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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젊음 폭주하는 가스통들 본문

옛날 글과 사진/한국에서

잃어버린 젊음 폭주하는 가스통들

민아네 2024. 2. 20. 20:03

1997년 7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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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앞에는 소위 가스집 이라는게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익히 잘 아시겠지만 사시미칼 품고 다니는 일본 야쿠자 폭주족들이 보고 기가 죽어 코가 석자나 빠져 돌아갔다는, 그 무시무시한 가스통달고 다니는 폭주족들이 상주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온갖 서양과 일본의 못된 날날이 문화는 정말 착실하게 학습하여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도배를 해 놓고는, 그것도 모자라 가스통 창고 앞에서 담배 피우기, 가스통 비운다고 골목에서 가스밸브 틀어놓기, 그옆에서 앞이빨 사이로 침 찍찍 뱉어대며 쮸쮸바 빨기, 골목길에 서너살바기 애들사이로 가스통달고 아슬아슬하게 오토바이 달리기(그 길은 좁은 내리막이다), 좁은 주택가 골목길에서 요즘 유행한다는 영턱스클럽이나 디제이덕 노래를 온 동네가 떠나가라 크게 틀고 질주하기, 배달없을때 가끔 오토바이 뜯어서 바퀴도 바꾸고, 스프레이 락카로 순식간에 오토바이 색깔도 바꿔보고, 쇼바도 금새금새 높이고, 파랑새는 있다에 나오는 밤무대를 오토바이에 집약시킨듯한 반짝이, 11톤 트럭 경음기등...정말이지 요즘같은 한증막 여름에도 신기에 가까운 손재주와 담력으로 등골이 서늘, 오금이 짜릿짜릿, 쥐라기 공원 로스트월드의 스티븐이는 뺨맞고 울면서 돌아갈 정도의 묘기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90년대 가스배달 오토바이.

 

어제도(7/20일) 가스통 운반 트럭 기사가 자전거 옆을 트럭으로 아슬아슬하게 폭주하다가 자전거 탄 사람이 나무라니까 기냥 앞뒤 안재고 가스통을 터뜨려 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네가 날 무시했다 이거죠.

 

자전거 탔던 사람 놀란것은 둘째치고 주위에 있던 집들 대형 유리창 다 날라가고 전신주 전선 신호등이 다 녹아내려 주위 사무실 전원공급도 중단되었다니 정말 일본 야쿠자 정도는 새발의 피가 아닐수 없습니다. 대형참사로 안 이어진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KBS 뉴스 화면.

 

이들에게 얼마간의 대우를 해 주고 용병으로 쓴다면 북괴의 위협쯤 아무것도 아닐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군사분계선 넘었다 하면 야 임마 너 날 무시했어? 너두 한번 당해봐 꽝! 우수수... 할테니 천하에 북한군이라 한들 겁이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한 반수 이상이 차를 가지고 출근을 하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좁은 우리집 골목이 승용차로 법석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 반수라야 대여섯 되는 인원에 세명정도이지만...

다 썩은 차를 이렇게 개조해서 다녔다.

 

승용차도 이게 보통 승용차가 아닙니다. 대개 도색이 군데군데 거미줄처럼 갈라진 낡은 스쿠프와 에스페로인데 타이어를 무슨 레이싱 카 처럼 초광폭으로 바꾸었고 오토바이처럼 쇼바도 올리고, 차 꽁무니에 에어 스포일러인지 뭔지하는 날개를 달았는데 이게 보통 날개가 아니라 에프원 레이싱에나 어울릴 듯한 무지막지한 크기이고 머플러도 내가 전에 보았던 대포만한 것을 달아 시동이 걸리기만 하면 온 동네가 진동을 할 정도입니다.

 

이런 차를 새벽 한두시 되는 심야에 그것도 카 오디오를 있는대로 풍짝풍짝 크게 틀고 주택가 골목을 누빈다고 생각을 해 보신다면 상상이 가실 것입니다. 진짜로 좋은차라면 구경이나 할텐데 기껏해야 오륙십만원 될까말까한 중고차에다가 어디서 줏어왔는지 모를 그런것을 잔뜩 붙여서 다니는 것을 보면 참 막가파가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차를 사고 파는것이야 개인의 자유지만, 그렇게 산 차에 보험을 들었을리가 만무하고, 사고라도 나면 다치거나 죽는 사람만 억울한 일이 아닐수가 없겠죠. 새벽 한두시에 그 법석을 떨며 어디로 출정을 가는지 모르겠지만, 내 짐작으로는 그렇게 해가지고 어디 공부하러 가거나 봉사활동하러 가지는 않을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가스집"의 가스배달.


이제 그 가스집도 이달을 끝으로 영업을 중단합니다. 도시가스가 들어와 더이상 채산성을 맞추기 함들게 된 것이죠. 그동안 무던히도 동네사람들을 괴롭혔던 가스집 아이들. 그들의 힙합 바지와 귀걸이, 염색머리..  고음의 경음기와 이상한 오토바이들.. 그리고 가스통을 달고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폭주. 그런 풍경도 이제는 사라지게 되겠죠.

 

이제 그들은 또 다른 일터를 찾아 개조된 스쿠프를 타고 행진을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잃어버린 인생을 찾아 이리저리 헤메고 있는것일지도 모르죠. 나는 오늘도 그들에게 드리워져 있는 짙은 그늘을 봅니다. 그들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그늘을.. 

 

그들은 오늘도 씩씩하게 폭주를 합니다. 가스통을 달고 폭주하는 낡은 오토바이의 굉음이, 제발 도와주세요 하는 비명같이 들리는것은 웬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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