해에 찌들대로 찌든 공해물질에 가까운것이라는 뜻이다.
여기 애들 공원 숲속을 뛰어다니면서 꺅꺅 소리질러가면서 노는것을 보면 정말 애들은 저렇게 놀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비싼 게임기나 컴퓨터같은것도 좋지만 애들은 애들답게 날씨가 추워도 손이 트고 볼따구니 빨개지도록 저렇게 노는게 보기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것 같다. 실제로 여기 의사들은 애들 감기가 좀 가벼우면 쥬스나 왕창 마시고 그냥 나가서 놀으라고 한다.
며칠전에 생후 1년된 애기가 이 혹한에 열린 문틈으로 밖으로 기어나가 꽁꽁 얼어붙은 채로 발견되었다. 사고 추정시간은 4시간. 당연히 애 엄마아빠는 정신이 나갔겠지.. 뭐 911을 부르고 난리를 쳤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애가 심장도 완전히 멈추고 의학적으로 사망햇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그것도 발에 약간의 동상만이 있을뿐 멀쩡한채로.. 이 애기에게 온 캐나다 전국의 관심이 집중이 되어있다. 어떤 할머니는 소나무에서 채취한 특수 수액을 들고와서 애 동상을 치료하는 비법을 가르쳐 주고 가기도 했단다.
그런데 좀 씁쓸한것은 이 사건이 있기 일주일전쯤에 스리랑카 출신 이민자 가족의 돌지난 애가 아파서 911을 불렀는데 이놈의 긴급출동반이 미적거리는 바람에 애기가 죽은 사건이 있었다. 즉 그애 엄마는 간호사 출신이었는데 애가 심상치가 않자 앰뷸런스를 불렀는데 구조대가 아파트에 와 보니 애가 좀 칭얼댈뿐 잘 기어다니고 말도 하고 있으니까 짜증을 내면서 자신들이 그냥 돌아가도 된다는 서류에 서명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구조대를 부른 사람의 동의 없이는 그냥 돌아갈수 없게 되어있다)
애가 몸이 않좋았으니까 당연히 낮에 병원에 갔다오고 약도 지어 먹이고 했을텐데 구조대 녀석들은 그저 애가 약을 먹어 몸이 노곤해 칭얼댈 뿐이라며 제대로 진단도 안해보고 애 부모에게 철수 동의서류를 불쑥 내밀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애 부모는 그게 무슨 서류인지도 모르고 서명을 했다.
구조대가 돌아간후 애기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자 다시 구조대를 불렀는데 다시 출동한 구조대가 이번에는 짜증까지 냈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상황이 악화될대로 악화된 상태여서 병원 도착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애기는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이삼일을 두고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었고 경찰에서는 이 구조대원들을 엄벌에 처하겠다고 했고 더우기 만에 하나 인종차별적인 의도가 있었는지 정밀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그런다고 떠나간 애가 살아 돌아올리도 없고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 이 부모의 부주의로 동사할뻔한 백인 애기가 극적으로 살아난 사건은 정말 다행이긴 하지만, 이 단순사고를 며칠씩 신문지면에 대문짝만한 칼라사진과 함께 반복해서 보도하고 있는 반면에, 그 스리랑카 이민자 가족의 숨진 애기 사건은 큰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슬며시 사라지고 있어 서양식 인도주의의 위선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