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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본문
2001년 9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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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전,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여자를 소개받아서 데이트를 하던 생각이 납니다. 쌍문동이던가? 근처에 덕성여대가 있었지요. 그 앞에서 만나서 카페에 가 저녁을 같이 먹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때가 아마 초가을 쯤으로 생각이 됩니다. 어둑어둑한 거리를 그 아가씨와 같이 가는데 길옆 버스 정류장에 있는 벤치위에 너다섯살쯤 되어 보이는 애들 셋이 처량하게 울고있는 것이었습니다.
눈여겨 보면서 그냥 지나쳤다가 안되겠다 싶어 다시 가던 길을 되짚어 왔습니다. 왜 울고 있는지 물어보니, 길을 잃었다는것 같긴 한데, 애들이 너무 울고 지쳐서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 좀 큰애를 다그쳐서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물어보니 분명하지는 않지만 징징거리는 소리로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워낙에 애들 혀짧은 소리로 하는 소리라 전화번호 몇자리 밖에 알아들을수가 없어서 그때부터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비슷한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가슴 설레는 데이트가 졸지에 미아찾기 본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 열군데 정도 전화를 하니 천만다행으로 애들 부모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너무 놀랐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곧 그쪽으로 가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은지 한 10분도 안되어서 택시가 쌩하고 급하게 달려오더니 우리들 앞에 멈추었습니다.
문이 왈칵 열리고 애들 부모같은 젊은 부부가 와락 뛰쳐나와 애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잠시후, 저와 저의 파트너에게 감사의 말을 하면서, 자신들이 조그만 중국음식점을 하고 있으니, 꼭 같이가서 식사라도 하시고 가시라고 소매를 잡아끄는 것이 었습니다.
길잃고 울며 헤메는 애를 찾아주었으니 짜장면정도는 아닐테고 적어도 탕수육 정도는 대접을 받을것이 분명했지만, 참으로 아깝게도, 처음 만나는 아가씨와 데이트 중인지라, 파트너 앞에서의 체면때문에 극구 사양을 했습니다.
그 긴긴 시간을 즐거운 데이트 대신 길바닥에서 자동차 매연을 마시며 참아준 그 아가씨.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생각이 나지않지만,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아마 그 아가씨는 시집가서 지금쯤 애 두셋정도 가진 아줌마가 되어 있겠지요.
그 꼬맹이 중국집 아들네미와 친구들도, 지금쯤은 시커먼 고등학생 정도는 되어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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