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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윤편(輪扁)의 고민

민아네 2012. 6. 15. 11:05

이 업계에서 구른지가 벌써 이십여년. 한 분야에서 기술자로 오래 일한다는 것은 딱딱하게 굳은 땅에 길고 가느다란 침봉을 꽂는 일과 같아 자기 기술에 대한 숙련도나 좁은 지식은 깊어가는 동시에 아집은 마른 땅처럼 요지부동 굳어져간다.

 

세월에 대한 자존심이랄까, 사실 한 분야를 학문으로서 깊게 탐구하는게 아닌바에야 오래된 기술이란 것은 숙련도와 디테일한 지식만이 늘어갈 뿐, 대붕(大鵬)처럼 아득히 높은 곳에서 저 아래 진애의 아지랑이를 관조하는 대범한 여유와는 멀어져만 간다.

 

내 자리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젊은 엔지니어 녀석이 앉아있는데, 이 친구가 하루에도 열댓번씩 나에게 시간을 빌린다. 컴퓨터 설계를 (CAD - 정확히 말하면 컴퓨터 자체를 설계하는게 아니라 컴퓨터를 사용해서 설계를 하는 일)하다가 막히는게 있으면 나에게 와서 도움을 청하는데, 이게 참 답을 해 주는 입장에서 난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부언한다면 컴퓨터 설계라는 것은 하이텍이 아니라 그냥 설계의 도구일 뿐, 하이텍도 아니요 그냥 목수가 망치나 톱을 쓰듯 사용하는 것일 뿐이니, 말하자면 내가 망치질을 잘 하니까 나에게 망치질 요령을 가르쳐 달라는 것과 비슷하다면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그녀석 자리에 가서 문제가 무엇인가 볼라치면 이건 뭐 개발 새발, 기본의 기본도 다 틀리게 되어 있는지라, 못질 하는데 자루 쥐는 법 부터 설명을 하자니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게다가 이녀석이 핵심을 못 잡고 계속 구름속을 헤메이면 기술자의 좁은 속은 슬슬 부글부글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기분좋고 한가할때야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지만 바쁠때 혹은 기분 안 내킬때 도와달라 하면 설명은 점점 퉁명스러워지고 얼굴은 굳는것이다.

 

옛날에 컴퓨터 설계 교육담당이었고 모교에서 컴퓨터 설계 강사도 했지만 가르치는데는 어느정도 인내심이 있다 생각했는데, 아직 나는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다.

 

옛날 중국의 제나라때 윤편(輪扁)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수레바퀴의 축이 들어가는 굴대 깎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다.

 

굴대를 조금이라도 얇게 깎으면 구멍이 헐거워 수레가 튼튼하지 못하게되고, 굵게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축이 구멍에 들어가지 않는데 이 양반은 기막히게 깎아냈던 모양이다.

 

그런데 윤편은 이 기술을 전수할 방법을 몰라 늙도록 본인이 스스로 작업을 했다 한다. 손맛과 눈썰미로 작업을 해왔는데 이런 느낌을 가르칠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혹시 윤편은 가르치는 방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인내심이 부족했던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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