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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추억하나 본문
2009년 4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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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옛날 내가 동네친구집에 놀러 갔을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만, 달동네로 대표되던 봉천동은, 무허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고 그 사이를 미로와 같은 골목길이 지나가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이 친구가 사는 곳도 별반 다르지 않은, 야트막한 2층 스라브 집이었습니다. 친구의 방은 2층이었는데, 창문을 열고 보면 그리 별스러울 것도 없는 평범한 동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보면 집을 끼고 돌아가는 좁은 골목이 있고, 군데군데 거미줄같이 치렁치렁한 전선을 이고 있는 전봇대와, 골목을 따라 쭉 가다보면 왼쪽으로는 1층 여탕 2층 남탕인 대중 목욕탕이 있습니다.
옆으로 시선을 옮기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과자봉지를 진열해 놓은 구멍가게, 그 옆에 유리문에 빨간색 페인트로 "왕대포 곱창"이라고 써 놓은, 노상 돼지 삶은내가 뭉게뭉게 오르던 실비집이라는 선술집, 그리고 바로 앞 골목을 사이에 둔 단층의 야트막한 앞집이 보입니다.
이 동네가 그리 부촌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듯이 여기에는 낮에 부부가 일하러 나가고 집에는 노인과 어린애들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앞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앞집에는 젊은 부부와 70정도되어 보이는 할머니, 그리고 너다섯살 되어 보이는 사내애가 있었는데 낮에는 부부가 일을 나가고나면 할머니와 애만 남아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집에는 화장실이 푸세식(수세식의 반대..)으로 마당 한귀퉁이에 골목과 접하도록 위치하고 있어 화장실을 가려면 마당 - 결코 넓지는 않은 - 을 가로질러 가야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가는귀를 잡수셨는지 종종 손주녀석과의 의사소통에 트러블을 일으키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친구와 함께 친구가 끓여내온 라면을 열심히 후후 불어서 막 입에 넣으려는 찰나 앞집 꼬마가 지르는 것이 분명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할머니~ 다눴어~"
처음에는 그게 무슨소린지 몰라 어리둥절 해 있는데 친구가 하하 웃으면서 설명을 해 줍니다.
친구 말인즉슨, 이 꼬마는 아직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난 후의 뒷처리를 하기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일을 보고 난 후에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기위해 항상 저렇게 소리를 질러 할머니를 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할머니의 귀는 손주의 외치는 소리를 금방 알아듣기에는 너무나 노쇠했던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다눴어~"
"......"
"할머니이~~ 다아 눴어~"
"......"
3분 경과하자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는 숨까지 헐떡이며 힘들어 집니다.
"할머니이~~ 헉헉헉~ 다아 눴어~~"
"......"
5분이 지나자 꼬마의 소리는 드디어 울먹이는 절규로 바뀌었습니다.
"할머니이~~ 헉헉헉~ 잉잉잉~ 다아 눴어~ 잉잉잉~"
"......"
10분이 지나자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에는 일종의 박자와 가락이 실립니다.
"하알머어니이~~ 쿨쩍쿨쩍~ 잉이잉잉~ 다아..헉헉헉.. 눴.. 어~ 허어엉~ 꺼이꺼이~"
"......"
불쌍한 손주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기위해 우리가 라면 두개씩을 후후 불어가며 다 먹고 국물까지 후루룩 해치울 즈음까지 계속 할머니를 절규하며 불러댔습니다.
친구와 내가 안되겠다 싶어 창밖을 내다보자 그제서야 할머니는 뒷짐 진 손으로 굽은 허리를 콩콩 두드리며 화장실쪽으로 가고있었습니다.
잠시후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한손으로는 연방 눈물을 훔쳐대며 화장실을 나서는 그 꼬마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보면서 어찌나 귀엽고 안스럽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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