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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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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네 2024. 2. 20. 21:52

2002년 7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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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방송에서 한국 가족에 관한 다큐를 방송했다.

아버지는 68년에 이민을 온(유학생으로 온 듯함) 전통적인 한국식 가장이고 역시 걱정많고 사랑많은 전형적인 한국 엄마 스타일의 아내 사이에 딸이 셋이다. 

 

큰딸은 25살, 칼리지를 졸업하고 치기공사로 일을 하고있고 둘째는 의사를 지망하는 의대생, 세째는 금년에 대학을 들어가는 고등학생이다.

 

대부분의 한국 가정이 그렇듯이 이 가족의 주 수입원도 코너스토어이다.

 

즉 한국식의 버라이어티 라고 하는 잡화점을 경영하고 있는것이다. 조그만 집을 소유하고 있고 가끔씩 한국사람 친구들과 골프를 치거나 회식 혹은 가라오케 바(단란주점)에 가서 노는것을 즐긴다. 

 

캐나다에서 출생하고 자라온 것을 감안 하더라도 딸 셋이 모두 어쩌면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한다. 

 

이 부부는 결혼할 나이가 된 큰딸에 대해 역시 여느 부모처럼 걱정이 태산이다. 딸 셋을 앉혀놓고 엄마와 딸들이 대화를 하지만 대화는 겉돌뿐이다. 이민을 온지가 3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영어는 거의 초보수준이고 그나마 엄마의 영어가 좀 낫다.

 

워낙에 자상한 말한마디 없는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에다가 영어까지 잘 안되니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딸들에게 하는 말은 한국말로 고함치면서 야단을 치는것 뿐이다.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은 딸들에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혐오스럽기만 하다.

 

기자의 질문에 대한 아버지의 답이다.

 

- 한국 아버지들은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항상 염려하고 관심을 가지긴 하지만 마음속으로 할 뿐이지 드러내질 않지요.

잠시 한국 비디오 화면, 한 할머니역의 연기자가 큰소리를 친다.

"아 여자가 집안에 들어앉아 애 낳고 살림해야 좋은거지!"

대사는 고스란히 영어로 번역되어 자막으로 나온다.

 

아버지는 큰딸을 너무 오냐오냐 하면서 키웠기 때문에 애를 망쳤다고 한숨을 쉰다.

 

-  큰애를 낳고 너무 귀여운 나머지 한번도 야단을 안친것이 저렇게 되었어요. 반면에 둘째는 뭐가 옳고 그른지 아는 애입니다. 둘째는 내가 원했던 대로 의대에 진학했어요.

큰딸의 항변.
-  나는 95% 캐나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 피부색 머리카락 색 그런것 말고는 캐나다 사람인데 왜 한국식을 강요하는지 모르겠어요.

 

엄마의 이야기는 간절하게 계속된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지 고생을 해 왔는지 큰딸의 주장은 내가 왜 한국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지 왜 결혼전에 집을 나가 살면(독립해서) 안되는지 저녁 8시에 나가 남자친구를 만나고 새벽에 들어오면 왜 안되는지 (나도 성인인데)

 

-  밤중에 밖에서 남자친구하고 단둘이 있는다면 너는 여자니까 모르겠지만 남자들의 생각은 너와 좀 틀리단다. 너는 모를거야.

 

눈을 크게 뜨고 화가 난 큰딸의 항변이다.

-  나도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쯤은 안다구.

큰 딸은 지금 사귀는 백인 남자친구가 왜 마음에 안드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  좋아. 백인하고 결혼해도 된다고 쳐. 하지만 너희 셋 모두 다 백인하고 결혼하는 것은 용납못해.(한국사람하고 결혼해야 한다는 뜻) 왜냐하면, 백인들은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고 너무 쉽게 결혼하고 너무 쉽게 이혼을 해. 그게 백인들이야.

 

어이없다는 듯 폭소를 터뜨리는 딸들.

 

큰딸이 가게로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다.
남자친구를 소개하고 싶어하는데 엄마는 난감한 표정이다.

 

-  뭐? 남자친구가 인사를 하러 와? 지금?
-  왜? 그냥 들어와서 하이~ 하면 되는거잖아?

 

큰딸의 말에 엄마는 화가 치밀다 못해 차라리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다.

 

-  그래, 해봐라, 해봐,

 

엄마의 대꾸가 영 못마땅한 딸.

 

남자친구는 한눈에 봐도 성실한 생활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 여자친구 부모를 만나러 오면서 빈손으로, 더러운 진 바지, 조끼에다가 귀걸이를 하고 히죽거리며 건들거리며 들어온다.

 

-  너는 부모의 마음을 몰라. 너희들이 시집가서 애 낳고 길러봐야 알거야.

 

결국 눈물을 찍어내는 큰딸.

 

아버지는 코너스토어를 자식들에게 대물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 같다.


-  구멍가게를 애들에게 물려줄수는 없지요. 구멍가게는 내 세대로서 끝낼겁니다. 자식들은 더 나은 직업을 가져야지요.

 

다시 골프장 풍경. 여남은 명의 초로의 한국 남자들이 골프를 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  한국에서는 55세에 은퇴야. 근데 내가 지금 55세가 다 되었는데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은퇴를 하나. 일해야지.

이민 1세대 부모와 2세, 영어만을 할줄 아는 딸들과 영어 반 한국말 반 섞어서 하는부모의 대화는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였고 위태롭기까지 했다. 한국의 정서를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딸들. 반대로 한국적인 정서에 완고하리만치 집착하는 아버지. 그 중간에서 줄타기를 하듯 위태로운 중재를 하는 어머니.

 

반면에 밤늦게 남자하고 만나 새벽까지 술집이나 댄스파티장에 다니는 것이 캐나다식 관점으로 봐도 결코 건전하거나 옳은것이 아님에도 그것을 독립적인 성인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딸. 

 

그리고 남자친구도 여자친구 부모에게 인사하러 오는 마당에 귀걸이를 하고 결코 점잖치 못한 청바지 청 조끼를 입고 단정하다고 할수 없는 몰골로 히죽 히죽 웃으며 나타나는 것도 "캐나다 식" 사고방식으로도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일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딸.. 

 

단순히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으로 치부하기에는 부모 자식간의 골이 너무 깊어 보였다.

 

이민 3년차.
나름대로 딸을 키우면서 한국적인 전통, 특히 한글 읽고 쓰기 그리고 말하기에 신경을 쓰지만 자꾸만 맞춤법이 틀려가는 딸아이를 보면서 정말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가족드라마 "킴스 컨비니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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