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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영화 : 범죄와의 전쟁을 보고

민아네 2012. 4. 17. 08:00

 

<범죄와의 전쟁 한 장면>

얼마전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포스터가 촌스럽고 일단은 내가 싫어하는 깡패영화라 한참을 외면하다가, 주말 할 일은 없고 심심하여 킬링타임용으로 보았는데, 결론은 대박이었다.

 

영화 전편을 흐르던 배경음악(풍문으로 들었소)과 섬세한 영상처리가 돋보였던, 단연코 수작이라 하겠다.

 

이 영화를 조폭과 공무원의 유착,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관점에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주인공(최민식)을 보며 가족들을 지키려 으르렁거리며 비오는 똥밭 진창에 구르는 한마리 하이에나를 보는 것 같았다.

 

세상은 정글, 권력자들이 먹이사슬의 정점인 사자와 호랑이, 그리고 깡패들이 늑대무리라면 주인공은 하이에나다.

 

어차피 약육강식의 이 사회는 냄새나는 시궁창, 그 안에서 맹수처럼 먹이를 찾아 으르렁거리는 깡패들(하정우), 서로 공생하다가 궁지에 몰리자 서로를 물어버리는 비열함, 차라리 깡패들의 의리가 한 수 위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마치 늑대와 하이에나의 의리를 논하는 것과 같은 것.

 

온갖 더러움과 비굴함을 온 몸에 칠갑을 하면서 주인공은 가족에게는 자상한 남편이고 식탁에서 아들 영어공부를 점검하는 따뜻한 아버지다. 처절한 싸움끝에 한 점 썩은 고기를 물고 집으로 돌아와 아픈 신음 소리를 입안으로 삼키며 상처를 핥는 맹수. 이 세상의 아버지들이여.

 

이 글을 쓰고 나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궁금해졌다.

 

어쩐지. 탄식이 먼저 나왔다.

 

윤종빈 감독. 군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를 만든 20대의 청년감독이었다.

 

그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고문관 이등병으로 직접 출연하였다. 한국의 군생활을 너무 비딱한 시선으로 그렸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가 말하고자 싶었던 것은 군대문화 비판이 아닌 한국의 젊은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감독 자신이 군대를 다녀왔고 또 젊으니 당사자의 이야기라 할 수도 있겠다.

 

다시 '범죄와의 전쟁'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난득호도 難得糊塗'를 떠올렸다.

 

호도(糊塗)란 벽에 회칠한것을 말하니 똑똑한 본질에 한꺼풀 덮어씌워 일부러 바보인척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렸다.

 

그런데 난득호도보다 더 어려운것이 있으니 이것은 '원래 똑똑한 사람이 바보가 애써 똑똑한 척 허세를 부리는' 연기를 하는 것이다.

 

유비가 조조밑으로 들어갔을때, 유비는 조조와 식사를 하면서 천둥이 치자 일부러 깜짝 놀란 척 하며 젓가락을 떨어뜨린다. 조조는 그것을 보고 유비가 영웅호걸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판단을 하였으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똑똑한 유비의 '바보가 똑똑한 척 허세를 부리는 연기'에 넘어간 것이다.

 

비유가 맞을런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의 최신 카메라 장비와 기법을 가지고 얼마든지 원하는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서도 일부러 촌스러운 효과를 내면서, 최신효과를 내려고 무진 애를 쓴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 허 참, 복잡하다.

 

배창호 감독의 '길'을 보았을 때, 나는 7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가 만들어졌을 때 쯤의 영화인줄 알았다.

 

영화 처음에 나오는 영화제목과 감독이름의 글씨체부터 해서 화면색상, 카메라 영상, 소설책같은 문어체 대사, 빼다박은, 마치 영화시작 전 화살표가 쪼르르 움직이며 '미성라사,사,사..." 하는 에코가 들어간 동네 양복점 광고와 애국가, 대한뉴스를 보고나서야 시작되는 영화를 본 듯한 이 기분.

 

어떻게 지금의 최신 디지탈 영상기계를 가지고 이런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음악도 그렇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소설을 읽는듯한 감칠맛이 난다. 또다시 '범죄와의 전쟁'으로 돌아온다.

 

어찌 그 젊은 감독이 옛날 감각을 그리 잘 살렸을까?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부터 영상의 그 촌스러운 호방함과 흔들거림이라니.

 

마, 살아있네!

 

최민식의 대사를 유행어로 만들어낸 또하나의 힛트작. 오랜만에 재미난 영화를 보아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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