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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2002년 월드컵

민아네 2024. 2. 20. 21:13

2002년 6월에 썼던 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셨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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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열기는 여기에서도 굉장히 뜨겁습니다.
단지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한국을 응원하는데 반해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이곳은 출신 나라별로 각자의 팀을 응원하는것이 다르겠지요.

 

얼마 전에 있었던 미국과의 게임은 새벽 2시 반에 시작하는 바람에 거의 밤을 새고 회사에 갔었습니다.

 

지난 14일 한국 폴투갈 게임이 있던날은 정말 굉장했습니다. 한국시간 오후 8시 반이었으니 여기 시간으로는 같은날 오전 7시 반이 경기 시작시간 이었지요.

 

어쨋든 나는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거의 모든 한국사람들이 그날만큼은 게임을 다 보고 출근을 했다고 합니다. 회사에는 폴랜드 출신 아저씨가 있는데 이사람이 계속 전화로 중계를 해 주어서 스코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폴란드가 미국과의 시합에서 졌다면 그런 서비스는 없었겠지요.

한인회관에 모여 한국팀을 응원하는 사람들. 캐나다 한국일보.

 

한인회관에서는 대강당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각종 음료수, 간단한 아침식사를 제공하며 한국사람들이 같이 모여 경기를 보며 응원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경기 시작은 일곱시 반인데 새벽 다섯시 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 여섯시 반에는 강당이 꽉 찼다고 합니다.

 

그날 그곳에 거의 천명이나 모였다니 그 열기를 알만하지요. 아버지와 민아엄마도 그곳에 갔었거든요. 첫골이 들어가자 민아엄마는 너무 기쁜 나머지 의자에 올라가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답니다. 물론 민아엄마만 그런것이 아니지요.

 

양복에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어떤 아저씨는 경기 중반까지 팔짱을 낀 채로,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이 응원을 하건 말건 점잖게 관전을 하다가, 잠시 사라진 후 빨간 티셔츠로 갈아입고 다시 나타나더니 그 이후로는 완전히 미쳐서 응원을 하더라는군요.

 

그날 블루어에 있는 코리아 타운에서는 굉장한 거리축제가 벌어졌지요. 아마 한국은 이곳의 몇배의 열기였을 것입니다. 인터넷 신문을 보니 그 열기를 짐작하고도 남겠더군요. 거리에 나온 사람이 200만이었다니 말 다했지요. 이곳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무슨 혁명이 일어난것 같아요.

 

모처럼 차에 달고 다니는 태극기를 하나 샀습니다. 오늘 출근길에 태극기를 달고서 하이웨이를 달리니 기분이 좋군요. 고속으로 달리면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가 파다다다다~~~ 하고 들립니다. 요즘 길에는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 차들을 많이 봅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의 사기가 올라갔다고 할수 있지요. 그런 면에서 월드컵이란 것이 단순히 축구 경기에서의 승부가 아닌 무형의 효과도 대단히 크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아줌마는 미니밴에다가 대형 태극기를 달고 펄럭이면서 달리더군요.

 

내일 이태리하고의 게임이 있습니다.
역시 아침 7시 반인데요, 이태리 거리에서 가게를 하는 어떤 한국사람은 한국이 이기면 나 장사 때려친다고 공언을 했답니다. 이태리 사람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화끈하고 다혈질입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자국의 무슨 행사가 있거나 하면 너무나 티를 낸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한국사람들 눈에는 좀 안좋게 말해서 "눈꼴이 시어서 못보는" 행동을 많이 합니다.

 

아무튼 그때문만은 아니지만 이번 이태리와의 게임에서는 반드시 이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번에도 한인회관에서 난리법썩이 나겠군요.

 

그런데, 폴랜드는 이태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것 같네요. 폴랜드 아저씨는 이태리는 집으로 가야 한다면서 꼭 한국이 이겨야 한다고 하는군요. 나하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주먹을 공중으로 뻗으며 "코리아! 코리아!" 하면서 응원하는 시늉을 합니다. 이곳 방송에서는 경기에 졌다는 표현을 집에 간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 팀은 집으로 가고, 폴랜드도 집으로 갑니다. 이런 식이지요.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 바람에 조심해서 운전하느라고 신경을 씁니다. 가급적 양보도 많이 해주고, 점잖게, 안전하게 운전을 합니다. 최소한 이태리 국기 달고 다니는 자동차들 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리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

 

오늘은 이태리와의 게임이 있는 날입니다.
여기 시간으로 아침 일곱시 반에 경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미리 회사에는 늦는다고 얘기를 해 두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게임이기 때문에 꼭 보고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일찍 출발해서 여섯시에 한인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더군요.

 

역시 이번에도 아침을 거르고 오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한국식당에서 무료 닭죽을 준비해 놓았더군요. 그뿐 아니라 어떤 사람은 생수를 기증했고 어떤 사람은 캔디등 간식거리, 그리고 주차장 공간이 부족하자 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까운 공원 주차장까지 너도나도 셔틀버스 봉사를 하는등 정말 서로 자발적으로 나서는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제 새로 산 태극기를 차에다가 달고 퇴근길에 신나게 달리는데 휙 하더니 무엇인가가 뒤로 날아가는 것이 보여서 확인해보니 글쎄 태극기가 날아가 버렸더군요. 깃대봉 끝에 마개가 있는데 그것이 날아가고 태극기도 바람을 못 견디로 날아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같이 타고가던 크리스는 태극기를 단 다른 차량에게 손을 흔드느라고 바빴는데 그만 태극기가 날아가는 바람에 김이 새버렸습니다.

 

퇴근하고 그 길로 한국 마켓으로 가서 태극기를 새로 사서 달았습니다. 혹시나 안좋은 징조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더욱 그랬던것 같습니다.

 

경기 중계는 역시 한인회관 대강당에 폭 4미터 높이 2.5미터 정도 되는 대형 스크린을 준비했고 사람들은 실제 경기장에 있는 것처럼 대부분 빨간 티셔츠를 입고 열렬히 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역시 빨간 티셔츠를 입고 갔지요.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있어 황금같은 패널티 킥 찬스를 놓지자 좀 불길한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가 한 골을 잃었습니다. 좀 힘이 빠졌지만 열심히 응원을 했습니다. 한인회관 안은 응원단의 열기로 찜통같이 더웠지만 응원의 열기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더군요.


경기가 다 끝나가도록 승산이 보이지 않자 더위를 못 견딘 아버지가 로비에서 기다리시겠다고 먼저 나가셨습니다. 나도 이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16강이 어디냐 한국팀 잘했다"는 생각으로 주섬주섬 갖고간 신문지등을 챙기는데 바로 그순간 동점골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 큰 한인회관 강당이 날아가는줄 알았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허겁지겁 다시 들어오셨지요. 로비에도 대형 프로젝션 TV가 있기 때문에 동점골 장면은 보셨다고 합니다.

 

곧이어 연장전이 시작되고 역시나 다 아는것처럼 경기종료 불과 2분전에 역전골이 터지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한인회관이 떠나가라 열광을 했습니다. 저 역시 정말 감격스럽더라구요.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빨간티를 그대로 입고갈까 하다가 같은 부서에 이태리 사람들이 있는데 충격줄까봐 참았습니다) 새로 산 태극기를 차에다 달고 기분좋게 출근길을 나섰습니다.

 

주택가를 서행하다 보니 마주오는 차들이 태극기를 보더니 경적을 가볍게 울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서 축하를 해 주는군요.

 

출근을 하고나서 축하받고 악수 하느라 바빴습니다. 단지 이태리 사람은 조용하네요. 나도 가급적 이태리 사람 앞에서는 축구얘기를 자제했지요.

 

그런데, 같은 부서에 중국 아저씨가 있는데 그 양반하고 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양반이 축구얘기를 하는겁니다. 그양반 옆 복도 건너자리가 이태리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맞장구를 쳐주면서 얘기를 할수 밖에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중국 아저씨 왈 안정환이 이태리 프로팀에서 뛰고 있는데 안정환이 월드컵 끝나고 이태리에 가면 맞아 죽겠다고 농담을 했습니다.

 

그 농담을 하자마자 갑자기 복도건너 이태리 아저씨가 펄쩍뛰면서 흥분을 하더군요.

 

"아 죽이긴 누가 누굴 죽여!"

 

그 분은 나이도 많고(은퇴할때가 다 되었음) 평소에 정말 조용조용한 사람이었는데 왁 하고 화를 내는 바람에 정말 놀랐습니다. 아마 그 농담이 이태리 사람을 비꼬는 듯한 얘기로 들렸나봅니다. 물론 중국 아저씨가 능글능글한 농담으로 위기는 넘겼는데 그렇게 갑자기 흥분하고 나서 좀 미안했는지 옛날에 북한이 이태리에게 이겼을때 얘기를 하더군요. 그때 이태리 선수들은 귀국하자마자 토마토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군요. 아마 이번에도 토마토일 것이다. 이게 결론이었습니다.

 

저녁에 집에와서 TV 녹화방송으로 또 한번 경기를 보고, 크리스하고 한잔 하고, 뉴스를 보는데 완전히 톱 뉴스입니다.

 

민아엄마는 사무실이 다운타운인데 오늘 한국사람들이 완전히 큰 길을 점령하고 퍼레이드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민아엄마도 나와서 같이 걸었다고 합니다.

 

반대로 이태리 거리 표정을 보여주는데 어떤 조그만 바에서 사람들이 테레비 보는 장면을 보여주네요. 경기 종료 몇분을 남기고 역전골이 들어가자 에이 XX 하는 표정으로 확 나가버리는 사람, 엎드려서 얼굴을 파묻는 사람,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자들, 아무튼 너무너무 실망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민아 학교에서는 같은반에 이태리 애 하나가 축구 패배소식을 듣고 울었다는군요.  

 

회사 사람들의 중론은, 이태리가 첫 골을 넣고나서 한국은 쉬운 상대라는 자만심으로 슬슬 방어만 하다가 된통 당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국 선수들의 악착같은 투지와 한국 경기장에 온 수만명의 사람들, 그리고 거리의 몇십만의 사람들이 똑같이 빨간 셔츠를 입고 일사불란하게 응원을 하는것이 굉장히 인상깊었다고 합니다. 개인을 중시하는 서구적인 사고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재미있는것은 폴랜드, 로마니아 등등 유럽출신 사람들은 이태리가 졌다는것을 내심 고소하게 생각하는것 같았습니다. 말로 떠들긴 뭣하니까 이메일로 왔다갔다 했는데 한국이 이겨서 정말 기분 좋다면서 꼭 결승까지 갈것이라고 하는군요. 이태리 사람이나 이런저런 형태로 이태리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그냥 조용하게 찌그러져 하루를 지냈습니다. 거리에 그렇게 많던 이태리 국기를 단 차량이 갑자기 다 사라졌습니다.

 

정말 굉장한 하루였습니다.
이번 토요일날 스페인과 시합인데 이곳 시간으로 새벽 두시라고 합니다. 그날 또 한인회관에 가야지요.


드디어 스페인과의 4강전이 있는 날입니다.
게임 시작 시간이 토요일 오전 2시 반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잠을 자 두려고 했습니다만 비가 오려는지 날이 후덥지근한데다가 기대가 되니 잠이 잘 안 오는군요.

 

조금 잠을 자고 12시에 아버지와 같이 한인회관으로 갔습니다. 자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경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두시간 반이나 더 있어야 하는데, 주차자리가 없는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앉을 자리는 물론이고 복도, 강당 바닥을 막론하고 어디 발디딜 틈조차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자원봉사자가 하는말이 열한시에 주차자리와 강당이 꽉 찼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차량정리 인원정리를 하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었습니다만 누구하나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강당 안은 사람들의 열기로 너무나 더워서 잠시 있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도저히 경기를 볼수 있을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시간은 새벽 한시. 실례를 무릅쓰고 세린이네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물론 지금쯤 축구를 보기 위해서 깨어있을 것이다라는 가정을 했었지요. 축구경기는 같이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화를 하니까 웬걸요 벌써 그 집에서 다른 가족 몇 가족이 같이 모여 축구를 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편한 마음으로 끼어서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전후반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기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고, 결국은 승부차기로 이겼는데 그순간 그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며 축하를 했지요. 기념 사진도 찍었구요.

 

그집 주인장이 어릴때 이민온 1.5세인데 요즈음과 같이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부각이 되어 신바람이 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새벽에(아마 다섯시쯤 되었을 겁니다) 한인타운으로 갔습니다. 저는 회사일 때문에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가야했기 때문에 한인 타운에는 가지 못했는데요, 그날 한인타운은 정말 대단했다고
합니다.

 

한국인과 터키사람들이 뒤섞여서 정말 대단한 축제를 벌였다고 하는군요. 주요 일간지, 뉴스 할것없이 한국의 승리가 톱 뉴스입니다.

 

일부 판정시비가 있긴 했지만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벌써 어떤 사람이 사진을 여러장 찍어서 조목조목 판정에 이상이 없다는것을 밝혀 놓았더군요. 정말 이렇게 기분이 좋을수가 없네요.

 

그날 회사에 갔더니 회사에 나온 몇몇 사람들도 축하한다면서 악수를 청합니다. 회사에는 한국사람이 나 혼자이고 또 나는 다른사람에 비해 조용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나하고 별로 얘기도 안해본 사람도 내가 한국 사람인지 다 알고 있더라구요.

 

아마 한국팀이 승승장구를 하니까 자연히 우리회사에 한국사람이 있나 없나 얘기가 돌았을 것입니다. 교회에 가서도 모든 사람들이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을 만세 삼창하듯이 세번씩 했지요.

정말 대 사건이었고 기분좋은 날의 연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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