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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한국에서

군대시절 경험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

민아네 2024. 2. 18. 16:04

2009년 4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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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시절 경험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 - 1

군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을때나 자대 배치를 받고 생활하던 때 늘 생각하던 것이 나중에 제대를 하고나면 민간인 신분으로 이곳에 다시 놀러왔으면 하는 것이었다.

 

훈련을 받으면서 새벽 한두시에 길도 없는 숲속을 헤치며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데, 얼굴에 아카시아 가시가 긁히고 거미줄이 감기면서 계속 전진하다가 문득 숲이 끝나면서 야트막하게 경사진 하얀 공터가 나오는 것이었. 그 위로 교교하게 비추는 달빛은 얼마나 환상적이었던지 지금도 내 기억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해상침투 대비 대간첩 작전을 한다고 새벽 두시에 기상하여 동해안 해변가에 출동했는데 군사지역으로 묶여 있는 지역이라, 사람 발자국 하나없는 해변을 쏟아질듯 화려한 별빛아래 파도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는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못할 정도로 신비롭고 좋았었다.

 

그 풍경속의 나는 비록 K1 기관단총을 멘 군인이였지만 그 풍경속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관광객이나 연인들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쏟아지는 별빛속을 홀로 걸어가는 군인의 모습이 더 처연하게 어울렸을 수도 있겠다.

 

훈련차 (ROTC 하계훈련) 동기들과 갔었던 30사단 용문산 레이더 기지는 내가 생전 처음으로 구름바다를 본 곳이다. 산 밑에 있던 대대본부에서 대대장과 같이 동기들과 식사를 하고 4/5톤 트럭을 타고 갔는데 경사가 매우 심해서 아마 군용차량이니까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레이더 기지에 있는 레이더 돔.

 

용문산 레이다 기지는 커다란 구형 레이다 돔이 있는 상당히 큰 기지인데  곳곳에 내무반 시설도 있는 큰 규모였다. 그런데 내무반 중에는 동굴내무반이라하여 바위산을 파고 들어가 동굴로 만든 내무반이 있었는데 그런 내무반은 그때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동굴내무반은 습기가 많아 내내 난로를 피우고 지내고 있었다. 그때가 7월이었는데도 병사들이 야전잠바를 입고 생활할정도로 매우 추웠다.

 

그러나 그곳에서 며칠 생활하면서 아침에 본 구름바다는 아직도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왔다.

아침마다 산 아래로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그 레이다 기지 바로 옆에는 미군 주둔지가 있었다. 선배 장교가 미군 장교휴게소에 우리들을 데려가 맥주를 대접해 주었는데 영화나 테레비에서나 보던 미국식 태번같은 분위기였고 막사들이 겉에서 보는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어찌나 깨끗하고 부티나게 설비 관리를 잘 해 놓았던지 바로 옆의 후줄그레한 한국군 막사와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후일 듣기로는 그곳에서 미군부대는 철수하였고 모든 설비를 한국군에게 이양하고 갔는데 유지 관리를 할 예산과 병력이 없어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한다.

 


군대시절 경험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 - 2

 

부대에서 훈련을 나가면 근거리는 주로 속초나 안인진이라는 곳으로 갔었다. (장거리는 거진 / 대진)

 

안인진 이라는 곳은 아담한 해상 레이다 기지가 있었는데 레이다 설비와 건물이 있어서 병력들이 그곳에서 가정집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곳곳에 50 기관총과 승공포라 불리웠던 4쌍의 대공 50기관총 중화기 진지들이 있는것이 가정집과 다를 뿐 건물이나 내무실에 장판이 깔려있는것이 그곳에 있는 병력들은 군대말로 "풀린 보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MG50 기관총 4정으로 만들어진 대공 기관총, 승공포 혹으 충성포라 불렀다. 사수석에 앉아서 전동 레바로 상하좌우 조준을 할 수 있다.

 

 

승공포는 월남전에서 썼던 M35A1 건트럭에 달아서 썼던 물건이다. Quad-50 Gun Truck 으로 불렀었다.

 

레이다 기지가 높은곳이다 보니 역시 그 아래로 깎아지른 해안 절벽이 줄지어 있고 절벽이 끝나는 밑으로는 아담한 어촌들과 그 앞에 조그만 고기잡이 배 그리고 깊은 동굴도 있는 그런 아름다운 곳이었다.

 

안인진은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제대후 재준이를 비롯한 친구들과도 갔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그 당시에 많이 알려진 탓인지 이미 횟집이나 민박집들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었고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그 옆의 영동화력은 안인진과는 또 다른 곳이었다.

방송국이나 발전소는 전시에 적의 제 1 목표가 되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하다. 영동화력 역시 곳곳에 높은 펜스가 있었고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특이하게 실제 총기를 들고 경비를 서던 장면이 생각난다.

 

영동화력발전소.

 

나는 작전을 나간 군인이었으니 신분만 대면 무사통과로 출입을 할 수 있었는데 발전소 그것도 화력발전은 대단히 심한 공해를 배출하는 설비였다.

 

화력발전은 코크스라는 연료를 태워 동력을 만드는데 코크스를 태우고 남은 재를 웬만한 호수만한 크기의 구덩이를 파서 그곳에 채워넣는 것이었다. 재는 연탄재처럼 바삭하게 마른 상태가 아니라 찐득하게 젖은 시커먼 곤죽같은 형태인데 그것을 "슬러지" 라고 부른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공해물질이다.

 

그런데 이 슬러지가 이제 한계가 되었는지 슬러지를 채운 구덩이가 넘치다 못해 호수 가장자리를 높이 쌓아 올리기 까지 했는데도 거의 넘칠정도로 찰랑찰랑한 상태였다.

 

의외로 악취는 별로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동화력 옆으로는 초라한 마을이 있었고 우리가 훈련을 나가면 가끔 마을 점빵에 들려서 라면을 시켜먹곤 했다. 마을 앞에는 갈대밭이 무성했고 갈대밭을 지나 약간의 송림 그리고 바닷가가 펼쳐지는 역시 아름답고 소박한 곳이었다.

 

훈련을 나가면 포사격을 준비하는 동안 갈대밭 사이에 하늘을 보며 누워있곤 했는데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는 갈대 사이로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은 무척 운치가 있었다.

 

그런데 후일 이 마을이 소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듣기로는 영동화력에서 나오는 공해물질때문에 주민들 건강에 이상이 예상되자 얼마간의 이주비를 주고 이주를 가도록 한 모양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영동화력은 일부 모터 개량후에 아직도 가동중인 것으로 나오던데 공해방지시설도 보강했는지 모르겠다.

 

안인진 일대에 생각나는 아름다운 광경은 늦가을 서리가 내릴 쯤 훈련을 나가면 곳곳에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감나무에 빨간 감이 하얀 서리를 뒤집어 쓴 채 몽글 몽글 달려있는 모습이 무척 예뻤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전형적인 동해한 경계초소.

 

 

군대시절 경험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 - 3

 

겨울에 있는 동계 대대훈련은 통일전망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진으로 나갔다. 사십여대의 5톤트럭, 박스카 등 각종 차량과 대포를 끌고 긴 장관의 행렬을 지어 동해안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동해안 해안도로는 지금도 한번쯤 다시 가 보고 싶을정도로 나름대로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가 아닐까 한다. 적당히 굽이친 길, 북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산 오른쪽에 바다가 언듯언듯 보이는... 중간 중간에 있는 마을도 예쁘고 길도 예쁘다.

 

속초를 지나고 거진도 지나 대진에 이르면 조그만 다리를 건너기 직전 우리 부대 작전지역이 나온다.

 

다리 초입에서 좌회전해서 쭉 들어가면 상당히 큰 개활지가 나오고, 멀리 조그만 마을이 보이며 더 깊숙히 들어가면 조그만 중대급 소총부대가 있다.

 

나는 병사 몇몇을 데리고 사격 타겟인 건봉산이 잘 보이는 300 고지에 올라가 쌍안경으로 탄착지점을 보며 사격유도를 하는 임무다.

 

며칠동안 지낼 식량과 물을 추진해서 300고지에 올려놓고, 아침에는 산 밑의 소총 중대에 내려와 세면을 하고 다시 올라가는 일과였지만, 말이 300고지지 한겨울에 매일같이 그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보통 귀찮고 힘든일이 아니어서, 결국 열흘간을 세수도 안하고 양치질도 안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여담이지만, 민간 사회에서 300미터 고지를 오르는 일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지만, 군대에서 300고지를 오르는 일은 무척 고되다. 왜냐하면 민간인들이 만들어 놓은 등산길은 지그재그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올라가지만 군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은 그냥 꼭대기까지 무조건 직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300고지에 나 있던 길은 꼭대기까지 쭉 뻗은 도랑길이어서 오르기도 전에 좀 사람을 질리게 하는 점이 있었다.

 

산 위의 생활은 독립소대나 다름이 없어서 정말 오붓하고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인원이래봐야 나 포함 장교둘에 병사 넷 뿐이였으니 여섯명이서 정말 캠핑이라도 온 기분이었다. 본부에 무전기로 좌표를 불러주고 사격이 시작되면 쉬쉬쉭 하는 포탄 날라가는 소리를 듣는것도 색달랐다.

 

각자 개인용 텐트를 치고 우리는 그래도 장교라고 조그만 기름난로도 배려를 해주어서 난로를 피우고 잘 잤는데, 하루는 자는 동안 바람에 난로 연통이 빠지면서 텐트 안이 연기로 가득차는 등 큰일을 치를 뻔 하기도 하였다. 아마 바람에 텐트가 무너지면서 불이라도 났더라면 결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건봉산에는 1986년 큰 산불이 났었는데 내가 그곳에 간 시점이 산불이 난 후 1,2년 후였으니 아직 산에는 황량하게 그슬린 나무 천지였다. 덕분에 땔감은 바싹 마른 A급 나무로 원없이 갖다 쓸 수 있었다.

 

야간사격이 시작되면 숙영지에서 좀 떨어진 구릉으로 더 전진해서 나름대로 조그만 진지를 구축하고 사격유도를 했는데 사격이 종료되어 정리를 하는 시간이 되자 우리는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주워모아 조그만 모닥불을 피웠는데 시골 특유의 맑은 밤하늘과 모닥불의 불빛, 나무타는 냄새, 그리고 소리, 산불로 인해 약간 황량하기까지 한 산의 풍경은 흡사 원시시대에 와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이채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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