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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사랑과 자비

민아네 2012. 8. 29. 06:44

 

<사진 : 전환재>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서울 강남의 네거리 사진을 보았다.

 

어두워진 밤이었는데, 필시 퇴근길인 듯 자동차들이 엄청난 물결을 이루고 있었고, 큰 사거리 네 방향에서 몰려든 자동차들이 하나같이 서로 먼저가려고 다투다가 마치 십자 쐐기처럼 되어 모두가 오도가도 못하게 된 사진이었다.

 

옛날에 중국의 어느 거리에서 이와같은 광경이 사진에 찍혀서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며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는데 한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호등이 어떤 이유로 고장이 나서 저리 된것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고, 순전히 나만 빨리가면 된다는 운전자들의 이기심이 빚어낸 결과라 한다.

 

개념없게시리 캐나다 같으면 이런경우에 블라블라 하는 비교질로 일부러 인심을 잃고 스스로 왕따를 자초할 필요는 없다. 캐나다라고 다를까?

 

그저 사람들이 하루종일 일에 지치고 무더위에 지쳐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리라.

 

곳간에서 인심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생활이 팍팍하면 남을 배려할 마음이 생기기가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은 '곳간'을 일컬을 때 그 안에 채워져 있는 재물을 헤아리면서, 그 안에 같이 들어있는 마이너스 요소, 즉 더 가지고자 하는 욕망을 생략하는 실수를 한다.

 

재물과 욕구를 합산해 보면 마이너스가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몇몇 훌륭한 성인을 제외하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인간의 재물에 대한 욕망은 나쁜것이 아니다. 허나 그 욕망의 마이너스 요소가 현재의 행복과 만족의 플러스 요소를 어둡게 가리워 깜깜하게 할 만큼 강해지면 그것은 탐욕으로 변질된다.

 

그러니 아무리 곳간이 재물로 넘쳐흐른다손 치더라도 욕망이 눈을 가려 하나라도 더 채워넣고자 하는 마음만이 간절한 사람에게는 인심을 기대할 수 없으리라.

 

그러면 인심이란것은 무엇일까.

 

인심을 풀어보면 사람의 마음이다. 반대로 사람이 품은 마음은 다 인심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다운 마음을 인심이라 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을 말하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였고 불교에서는 그 중심사상의 하나로 자비慈悲를 말하였다. 자비란 자慈, 즉 남이 잘되었을때 빙그레 짓는 미소와 비悲, 즉 남이 괴로울때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마음이니, 일견 기독교의 사랑과 통하는 말이라 하겠다.

 

무엇이 사랑과 자비란 말인가?

 

설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물만을 사랑하라고 사랑이 제일이라 지칭하지는 않았으리라. 또 신문 가십란에 이혼한 여배우를 불쌍하게 생각하라고 (그러나 속으로는 고소하게 생각하면서) 자비를 설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되는 알맹이가 보인다.

 

그것은 고단한 처지에 있는 상대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즉 상대와 소통하고 상대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타불이(自他不二)정신이 아니던가. 막말로 "한푼 쥐어 줘서 보내" 라는 식의 생각은 사랑이나 자비와는 거리가 멀다는 소리다.

 

그 옛날 예수가 사회에서 핍박받던 세리 창녀 이교도들과 함께하며 같이 아파하며 고통을 어루만져 주었던 것, 이것 또한 자타불이와 비슷하다.

 

퇴계 이황의 사단四端 중 측은지심惻隱之心도 사랑과 자비의 마음과 비슷하다.

 

측은지심이란 고통받는 다른 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을 의미하며 이는 어짊仁의 바탕이라고 퇴계는 말한다.

 

그러니 동정심과는 별도로 다른 이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는 공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측은지심, 즉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라 하겠다.

 

가진것이 많든 적든, 탐욕이 현재 가진것을 캄캄하게 가리우고 있는 사람들의 눈 앞에 동전 몇 닢이 없어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난들 그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일어날까. 아마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뭐, 어쩌라고?

 

그렇기에 저 많은 운전자들이 저토록 무질서한 운전을 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일분이라도 더 빨리 가서 하나라도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하니 말이다.

 

겨우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어쩌다 일어난 교통체증 하나에 너무 거창한 의미를 갖다 붙였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돈 많은 나라의 풍족한 사회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과 자비가 있는 사회가 참으로 사람 살 만한 사회가 아닌가 한다.

 

그러니 고단한 처지의 사람들이란 반드시 경제적, 육체적으로 곤란한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것 같다.

 

우리는 본다. 세상에서 몇 째 안가는 부자가 자신의 소유한 것의 일부나마 빼앗기지 않으려고 핏줄인 부모 형제와 발톱을 세우고 서로 못잡아먹어 으르렁 거리는 것을. 세계적인 대기업이 한푼이라도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해 영세한 협력업체들을 쥐어짜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돈 많고 부자인 나라가 더 가지려고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사랑과 자비의 힘이 위대하듯 탐욕과 증오의 해악은 쓰나미와 같다. 사랑과 자비의 빛은 언제나 사람들의 코 앞에 있다. 그 빛을 보는 것은 단지 감았던 눈을 뜨는 것 만큼이나 쉽지만, 증오와 탐욕의 깊은 코마에 빠진 자들에게 눈을 뜨는 일이란 기적에 다름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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